시 모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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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 소리는 조계산 마루에서 부서지고 201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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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
해국 김 근 이 바다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수평선을 사모하여 다가갈 수 없는 그 곳에 그리움을 심어 놓았습니다 바위 틈 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봄 여름 태양의 정성으로 키워 온 꿈을 가을 이른 새벽 서리로 꽃을 피웠습니다 화사한 외로움의 꽃을 피웠습니다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에 몸을 적시며 수평선 위로 날아오르는 물기 젖은 그리움을 접어 파도 소리로 잠 재웠습니다
2012.10.23 -
흔들림에 닿아
흔들림에 닿아 이 성 선 가지에 잎 떨어지고 나서 빈 산이 보인다 새가 날아가고 혼자 남은 가지가 오랜 여운에 흔들릴 때 이 흔들림에 닿은 내 몸에서도 잎이 떨어진다 무한 쪽으로 내가 열리고 빈곳이 더 크게 나를 껴안는다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음 사이 고요한 산과 나 사이가 갑자기 깊이 빛난다 내가 우주 안에 있다.
2012.10.12 -
국수가 먹고 싶다
국수가 먹고 싶다 이 상 국 국수가 먹고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 가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곳에선가 늘 울고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싶다.
2012.10.09 -
귀를 씻다 -山詩 2
귀를 씻다 -山詩 2 이 성 선 산이 지나다가 잠깐 물가에 앉아 귀를 씻는다. 그 아래 엎드려 물을 마시니 입에서 산(山)향기가 난다.
2012.10.08 -
빈 꽃대 위 달무리
빈 꽃대 위 달무리 이 성 선 꽃 지고 나서 혼자 남은 빈 꽃대의 가냘픔 빈 꽃대의 섬세함 빈 꽃대의 외로움 나의 시는 지금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너에게 닿을 수 없다 내 가슴은 이미 불꽃이 식어버려 너의 몸을 덮힐 수 없다 꽃이 진 허공은 너무 소중하여 누가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된다 나는 멀찍이서 너 빈 꽃대 위에 마음의 달무리를 띄우고 너를 감싸고 돈다
2012.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