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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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外
동안거(冬安居)목 필 균 산사에 내리는 함박눈숫눈 위에 내려앉는 고요 수많은 상념이 거미줄 치다가바람 끝 풍경소리에일순간 소멸되는명상의 시간들 봄빛 스며들 때까지합장한 손끝에가부좌한 무릎에순간이 쌓여 흐르는하루 또 하루 지혜를 찾아가는길은 멀기만 하다 목어(木魚)박 종 영 목어는 뱃속을 비워내야 소리가맑다 하였는가그 뱃속 누구에게 내어주고마른 허기로 둔탁한 구걸인가풍경이 울 때마다 지느러미 물기 털어내세월풍 한 소절 따라 부르는 슬픈 울음,염화시중(拈華示衆)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인자한 미소빛바랜 단청 곱게 일어서고,목어 너,맑은 소리 공양으로온 생이 환해지는 절집. 수행(修行)목 필 균 마애불 마라보다가청태 낀 몸 바라보다가나무관세음보살소리 없는 목탁 두드리며구름 자락 위에 가부좌 튼다 돌..
2025.09.04 -
돌부처와 서천(西天) 外
돌부처와 서천(西天)* 돌부처는 서천만 바라보고 있다절벽 위에 가부좌로 앉아오른손 들어 올리고 왼손은 드리운 채마냥 서천만 바라보고 있다누군가 코를 떼어가고 눈을 빼갔는데도아랑곳없이 절벽에 정좌해눈도 코도 없이 서천만 우러르고 있다돌로 돌아가고 있는데도가는 데까지 가려하는 것 같다 * 서천(西天) : 서방 극락세계( 西方 極樂世界) 윤슬과 은파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한적한 마을에며칠째 홀로 머물고 있습니다낮에는 강가를 거닐며 윤슬*을 바라보고달밤엔 바닷가의 야트막한 언덕에 앉아은파*에 마음 실어보곤 했습니다낮엔 밤을, 밤엔 낮을 기다렸습니다윤슬은 마음에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은파는 가버린 날들을 되찾으며거슬러 오르게도 하기 때문인 듯합니다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데도윤슬과 은파를 데리고 가려고벌..
2025.08.24 -
느낌 外
느낌 이 태 수 비 온 뒤 하늘같이풀잎을 스치는 바람같이 창공을 나는 새같이더러는 고목의 새순같이 잠시 머무는 느낌 다시 스미는 느낌 더러는 저물녘 노을같이유리벽 밖 불빛같이 밤 못물 위의 달빛같이동틀 무렵 동녘같이 청노루귀이 태 수 이른 봄 야산에서 만난 야생화청노루귀 꽃잎이 청초해 되레 슬프다먼 옛날의소녀가 생각나서 이런 걸까 돌아서도 눈앞에 먼저 와 있는 청노루귀 물, 소리이 태 수 물은 소리를 낮추며 흐른다흘러가면서 한 없이 낮추고 낮춘다아래로만 내려가며 깊고 높아진다높고 깊어져 소리를 거둔다
2025.08.18 -
꽃 한송이 外
꽃 한 송이이 태 수 마음 비운 자리에 꽃 한 송이 핀다저 생명의 절정인 꽃,비워서 차오르는 저 절정의 찰나를처음이듯, 마지막이듯깊이, 더 깊이 끌어당겨 그러안는다이 찰나가 영원이듯,영원이 바로 이 찰나이듯, 피어나는절정의 꽃 한 송이마음 내려놓은 자리에 그 꽃이 핀다 달개비신 술 래 장마 비 석 달 열흘을 내려도잉크 빛꿈버리지 않네그치지 않는 비 없고멈추지 않는 바람 없으니 돌절구 옆 달개비도아무렴 그렇지귀를 쫑긋쫑긋 박주가리김 창 진 꽃이 별이라오불가사리라오열매는 박처럼이라오'주가리'라니오그 이름개똥벌레처럼풍뎅이처럼꽃망울에 앉아요별이 되어야요희한스레담자색 꽃이 되어야요
2025.08.15 -
글썽이다 外
글썽이다 이 태 수 물방울 속으로 들어간다물방울 된 나는물방울 속에서 내다본다 투명하고 영롱하게담백하고 정갈하게 풀잎에 글썽이는 아침 이슬이슬방울로 잠깐나도 햇살 받으며 글썽인다 산골 물소리 1이 태 수 숲길이 느바기*로 산그늘을 끌고 간다나도 그 그늘을 따라 걷는다옷깃을 시나브로 흔드는 바람 돌다리를 건너 점점 깊어지는 산길을 따라 나도 느바기로 걸어간다 바위 사이로 내려가는 물이 맑고 밝다물속에는 은피리들이 유유히물소리 따라 유영하고 있는지안 보이지만 보일 것만 같다나무 사이로 눈부시게 뛰어내리는 햇살 이 산골짜기 숲길에서 들리는 물소리는신비스럽고 신성한 선율 같다 은피리가 연주하는 피리 소리는안 들려도 그지없이 아름답다멧새들이 가끔 배음을 깔아주기도 한다. *느바기 : 느리고 바르고 기쁘게 ..
2025.08.12 -
대숲 바람 外
대숲 바람권 달 웅 무성하게 자란 대숲에서바람이 일었다 다 말 못 한 생을마디마디마다 새겨 넣으면서속을 비우고 살았다 가지들이 옆으로 뻗어나가도중심의 줄기 하나는하늘로 하늘로 치솟았다 무성하게 자란 대숲에서곧고 푸른 소리들이 일었다 설악 오소리권 달 웅 수척한 설악이 웅크리고 우는 새벽 해우소를 가는 눈길에오소리 발자국이 찍혀있다 어둑어둑 어둠이 밝아오는잣눈 쌓인 댓돌 위에얼어붙은 동태처럼 꾸덕꾸덕해진백고무신 한 켤레 바람소리만 몰려가는 적막 속에입정한 노스님이동안거에 들어간 오소리 발자국을따라가고 있다 간밤 쌓인 눈에 소나무가 찢어져도새파랗게 살아나는 솔잎처럼 아뇩다라 삼막삼보리문 닫아걸고 있는 마음이고요 속을 들여다보는설악 무금선원 무문관 80 세 앞나 태 주 이제부터는 긴 터널을 지나야 ..
2025.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