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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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외
봄비이 해 인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 없는 풀숲에서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둣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해마다 내 가슴에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나에게 오렴 봄비이 수 복 이 비 그치면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맑은 하늘에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향연(香煙)과 같이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이슬심 후 섭 이슬방울 작아도볼 것은 다 본다 놀란 개구리 볼락대는 목젖연못에 비친 송아지 하품다 보고 있다. 이슬방울 작아도볼 것은 다 본다 방아..
2025.04.24 -
가지 않은 길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
2025.03.19 -
겨울나무가 몰랐던 것 外
겨울나무가 몰랐던 것남 정 림 겨울나무는 몰랐어요화려한 잎새 다 떨군 뒤에도여전히자신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겨울나무는 몰랐어요잔가지마저 칼바람에 베어 버린 뒤에도여전히자신이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봄을 꿈꾸는 선율윙윙 ∽∽연주하는 겨울나무는겨울에야 비로서 알았어요자신의 겨울도 아름답다는 것을 첫눈김 용 택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이름 하나가시린 허공을 건너와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눈꽃김 대 식 꽃만 꽃이 아니더라눈꽃도 꽃이더라추운 겨울에도 앙상한 겨울 나무하얗게 눈부신 눈꽃을 피우더라 온 산이 꽃으로 물든꽃피는 봄만아름다운 것이 아니더라 온 산을 붉게 물들인단풍으로 가득한 가을 산만아름다운 것이 아니더라 잎떨어져 벌거벗은 겨울 산에도온 산이 하얗게 나무마다 눈꽃 피어수정처럼 반짝이며 눈부시게 빛..
2024.12.03 -
성탄제
성탄제 김 종 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2024.12.02 -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
달빛기도이 해 인사랑하는 당신에게추석인사 보냅니다너도 나도집을 향한 그리움으로동근달이 되는 한가위우리가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달빛처럼 순하고부드럽기를우리 삶이욕심의 어둠을 걷어내좀 더 환해지기를모난 마음과 편견 버리고좀 더 둥글어 지기를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하늘보다내 마음에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한가위 달을마음에 걸어두고당신도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2024.09.14 -
풀꽃
풀꽃이 성 선 맑은 마음을 풀꽃에 기대면향기가 트여 올 것 같아외로운 생각을 그대에게 기대면이슬이 엉킬 것 같아마주 앉아 그냥 바라만 본다. 눈 맑은 사람아마음 맑은 사람아여기 풀꽃밭에 앉아한나절이라도 아무 말 말고풀꽃을 들여다보자. 우리 사랑스러운 땅의 숨소릴 듣고애인같이 작고 부드러운저 풀꽃의 얼굴 표정고운 눈시울을 들여다보자. 우리 가슴을 저 영혼의 눈썹에밟히어 보자.기뻐서 너무 기뻐눈물이 날 것이네. 풀꽃아너의 곁에 오랜 맨발로 살련다.너의 맑은 얼굴에 볼 비비며바람에 흔들리며이 들을 지키련다. 솜다리김 승 기 우주를 안아 보려는 꿈이높은 산을 오르게 했을까설악(雪嶽)의 암석 위에서이슬 먹고 피는꽃이여솜털로 온몸을 둘렀어도비바람 치는벼랑 끝바위를 붙잡은 손이얼마나 시릴까하늘을 가까이하려면그만한 ..
20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