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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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外
소리유 재 영 벌써 몇 번째 어둠을 뚫고, 고요에이마를부딪치는 열매가 있다 적막유 재 영 오래된 그늘이지켜보고 있었다 나뭇잎 하나가툭! 떨어졌다 참 조용한하늘의 무게 득음(得音)유 재 영 잠을 이룰 수 없는밤이었다고향집에 와서 오십 살이 넘어서야비로소 듣는 고욤꽃 떨어지는 소리 구절리 햇빛유 재 영 며칠 전,투구벌레 두 마리자웅을 가리던 곳오늘은 쇠별꽃이많이 피었습니다부전나비 한 쌍 자꾸 자리를옮겨 앉고메추라기 새끼가고개 갸웃대며지나갑니다구절리 햇빛들이개살구 속살까지말갛게 비추는 동안어디선가외대버섯 냄새가고요히 퍼졌습니다 오래된 가을유 재 영 수척한 햇빛들도 때로는 눈부셨다조용히 몸 가리고 들꽃 피운 작은 언덕다가가 만지고 싶던 손목 하얀 그 가을 돌아보면 아직도 물빛 같은 그리움..
2025.06.13 -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한용운(韓龍雲)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밀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적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2025.06.09 -
별 헤는 밤
서시(序詩)윤동주(尹東柱)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헤는 밤윤 동 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
2025.06.03 -
봄비 외
봄비이 해 인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 없는 풀숲에서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둣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해마다 내 가슴에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나에게 오렴 봄비이 수 복 이 비 그치면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맑은 하늘에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향연(香煙)과 같이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이슬심 후 섭 이슬방울 작아도볼 것은 다 본다 놀란 개구리 볼락대는 목젖연못에 비친 송아지 하품다 보고 있다. 이슬방울 작아도볼 것은 다 본다 방아..
2025.04.24 -
가지 않은 길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
2025.03.19 -
겨울나무가 몰랐던 것 外
겨울나무가 몰랐던 것남 정 림 겨울나무는 몰랐어요화려한 잎새 다 떨군 뒤에도여전히자신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겨울나무는 몰랐어요잔가지마저 칼바람에 베어 버린 뒤에도여전히자신이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봄을 꿈꾸는 선율윙윙 ∽∽연주하는 겨울나무는겨울에야 비로서 알았어요자신의 겨울도 아름답다는 것을 첫눈김 용 택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이름 하나가시린 허공을 건너와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눈꽃김 대 식 꽃만 꽃이 아니더라눈꽃도 꽃이더라추운 겨울에도 앙상한 겨울 나무하얗게 눈부신 눈꽃을 피우더라 온 산이 꽃으로 물든꽃피는 봄만아름다운 것이 아니더라 온 산을 붉게 물들인단풍으로 가득한 가을 산만아름다운 것이 아니더라 잎떨어져 벌거벗은 겨울 산에도온 산이 하얗게 나무마다 눈꽃 피어수정처럼 반짝이며 눈부시게 빛..
2024.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