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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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가 몰랐던 것 外
겨울나무가 몰랐던 것남 정 림 겨울나무는 몰랐어요화려한 잎새 다 떨군 뒤에도여전히자신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겨울나무는 몰랐어요잔가지마저 칼바람에 베어 버린 뒤에도여전히자신이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봄을 꿈꾸는 선율윙윙 ∽∽연주하는 겨울나무는겨울에야 비로서 알았어요자신의 겨울도 아름답다는 것을 첫눈김 용 택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이름 하나가시린 허공을 건너와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눈꽃김 대 식 꽃만 꽃이 아니더라눈꽃도 꽃이더라추운 겨울에도 앙상한 겨울 나무하얗게 눈부신 눈꽃을 피우더라 온 산이 꽃으로 물든꽃피는 봄만아름다운 것이 아니더라 온 산을 붉게 물들인단풍으로 가득한 가을 산만아름다운 것이 아니더라 잎떨어져 벌거벗은 겨울 산에도온 산이 하얗게 나무마다 눈꽃 피어수정처럼 반짝이며 눈부시게 빛..
2024.12.03 -
성탄제
성탄제 김 종 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2024.12.02 -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
달빛기도이 해 인사랑하는 당신에게추석인사 보냅니다너도 나도집을 향한 그리움으로동근달이 되는 한가위우리가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달빛처럼 순하고부드럽기를우리 삶이욕심의 어둠을 걷어내좀 더 환해지기를모난 마음과 편견 버리고좀 더 둥글어 지기를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하늘보다내 마음에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한가위 달을마음에 걸어두고당신도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2024.09.14 -
풀꽃
풀꽃이 성 선 맑은 마음을 풀꽃에 기대면향기가 트여 올 것 같아외로운 생각을 그대에게 기대면이슬이 엉킬 것 같아마주 앉아 그냥 바라만 본다. 눈 맑은 사람아마음 맑은 사람아여기 풀꽃밭에 앉아한나절이라도 아무 말 말고풀꽃을 들여다보자. 우리 사랑스러운 땅의 숨소릴 듣고애인같이 작고 부드러운저 풀꽃의 얼굴 표정고운 눈시울을 들여다보자. 우리 가슴을 저 영혼의 눈썹에밟히어 보자.기뻐서 너무 기뻐눈물이 날 것이네. 풀꽃아너의 곁에 오랜 맨발로 살련다.너의 맑은 얼굴에 볼 비비며바람에 흔들리며이 들을 지키련다. 솜다리김 승 기 우주를 안아 보려는 꿈이높은 산을 오르게 했을까설악(雪嶽)의 암석 위에서이슬 먹고 피는꽃이여솜털로 온몸을 둘렀어도비바람 치는벼랑 끝바위를 붙잡은 손이얼마나 시릴까하늘을 가까이하려면그만한 ..
2024.08.20 -
비이슬
빗소리박 건 호 빗소리를 듣는다밤중에 깨어나 빗소리를 들으면환히 열리는 문이 있다산만하게 살아온 내 인생을가지런히 빗어주는 빗소리현실의 꿈도 아닌 진공상태가 되어빗소리를 듣는다빗소리를 듣는다는 것은얼마나 반가운 일이냐눈을 감으면 넓어지는세계의 끝을 내가 간다귓속에서 노래가 되기도 하는 빗소리이 순간의 느낌을 뭐라고 표현할까빗소리를 듣는다빗소리를 듣는다는 것은얼마나 반가운 일이냐 풀잎 끝에 이슬이 승 훈 풀잎 끝에 이슬 풀잎 끝에 바람풀잎 끝에 햇살오오 풀잎 끝에 나풀잎 끝에 당신우린 모두 풀잎 끝에 있네잠시 반짝이네잠시 속에 해가 나고바람 불고 이슬 사라지고그러나 풀잎 끝에 풀잎 끝에 한 세상이 빛나네어느 세월에나 알리요? 빗소리주 요 한 비가 옵니다.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
2024.07.02 -
이 아침의 행복을 그대에게
이 아침의 행복을 그대에게 이 채 별들이 놀다간 창가에 기대어 싱그런 아침의 향기를 마시면 밤새 애태우던 꽃꿈 한 송이 하이얀 백합으로 피어나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아 햇살 머무는 나뭇가지에 앉아 고운 새 한 마리 말을 걸어와요 행복이란 몸부림이 아니라 순응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만큼 누리고 누리는 만큼 나누는 것이라고 새록새록 잠자던 풀잎들도 깨어나 방긋 웃으며 속삭이는 말 사랑이란 덜어주는 마음 만큼 채워지는 기쁨이야 꽃이 되기 위해 조금 아파도 좋아 눈부신 햇살, 반짝이는 이슬방울아! 내게도 예쁜 꿈 하나 있지 그대 내 마음에 하늘 열면 나 그대 두 눈에 구름 머물까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아
202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