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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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꽃에서는 향기가 난다
별꽃에서는 향기가 난다이 경 주해 지고 나면 별 뜬다그 낮별 하나 지고 나면수많은 별들이밤하늘, 꽃으로 피어난다시리우스도쌍동이 자리도오리온 대성운도세상사람 유혹하듯초롱초롱 피어난다별밭을 바라보면꽃이 아닌 별은 하나도 없다별밭을 바라보면별꽃에서는 향기가 난다.
2020.04.12 -
3월이 오기까지는 外
3월이 오기까지는 나 상 국마음은 아직도 동토에 머물고있는 것 같은데옷깃에 여미는 바람은귓속말로 속삭인다주변을 돌아보라고양지바른 강둑에까치발로 발돋움하는 푸름을숲 속의 키 작은 나무들힘껏 봄을 빨아올리고 있다3월이 오기까지는먼 것 같더니만2월도 벌써 다 갔네 얼레지 김 승 기 길고 긴 겨울을 뚫어내느라여린 숨결이 얼마나 상했을까그렇게도 얄상한 목숨줄기로뼛속에 옹이 박힌 얼음덩이 어떻게 녹여냈을까하루를 꽃피우기 위해땅 밑에서 백일을 꿈꾸었는데아무렴, 얼음의 벽이 두꺼워도코끝으로 느끼는 봄내를 막지 못하지봄꽃들이여티 없이 노랑웃음 저마다 눈이 부셔도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온통 불그죽죽 피멍든 얼굴이어도오늘의 기쁨을 준 훈장인 걸무엇이 부끄러울 수 있으랴이제 봄바람 불었으니씨를 맺는 작업은 나중의 일따스한..
2020.03.01 -
고사목에 매달린 눈꽃
고사목에 매달린 눈꽃손 정 모앙상한 가지마다켜켜히 쌓인 눈꽃들이날 선 겨울 바람을맞고 있다.생각난 듯이쏟아지는 햇살을 뚫고안개가 골 바람을 타고길을 연다.냉동 상태로 달라붙은 눈꽃들바람에 알몸둥이로 맞서보지만비상의 꿈은한결 어둡기만 하다.충혈된 눈으로바람이 불기만을 빌었었는데골 바람이 파고들수록외려 얼어붙기만 하다.새벽 안개가 포근하게 내리덮여도삭정이에 매달린 눈꽃은싸늘한 유리 파편이다바람이 지나는 자취마다몸을 떨며다리를 벌려 보지만새의 체온마저도 박제가 된다.다시 어둠이 밀려들 때까지도바람은 험악한 인상으로발길질을 해댔고눈꽃들은 유리 파편이 되어좌절된 비상의 꿈을슬퍼하고 있다.
2020.02.11 -
전나무
전나무 김 승 기 하늘을 빗질하며천년을 그렇게 서 있었다꽃으로 피는수많은 시름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고서여름 폭풍우에 이리저리 휘둘리며겨울 폭설이 온몸을 짓누르는 아픔 있어도雪害木은 결코 되지 않았다오로지우뚝하게 선 우람한 기둥하늘을 떠받치고사방으로 크게 팔을 내뻗어우주를 빗질하며앞으로도 또 천년을 그렇게 서 있으리라그 천년 후에설악산 천불동 가야동 계곡에서지리산 노고단 세석평전에서枯死木으로 서서 다시 천년을 지킨 후에그대의 깊숙한 눈동자에 들어사랑으로 꽃을 피우는 별이 되리라오늘도 전나무는 그렇게 서서사랑을 빗질하고 있다
2020.02.10 -
2월이 가네!
2월이 가네! 김 안 로겨울 꽁무니 따라 짧은 2월이 가네!추위를 타는 사람들재촉하지 않아도 보폭은 넓어걸음 빠르더니, 두고 가는 것 없이겨울 떠나네!그래서인가겨울은 그리움만 길다.거칠고 차갑더라도 순간한 이틀 따뜻하거나 눈이라도 내리면마른 겨울대지가 목말랐는데도죽은 것처럼참고 있던 잎눈도 꽃눈도어둠을 헤집고 나오는 별처럼앞 다투어 빛을 발하니2월, 저만치 멀어지네!
2020.02.10 -
대춘부(待春賦)
대춘부(待春賦) 夕汀 신석정(1907-1974)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대춘부(待春賦), '봄을 기다리는 노래'라는 말이다. 우리네 삶은 기다림이 아니던가? 아침을 기다리고 희망을 기다리고 밥 때를 기다리고 버스를 기다리고 오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고, 그리고 봄을 기다린다. 설렘으로 시작되어 안타까움으로 끝날 뿐이건만 봄이 영원히 아름다운 것은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202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