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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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전나무 김 승 기 하늘을 빗질하며천년을 그렇게 서 있었다꽃으로 피는수많은 시름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고서여름 폭풍우에 이리저리 휘둘리며겨울 폭설이 온몸을 짓누르는 아픔 있어도雪害木은 결코 되지 않았다오로지우뚝하게 선 우람한 기둥하늘을 떠받치고사방으로 크게 팔을 내뻗어우주를 빗질하며앞으로도 또 천년을 그렇게 서 있으리라그 천년 후에설악산 천불동 가야동 계곡에서지리산 노고단 세석평전에서枯死木으로 서서 다시 천년을 지킨 후에그대의 깊숙한 눈동자에 들어사랑으로 꽃을 피우는 별이 되리라오늘도 전나무는 그렇게 서서사랑을 빗질하고 있다
2020.02.10 -
2월이 가네!
2월이 가네! 김 안 로겨울 꽁무니 따라 짧은 2월이 가네!추위를 타는 사람들재촉하지 않아도 보폭은 넓어걸음 빠르더니, 두고 가는 것 없이겨울 떠나네!그래서인가겨울은 그리움만 길다.거칠고 차갑더라도 순간한 이틀 따뜻하거나 눈이라도 내리면마른 겨울대지가 목말랐는데도죽은 것처럼참고 있던 잎눈도 꽃눈도어둠을 헤집고 나오는 별처럼앞 다투어 빛을 발하니2월, 저만치 멀어지네!
2020.02.10 -
대춘부(待春賦)
대춘부(待春賦) 夕汀 신석정(1907-1974)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대춘부(待春賦), '봄을 기다리는 노래'라는 말이다. 우리네 삶은 기다림이 아니던가? 아침을 기다리고 희망을 기다리고 밥 때를 기다리고 버스를 기다리고 오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고, 그리고 봄을 기다린다. 설렘으로 시작되어 안타까움으로 끝날 뿐이건만 봄이 영원히 아름다운 것은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2020.02.02 -
설악산 소나무
푸른 소나무 윤 의 섭소나무 소나무여낙엽 진 나목 속에서더욱 푸른 소나무여어머니의 향기 같아라풍설 風雪에 눈 덮여가지가 휘어져도줄기가 터져도푸른 소나무 변치 않는 나무여바람 부는 소리에숲이 울 때도거문고 치는 소리더욱 맑게 하여라잎이 떨어져춥다는 나목에달 밝아 비추..
2020.02.01 -
겨울 / 조병화 外
겨울 조 병 화 침묵이다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바람은 지나가면서적막한 노래를 부른다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노래만 남아 쌓인다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하얗게 덮는다덮은 눈 속에서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 내어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봄을 준비한다묵묵히. 겨울 강가에서 우 미 자이제는 마음 비우는 일하나로 살아간다.강물은 흐를수록 깊어지고돌은 깎일수록 고와진다.靑天의 유월고란사 뒷그늘의 푸르던 사랑홀로 남은 나룻배 위에 앉아 있는데높고 낮은 가락을 고르며뜨거운 노래로흘러가는 강물.거스르지 않고 順하게 흘러바다에 닿는다.江岸을 돌아가모든 이별이 손을 잡는生命의 合掌.겨울 강을 보며한 포기 芝蘭을기르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2020.01.21 -
야경(夜景)
야경(夜景)이 수 정누가 도시를 나무라는가보라이곳은 별들의 향연노을이 마냥 짙어져 어둠으로 내리고포근히 한낮의 피로들을 감싸 안으면하나씩은하에 흐르던 별이 사랑으로 와하나씩하나씩창에 깃들고歸家의 웃음들에게 팔을 벌린다평화들은 비누방울처럼 하늘로 올라별을 켜던 천사들과 춤을 추면서한줌씩‘노래다’ ‘노래다’ 별을 뿌리고…그 별들 마침내 하르르 쏟아져 내려창마다 창마다에서합창이 된다인자한 어둠은 품이 따스해방마다에선 아리따운 영혼 영혼들신비의 메르헨으로 나래를 펴고…하나씩 착한 잠들이 번져나가면별들은 빛을 낮추어 소근거리며아득한 그날들을 이야기한다몇 십억 광년시간의 저편에서 어둠을 넘어까마득한 별아름다운 이 초록별 하나동경했었던…시나브로 까아만 밤은 무르익고별들은 천진한 아이들마냥들뜨며 지천으로 아롱거린다그날..
2020.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