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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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
부석사 무량수 정 일 근 어디 한량없는 목숨 있나요 저는 그런 것 바라지 않아요 이승에서의 잠시 잠깐도 좋은 거예요 사라지니 아름다운 거예요 꽃도 피었다 지니 아름다운 것이지요 사시사철 피어 있는 꽃이라면 누가 눈길 한 번 주겠어요 사람도 사라지니 아름다운 게지요 무량수無量壽를 산다면 이 사랑도 지겨운 일이어요 무량수전의 눈으로 본다면 사람의 평생이란 눈 깜짝할 사이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우리도 무량수전 앞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반짝하다 지는 초저녁별이어요 그래서 사람이 아름다운 게지요 사라지는 것들의 사랑이니 사람의 사랑 더욱 아름다운 게지요
2012.09.13 -
숲에서 부르는 노래(林下辭)
청빈하게 살아가는 도인이여 안개와 노을 속에서 날개를 치는구나. 칡 옷 한 벌로 겨울 여름 지내고 솔바람 소리 들으며 생애를 보내노라. 하늘은 높아서 머리를 치켜들고 땅은 넓어서 무릎을 쭉 편다네. 파란 이끼를 담요로 삼고 흙덩이 돌을 베개 삼아 누웠다네. 등나무 넝쿨은 해를 가리고 푸른 냇물은 길이 흐르니 사는 것이 이와 같은데 죽음 또한 어이 근심하리. 푸른 바다에 솟은 세 봉우리엔 흰 구름과 푸른 두루미가 오가고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빈 산 밝은 달 위로 울려퍼진다. 오호라, 줄 없는 거문고와 구멍 없는 피리가 아니라면 내 누구와 함께 태평한 시대의 노래를 부르리오
2012.09.07 -
작은 들꽃
작은 들꽃 조 병 화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나 나나 이 세상에선 소유할 것이 하나도 없단다 소유한다는 것은 이미 구속이며 욕심의 시작일 뿐 부자유스러운 부질없는 인간들의 일이란다 넓은 하늘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소유라는 게 있느냐 훌훌 지나가는 바람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애착이라는 게 있느냐 훨훨 떠가는 구름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미련이라는 게 있느냐 다만 서로의 고마운 상봉을 감사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존재를 축복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인연을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게 기원하며 이 고운 해후를 따뜻이 해 갈 뿐 실로 고마운 것은 이 인간의 타향에서 내가 이렇게 네 곁에 머물며 존재의 신비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짧은 세상에서 이만하면 행복이잖니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는 인간들이 울며불며 ..
2012.09.07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 재 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
2012.09.06 -
풀꽃
풀꽃 나 태 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2012.09.05 -
날마다 산을 보지만
日日看山看不足 時時聽水聽無厭 自然耳目皆淸快 聲色中間好養恬 날마다 산을 보지만 봐도 부족하고 때마다 물소리 들어도 듣든 것에 물리지 않네 저절로 귀와 눈이 모두 맑고 시원하니 소리며 빛깔 속에서도 한가로움을 잘 기르노라 - 원감국사 충지(沖止)
2012.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