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02)
-
작약
작약 노 천 명 그 굳은 흙을 떠받으며 뜰 한 구석에서 작약이 붉은 순을 뿜는다 늬도 좀 저 모양 늬를 뿜어보렴 그야말로 즐거운 삶이 아니겠느냐 육십을 살아도 헛사는 친구들 세상 눈치 안 보며 맘데로 산 날 좀 帳記에서 뽑아보라 젊은 나이에 치미는 힘들이 없는냐 어찌할 수 없어 터지는 정열이 없느냐 남이 뭐 란다는 것운 오로지 못생긴 친구만이 문제 삼는 것 남의 자(尺)는 남들 재라 하고 너는 늬 자로 너를 재일 일이다 작약이 제 순을 뿜는다 무서운 힘으로 제 순을 뿜는다
2009.07.05 -
들풀
들풀 류 시 화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2009.07.04 -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으며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으며 항상 곡조를 품고,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면서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2009.07.03 -
찔레꽃
찔레꽃 이 원 규 해마다 봄이면 찔레꽃을 피웠으니 얘야, 불온한 막내야 혁명은 분노의 가시가 아니라 용서의 하얀 꽃이더라
2009.04.19 -
춘신(春信)
춘신(春信) 유 치 환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 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 가지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 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2009.04.12 -
나비
나비 류 시 화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이제 막 동그라미를 그려낸 어린 해바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내가 삶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 때문 지구가 나비 한 마리를 감추고 있듯이 세상이 내게서 너를 감추고 있기 때문 파도가 바다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장난치는 어린 물고기 때문이다 바다가 육지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모래에 고개를 묻고 한 치 앞의 생을 꿈꾸는 늙은 해오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너는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나비의 그 날개짓 때문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2009.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