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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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 저녁
압록 저녁 공 광 규 강바닥에서 솟은 바위들이 오리처럼 떠서 황홀한 물별을 주워 먹는 저녁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저녁 강도 저와 닮아 속마음과 겉 표정이 따로 노나 봅니다 강심은 대밭이 휜 쪽으로 흐르는 것이 분명한데 수면은 갈대가 휜 쪽으로 주름을 잡고 있습니다 대밭을 파랗게 적신 강물이 저녁 물별을 퍼 올려 감나무에 빨간 감을 전등처럼 매다는 압록 보성강이 섬진강 옆구리에 몸을 합치듯 그대와 몸을 합치려 가출해야겠습니다
2009.09.12 -
들길에 서서
들길에 서서 신 석 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不絶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어니...
2009.09.05 -
산
산 법정 산을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2009.08.23 -
잎사귀 명상
잎사귀 명상 이 해 인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둥글게, 길쭉하게 뾰죽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 잎 어긋나기 잎 돌려나기 잎 무리지어나기 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2009.08.19 -
둥글레
둥글레 김 재 황 눈길이 나를 향할 때 아득한 달을 안는다 티없이 맑은 영혼이 내 가슴에 안긴다 너무나 순결한 아름다움을 주체할 수 없어서 피어나는 꿈 나는 다만 황홀함에 잠겨 한 방울 물방울로 구르다가 녹아들어 자연으로 귀일한다 이 목숨도 이슬방울로 영롱하게 숲에서 함께 빛난다
2009.08.03 -
오동꽃
오동꽃 이 해 인 비 오는 날 오동꽃이 보라빛 우산을 쓰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넓어져라 높아져라 더 넓게 더 높게 살려먼 향기가 없어도 괜찮다 나는 얼른 꽃 한 송이 되어 올라갔습니다. 처음으로 올라가 본 오동나무의 집은 하도 편안해 내려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오실래요?
2009.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