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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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꽃 사랑
자귀나무꽃 사랑 송 수 권 우리 산천 어디선들 이름없는 풀꽃들 보았느냐 푸른 버즘처럼 고목에 붙어 진기를 갇어 내는 겨우살이꽃 쉬엄쉬엄 오 리 길을 갈 때마다 길 표시로 심었던 오리 정자나무, 십 리 가서 십리나무꽃 봄이 먼저 와서 키 낮은 꽃다지 들 길에 자욱하고 밤 나그네새 울고 올 때 들머리에 뜬 저 주막집 불빛, 한 상 먹고 나와 뒷간에 앉아 쳐다보던 밤하늘의 캄캄한 먹빛 오디 열매들, 쥐똥같이 동그랗고 까만 쥐똥나무 열매들과 물에 담가 우리 영혼까지 얼비쳐 든 물푸레꽃, 이 나라 산천 발 닿는 곳 어디서껀 마을 앞 그 흔한 며느리밑씻개 개오줌꽃도 잘도 피지 않더냐 그중에서도 손주가 없어 중간대를 거른 방아다리손주 같은 유순한 저 자귀나무꽃 보아라 수꽃의 수술이 불꽃처럼 톡톡 튀는 여름산 비 그친..
2009.07.23 -
숲의 노래
숲의 노래 박 고 은 숲이 좋아 숲에 가면 신록으로 흐르는 대자연의 향연 솔향기 풀꽃내음 향훈 속을 딛는 걸음마다 울리는 정의 소리 풀벌레, 새 소리 술래 노는 다람쥐 합주에 놀라 터지는 머루알 붉은 산앵두로 목축이고 풀물 든 바위에 앉아 솔잎 하나 입에 물면 해맑은 시심은 순수서정 짙푸름이 동화된 육신은 나도 한 그루 나무 깊고 조화로운 숲 초록빛 여울 속 꿈 이파리로 흐른다 오월 피 천 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2009.07.12 -
길 위에서의 생각
길 위에서의 생각 류 시 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 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 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간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 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 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 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 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2009.07.12 -
산나리꽃
산나리꽃 엄 기 창 때로는 혼자일 때가 더 외롭지 않을 수도 있다. 닿을 수 없던 한 뼘만큼의 눈물 꽃술 속에 감춰두고 민들레 꽃씨처럼 그리움의 날개를 날려 한 송이 수줍은 산나리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때로는 기다리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바람이 밟고 가는 나뭇잎 소리에 가슴 설레며 사랑하는 마음 몰래 피었다가 몰래 떨어지는 산나리꽃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2009.07.06 -
감꽃 추억
감꽃 추억 김 인 강 향긋한 바람 이는 이른 저녁 무렵 후드득후드득 노란 감꽃 비처럼 떨어지면 동네 꼬마들 우르르 몰려나와 앉은뱅이걸음으로 감꽃 줍기 합니다. 웃옷 뒤집어 정신없이 모았던 감꽃 엉덩이끼리 부딪혀 와르르 쏟아지고 물 한 대야 떠 감꽃 동동 띄우던 샘터 손장난 물장난에 까르르 웃음소리 넘쳐납니다. 팔팔하고 싱싱하게 되살아난 꽃잎 제일 예쁜 종 모양 골라 입에 쏙 넣으면 달짝지근 떨떠름한 풀 맛 입안에 향기롭게 퍼져옵니다. 초록향기 휘익 스치고 지나는 날 무명실에 감꽃 보석 줄줄이 꿰어 목걸이 만들고 화관도 만들어 선물하던 돌담 아래 악동들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처럼 5월의 어느 날 동산 꽃 만발할 때 해맑은 웃음소리 싱그럽던 하얀 그리움 감꽃처럼 수수하게 피어납니다.
2009.07.05 -
조용히 살다 가라 하네
조용히 살다 가라 하네 이 민 숙 말 없는 들판은 조용히 살다 가라 하네 無念無想)무념무상 흘러가는 세월 속 서러워하지 말고 원망도 말고 그저 묵묵히 살다 가라 하네 마음을 비우면 가벼워지는 인생살이 비우는 방법과 다시 채우는 방법 묵언의 소리 깊게 깨달음 느끼며 살다 가라 하네 나무의 녹음처럼 짙어져 가을 서리맞아 떨어지는 낙엽이 겨울 길목 하얀 눈 속으로 사라지듯 순리대로 사는 게 인생이라 하네 바람은 그냥 지나쳐 가는 게 아니듯 우리도 언젠가는 바람처럼 가는 것을 認苦(인고)의 노력으로 삶의 흔적 새기면서 참 아프게 느끼며 살아가네
2009.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