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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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숲속에선 저절로 일렁이네
오월의 숲속에선 저절로 일렁이네 고 재 종 비 오고 활짝 개인 날인데도 오늘은 우체부조차 오지 않는 이 쓸슬한 자리보전 떨치고 뒷산 숲속에 드니 일렁이는 게 생생한 바람인지 제 금보석을 마구 뿌리는 햇살인지 온갖 젖은 초록과 상관하는 것인데 은사시, 자작나무는 차르르 차르르 게느삼, 수수꽃다리는 흐느적 흐느적 왕머루, 청미래덩굴은 치렁치렁 일렁이는 것이 당연할 뿐, 여기서 제 모자란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랑이여, 나 저절로 일렁이네 오월 숲속에선 뻐꾸기 한나절 호곡도 가슴 깊숙이 녹아내릴 뿐 세상은 너무 억울하지도 않네 그렇다네, 세월이 잠깐 비껴난 숲에서 일렁이는 것들이 진저리치다 산꿩의 썽썽한 목청을 틔울 때 사랑이여, 난 이 지상의 외로움 조팝꽃 그 쌀알 수만큼은 녹이겠네 아니아니 또르르륵 ..
2010.05.29 -
자작나무가 서있는 풍경
자작나무가 서있는 풍경 이 재 현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내 알까만 불어오는 바람이 없으면 저 잎사귀 달린 자작나무 가지가 그 어이 흔들릴까 그대가 없으면 그대 고운 눈짓에 내 가슴 어이 그리움으로 깊어가 뜨거운 눈물을 알았을까 바람 앞에 속절없이 가슴 내주는 자작나무 잎도 그러 하듯이 내 여린 가슴도 그대 향하는 초여름 별 돋는 하늘을 좋게 풀어 놓네 풀어 놓은 손수건만한 하늘이 숲을 덮는 걸 조용히 바라보네 그대 없는 내 숲의 밤은 하 쓸쓸하여 언제부터 일까 자작나무가지 하나 내 가슴으로 터를 잡은 것이
2010.05.28 -
불두화 미소
佛頭花 미소 박 두 범 인연 따라 왔다가 부처님 복덕으로 꽃이 되었나. 천불전 앞마당에 다소곳 웃음 머금고 날마다 진실하나씩 챙겨 담은 소담한 꽃 밝은 마음 지니고 활짝 핀 불두화가 오는 사람 반갑다고 인사를 하네. 팔만경 대법문을 듬뿍 안고서 말없이 바라보며 내미는 하얀 미소 무명중생 가슴마다 법문한줌 쥐어 주려고 허허라 함박웃음 퍼붓고 있네. 날마다 복 지으려 부처님 바라보다 佛頭花라 이름 하나 얻었나 보다.
2010.05.22 -
들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들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용 혜 원 들꽃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은 나를 옭아매던 것들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다 숲 향기를 온몸에 받으며 들꽃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맑아졌다는 것이다 늘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얽매이게 되는 것들을 훌훌 털어내는 것이다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순간 생각하는 것들이 바뀌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들꽃을 바라보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들꽃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어떤 이유도 말하지 않고 온몸을 다하여 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힘이다 틀 안에 숨어 살며 괴로움에 빠지기보다 들꽃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2010.05.09 -
선운사에서
선운사에서 최 영 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이별의 성격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사랑의 감정이 불같이 일어날 때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이별의 아픔을 빨리 잊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2010.05.08 -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도 종 환 피었던 꽃이 어느 새 지고 있습니다. 화사하게 하늘을 수놓았던 꽃들이 지난 밤비에 소리없이 떨어져 하얗게 땅을 덮었습니다. 꽃그늘에 붐비던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화사한 꽃잎 옆에 몰려 오던 사람들은 제각기 화사한 기억속에 묻혀 돌아가고 아름답던 꽃잎 비에 진 뒤 강가엔 마음없이 부는 바람만 차갑습니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살아가야 할 날들만 길고 멉니다. 꽃 한송이 사랑하려거든 그대여... 생성과 소멸, 존재와 부재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아름다움만 사랑하지 말고 아름다움 지고 난 뒤의 정적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올해도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2010.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