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02)
-
풀잎을 바라보며
풀잎을 바라보며 이 성 선 풀잎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삶을 생각한다. 이슬을 바라보며 깨끗한 삶을 생각한다. 풀잎처럼 맑은 눈빛으로 삶을 마치고 싶다. 물방울처럼 울림의 삶으로 흐르고 싶다
2017.10.04 -
흔들림에 닿아
흔들림에 닿아 이 성 선 가지에 잎 떨어지고 나서 빈 산이 보인다 새가 날아가고 혼자 남은 가지가 오랜 여운에 흔들릴 때 이 흔들림에 닿은 내 몸에서도 잎이 떨어진다 무한 쪽으로 내가 열리고 빈곳이 더 크게 나를 껴안는다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음 사이 고요한 산과 나 사이가 갑자기 깊이 빛난다 내가 우주 안에 있다
2017.10.03 -
소나무
소나무 이 성 선 너의 글씨는 구름에 쓴다. 너의 생각은 달빛으로 땅에 뿌린다. 시간을 건너뛰어 이 땅에 영원히 죽지 않는 죽어서도 팔을 들고 서 있는 하늘의 品 너 아직 이 나라에 살아 나 여기 산다. 이끼 낀 하늘에 찍힌 月印을 바라본다. 네 어깨는 힘세다. 네 사랑은 강철이다.
2017.10.02 -
저녁산을 바라보며
저녁산을 바라보며 이 성 선 어제는 산사의 마당에서 제 그림자를 쓸어내고 있는 사람을 하나 만났습니다. 오늘 저녁은 다시 잎 다 떨어진 나무 아래서 제 그림자가 큰 나무의 그림자가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을 하나 만났습니다. 살아 있음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입니까. 생명의 신비란 무엇입니까. 가을은 오고 물결은 높은 가지 끝 별에 부딪는데 나는 아무 아는 것도 없이 저녁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2017.10.02 -
별에게 물어봐야지
만일 한번만이라도 한데서 밤을 세워 본 일이 있는 분이라면, 인간이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는, 또 다른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적막 속에 눈을 뜬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낮은 생물들의 세상이지만요, 그러나 밤이 오면 그것은 물건들의 세상이랍니다. 별에게 물어봐야지 허 명 희 내게 별빛 한 줄기 달려오는 데 140억 년이나 걸렸대 오직 내게로만 오는데. 오늘 밤, 별에게 물어봐야지 학교 갔다오는 나처럼 놀다오지는 않았는지. 개울에 들러 가재를 잡았다던가 장난감 가게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구경 조금, 하지는 않았는지. 거미줄에 맺힌 빗방울이랑 풀잎이 달고 있는 아침이슬, 보랏빛 작은 제비꽃을 보고도 정말, 그냥 지나쳤는지. 그래서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아니냐구 오늘 밤 별에게 꼭, 물어봐야지...
2017.09.28 -
다시 느티나무가
다시 느티나무가 신 경 림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있다 그때까지는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 문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조금도 서러워하지 않았다 내가 다 커서거니 여기면서 이게 다 세상사는 이치거니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 옛날에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 보이거나 들리지는 않았다 내 눈이 너무 어둡고 귀가 멀어진 것을 그러나 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더욱 아름다워서
2017.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