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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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사람
풀잎 사람 이 성 선 아침 이슬에 젖은 풀잎 사람이고 싶다. 영혼 맑은 불꽃 타며 세상을 비치고 흔들리는 그렇게 순수하게 깨어 살고 싶다. 매일 빈 마음으로 새벽을 맞아 하늘 향기 홀로 저 어두운 밤을 지키며 홀로 저 짐승 소리를 듣고 가난한 잎새에 별을 받으며 미명에 더욱 아프게 떨리는 풀잎 시인이고 싶다.
2017.11.28 -
당신이 나를 스칠 때
당신이 나를 스칠 때 이 성 선 구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산길을 걸으며 내 앞에 가시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들의 꽃 피고 나비 날아가는 사이에서 당신 옷깃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당신 목소리는 거기 계셨습니다 산 안개가 나무를 밟고 계곡을 밟고 나를 밟아 가이없는 그 발길로 내 가슴을 스칠 때 당신의 시는 이끼처럼 내 눈동자를 닦았습니다 오래된 기와지붕에 닿은 하늘빛처럼 우물 속에 깃들인 깊은 소리처럼 저녁 들을 밟고 내려오는 산 그림자의 무량한 몸빛 당신 앞에 나의 시간은 신비였습니다 돌담 샘물에 떨어진 배꽃의 얼굴을 보았습니까 새벽 산에서 옷을 벗는 새벽빛을 보셨습니까 당신은 나의 길을 이렇게 오십니다 산사로 향한 따뜻한 길처럼 하늘에 새 날려보내고 서 있는 나무처럼 내 앞에 당신은 그렇게 계십니다
2017.11.28 -
구름
구름 이 성 선 구름은 허공이 집이지만 허공엔 그의 집이 없고 나무는 구름이 밟아도 아파하지 않는다 바람에 쓸리지만 구름은 바람을 사랑하고 하늘에 살면서도 마을 샛강에 얼굴 묻고 웃는다 구름은 그의 말을 종이 위에 쓰지 않는다 꺾어 흔들리는 갈대 잎새에 볼 대어 눈물짓고 낙엽 진 가지 뒤에 기도하듯 산책하지만 그의 유일한 말은 침묵 몸짓은 비어 있음 비어서 그는 그리운 사람에게 간다 신성한 강에 쓰고 나비 등에 쓰고 아침 들꽃의 이마에 말을 새긴다 구름이 밟을수록 땅은 깨끗하다
2017.11.26 -
별 숲에 들다
별 숲에 들다 이 효 순 한적한 산자락 도드라진 고운 별들 누가 흔드는지 흰 별 몇 개 깜박깜박 별빛 위로 어린 별들 돋아 별 숲이 된 산자락에 들면 별똥별 하나 심장에 빛을 긋고 빛을 품은 시인의 고운 숨소리 들린다
2017.11.19 -
나는 어떤 존재일까
나는 어떤 존재일까 하 영 순 먼 하늘을 봅니다걸림 없이 가는 구름이 부러웠습니다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는바람이고 싶었습니다 산골짜기 바위틈에 핀이름 없는작은 꽃 한 송이 현실에 취하고삶에 취해서세상 밖을 바라보던 내 눈이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내 안에 나를 너무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늘 밖으로만 바라보던 내 눈을잠시 안으로 돌려보렵니다 내 작은 우주 속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자각과 반성의 시간을 위해두 눈을 감아 봅니다
2017.11.06 -
조도(鳥道)
조도(鳥道) 이 성 선 작은 날개로 길을 다 지우고 가 버려서 그가 떠난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가지 위에 떨림 하나 그것도 잠깐 만에 사라졌다 그의 삶 不立文字 황홀한 鳥道
2017.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