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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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햇살 최 석 봉 숲이 하늘을 온통 가리지 않는 것은 햇살을 안아보려는 간절한 바람인 것을 숲에 와서야 알았네 긴 백년을 마주한 속삭임 가슴만 뜨거워 가깝게 다가서지 못해 쌓인 열정 강렬하게 내려꽂는 햇살을 맞으려 시려오는 아랫도리를 내어놓고 저렇게 하늘쪽을 열고 있다네 크낙새 부리로 꼭꼭 찍어보는 간지러움 밤에는 쪽달 찬 별 가지에 머물다 간들 어디 햇살만 하겠는가 쏙쏙 비집고 들어오는 찬란한 햇살 명주올 한 묶음 걷어들여 밑동을 친친 감아 봤으면 좋겠다네
2010.08.27 -
물그림자
물그림자 이 민 숙 널브러진 아픔에 기대 거꾸로 선 물그림자 들여다본다 거꾸로 선체 가지를 흔들고 꽃잎을 흔들고 하얗게 꽃잎도 날린다 물구나무서서 그림자로 사는 것도 아닌데 아플 때가 잦은 것일까 아픔이 지나가면 거꾸로도 잘만 흘러간다고 흘러가다 보면 바로 선 그림자가 보인다고 가만가만히 조용조용히 잔잔하게 흔들리라 한다 물그림자처럼
2010.08.21 -
꿀벌의 꿈
꿀벌의 꿈 김 정 호 기나긴 장마가 그치고 어두운 동굴에 황소바람이 불어오면 숭숭 뚫린 하늘은 한줄기 초연한 빛을 내리고 해는 산등을 힘겹게 타오르고 있다 울어보지 못한 새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법 어디 세상에 상처 입은 게 너뿐이더냐 절망은 이겨 내야할 숙명처럼 향기 없는 꽃이라도 부지런히 찾아 가슴에 달라붙은 허리 안고 이슬에 젖은 날개를 퍼득거린다 윙윙거리는 귀 울림 무너져 내리는 산을 넘는다
2010.08.16 -
벌개미취
벌개미취 김 길 자 하늘연달에 마주치는 들국화보다 여름을 머리에 이고 가을을 제일 먼저 알리는 나는 순수한 혈통입니다 매미도 6,7년 동안 준비한 노래 여름의 몇 낮밤을 원 없이 들으며 잠자리 푸른 눈망울에 가을향기 모으는 중이지요 각박한 세상 별이 박힌 듯 옹기종기피기에 ‘별개미취’라 부르는데 제 이름은 벌개미취입니다 화사하진 않지만 뿌리 끝에서 힘껏 밀어 올리는 몸부림으로 뙤약볕일지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짐 없이 피었다 가지요
2010.08.15 -
해 지는 소리
해 지는 소리 이 성 선 향기 있는 사랑이 그립다 해 지는 소리 남아 있는 산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잔다 산이 저무는 시간 물 속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면 세상은 깊어지는데 사람들만 야단이다 꽃이 지면 허공은 새롭다 새 그림자 지나가면 물이 더 맑다 남으려 하는 것은 욕된 것 머물려 하는 것은 아직 너를 넘어서지 못한 것 삭발한 산을 따라 기다리는 이 없는 곳으로 떠돌리라 물 속 빈 산에서 들리는 당신의 독경소리 찾아
2010.08.14 -
바람꽃
바람꽃 박 인 과 그리움의 하얀 노래 위에 먼 수평선을 흐르는 흰 구름 밑에 밀물에 밀리어 바람에 밀리어 방황하던 슬픈, 계절의 영혼이여 파도가 치는 날 흔들려 오는 풀밭처럼 아지랭이처럼 짙은 안개 속 산골물 거슬러 올라가서 잔 가지 솔잎 사이 허공의 흐느낌을 그때 들으리라 가시밭 돌뿌리의 거친 숨소리도 그때 들으리라 힘차게 낙하하는 폭포수의 성난 아우성을 그때에 들으리라 잘 익은 태양의 주머니 터져 무지개 빛살 쏟아지고 온갖 새들이 둥지를 트는 그 숲에 이르면, 세월이 지나간 자리, 푸른 잡초 우거진 작은 오솔길 속에 하얀 날개를 드리우리라 흰구름 머무는 그 푸른 숲에 한 송이 하얀 꽃을 피우리라
2010.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