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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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서 정 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2010.07.20 -
석련(石蓮)
석련(石蓮) 정 호 승 바위도 하나의 꽃이었지요 꽃들도 하나의 바위였지요 어느 날 당신이 나를 찾은 후 나의 손을 처음으로 잡아주신 후 나는 한 송이 석련으로 피어났지요 시들지 않는 연꽃으로 피어났지요 바위도 하나의 눈물이었지요 눈물도 하나의 바위였지요 어느 날 당신이 나를 떠난 후 나의 손을 영영 놓아버린 후 나는 또 한 송이 석련으로 피어났지요 당신을 향한 연꽃으로 피어났지요
2010.07.20 -
홍련
홍련 최봉희 1. 세상에 공양하듯 붉은 빛 가슴 열어 흰 몸은 가냘프게 세상을 이어간다. 잎새엔 부처님 웃음 염주알이 구른다. 2. 구정물 잔 물결에 극락을 꿈꾸듯이 정토에 나뜬 맵시 어여쁜 여인일세 가슴엔 꽃무늬 새겨 두 손 모아 빌거늘
2010.07.18 -
물이끼
물이끼 박 유 동 큰 바윗돌 물위에 우뚝 솟았고 골짝물이 굽이치며 흘러내리네 낙화도 동동 떠내려가고 단풍잎도 동동 떠내려가고 빨간 산과일도 떠내려가고 물속에 사는 물벌레마저 떠내려가는데 작디작은 물이끼 보소서 큰 바윗돌에 딱 달라붙었으니 바위는 온통 푸른 물이끼로 덮이었네 바위는 반지라운 비취색 보석만 같네 물이끼 작은 잎은 보이듯 말 듯 물이끼 작은 꽃은 피듯 말 듯 물이끼는 제 못난 꼴을 아예 찾지 말라네 설혹 제 모습 보려거든 큰 바위를 바라보라네 천만년 끄덕 않을 푸른 바위를.
2010.07.17 -
반짝이는 늪에 관한 명상
반짝이는 늪에 관한 명상 배 한 봉 아침은, 물면을 가득 덮은 개구리밥, 생이가래 위로 빛의 그물을 던진다.부들과 창포, 왕버들 잎사귀에 맺힌 이슬의 긴장이 그 엽맥까지 투명하게 비춘다. 빛이 닿을 때마다 그 팽팽한 힘에 퉁겨 파멸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저 물방울, 물방울들의 투신. 그때 개구리가 초록동색으로 울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물방울이 물면을 퉁길 때의 그 눈부신 파멸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전율하듯이 소금쟁이, 물땡땡이, 게아재비가 튀어 오른다. 튀어 올랐다가 자맥질한다. 물닭 가족이 지나가고 고니 떼가 날아오른다. 이 불멸의 길, 1억 년의 삶과 역사가 기록돼 있기 때문일까? 늪은 사색의 눈을 뜨고 꿈틀거린다. 하늘을 끌어안고 몇 점 구름을 띄우는 저 검초록 영혼의 심연, 양수 출렁이는 자궁..
2010.07.16 -
마이산 탑사
마이산 탑사 潤疇 목필균 알면서 저지른 죄가 더 크다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알 수 없는 이 세상에 죄 없이도 평생을 고개 숙이고 돌탑을 쌓으며 정진해온 이갑용 도사가 있어 마이산에 탑사를 열었다 하늘같다는 지아비로, 대지를 품은 지어미로 세상을 내려다보는 천지탑이 되어 어리석은 중생들 품으라 이르니 해묵은 능소화는 절벽을 오르고 겨울엔 고드름도 하늘을 향했다는데 쓰고, 달고, 시고, 짜고, 매운 세상살이 쏜살같은 흘러가는 세월을 갖가지 형상으로 눈앞에 보여주는 돌탑 태풍에 흔들릴 수 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2010.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