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16. 12:32ㆍ시 모음/시
반짝이는 늪에 관한 명상
배 한 봉
아침은, 물면을 가득 덮은 개구리밥, 생이가래 위로 빛의 그물을 던진다.부들과 창포, 왕버들 잎사귀에 맺힌 이슬의 긴장이 그 엽맥까지 투명하게 비춘다. 빛이 닿을 때마다 그 팽팽한 힘에 퉁겨 파멸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저 물방울, 물방울들의 투신. 그때 개구리가 초록동색으로 울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물방울이 물면을 퉁길 때의 그 눈부신 파멸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전율하듯이 소금쟁이, 물땡땡이, 게아재비가 튀어 오른다. 튀어 올랐다가 자맥질한다. 물닭 가족이 지나가고 고니 떼가 날아오른다. 이 불멸의 길, 1억 년의 삶과 역사가 기록돼 있기 때문일까? 늪은 사색의 눈을 뜨고 꿈틀거린다. 하늘을 끌어안고 몇 점 구름을 띄우는 저 검초록 영혼의 심연, 양수 출렁이는 자궁 내부의 어둠이 부초들의 뿌리에 젖을 물린다. 물면의 햇빛과 만나는 태초의 어둠. 이것은 우주의 블랙홀이다. 에너지의 집합체인 블랙홀. 그곳에서 생멸을 거듭해온 존재들, 빛 이전의 빛, 생명 이전의 생명이 빅뱅의 기운을 타고 치솟는 것을 본다. 깊고 어두운 자궁을 향해 아침은 쉴새없이 빛의 금가루를 뿌린다. 존재의 고향, 축축하고 질퍽하고 어두운 심연의 땅바닥까지 온기를 밀어 넣는다. 산란기를 맞은 물고기들은 열심히 알을 낳을 것이고, 배부른 왜가리는 오랫동안 둥지의 알을 품을 것이다. 그렇구나. 늪이 반짝이는 것은 크고 작은 우주들의 눈부신 운행이 그려내는 파문 때문이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영원히 멸하지 않을 생명들이 벌이는 그 찬란한 화엄의 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