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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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풍경소리 박 태 강 땡- 땡- 땡- 산사의 풍경 때묻지 않은 소리 새벽 이슬같이 청아하고 소낙비 온뒤 산야 처럼 마음을 잡는 맑은 소리 누구도 범접하기 힘들고 아련하게 가슴닫는 해탈의 법문 소리 그 소리에 욕심 없어지고 마음 뿌리에 평안 함이 솟고 땡- 땡- 땡- 법령의 소리 청량수 처럼 마음 녹이는 진정한 부처님의 소리.
2011.01.14 -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그 외로운 봉우리와 하늘로 가야겠다. 묵직한 등산화 한 켤레와 피켈과 바람의 노래와 흔들리는 질긴 자일만 있으면 그만이다. 산 허리에 깔리는 장미빛 노을, 또는 동트는 잿빛 아침만 있으면 된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혹은 거칠게, 혹은 맑게, 내가 싫다고는 말 못할 그런 목소리로 저 바람 소리가 나를 부른다. 흰 구름 떠도는 바람 부는 날이면 된다. 그리고 눈보라 속에 오히려 따스한 천막 한 동과 발에 맞는 아이젠, 담배 한가치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떠돌이 신세로. 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곳, 들새가 가는 길, 표범이 가는 길을 나도 가야겠다. 껄껄대는 산사나이들의 신나는 이야기와 그리..
2011.01.06 -
내소사에서의 몽유(夢遊)
내소사에서의 몽유(夢遊) 김 경 윤 눈발이 성성한 한겨울인데도 내소사 대웅전 창살에 국화꽃이 만발했다기에 혹, 국화 향기라도 맡아볼까 어두커니 새벽 염불소리에 마음이 먼저 山門을 지나 꽃밭에 갔지요. 그예 능가산 기슭 꼭두서니빛 아침햇살에 우련히 피어난 화사한 꽃들. 창 밖을 아무리 기웃거려도 끝내 향기가 없어 그저 색 바랜 꽃살문만 만지다 내려오는 길에 지장암 비구니 스님이 하도나 곱다기에 잠시 들렀는데요. 글쎄 대웅전 창살에 피었던 그 국화꽃 향기가 그새 바람결에 건너온 겐지, 스님이 건네주는 茶香이 어찌나 그윽하던지 한참을 그 향기에 취하여 넋 놓고 바라보니, 오롯이 가부좌로 앉아 계신 늙은 비구니 스님의 얼굴에도 성긋성긋 국화꽃이 피어 방안이 다 환해지고요 그날 山寺를 내려오는 눈밭에 새긴 내 발..
2010.12.25 -
낙동강
낙동강 - 권 순 자 너는 기억하고 있구나 안개 자욱한 새벽 조용히 노래 부르기도 하는 너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구나 모든 모욕과 모든 성쇠가 작아지고 작아져 자갈처럼 작아져 물속으로 고요히 가라앉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면서 흐르고 흘러 모래톱이 된다는 것을 네 입술이 노래하는 것을 새들이 듣고 네 입술이 흘러 보낸 물길에 천년 물고기가 목숨을 이어간다는 것을 나무들이 수천 번의 잎을 달았다 떨구고 꽃들이 수만 번의 꽃잎을 피웠다 잃는 동안 붉은 열매로 제 나이테를 대대손손 이어가는 붉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작아지고 작아져야만 제대로 볼 수 있고 약해지고 약해져야만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낮고 낮은 심장이여 네 무릎은 낮아서 쉽게 젖어들고 네 귀는 밝아서 낮게 흐르는 소리도 듣는구나 너는 참으로 울음을 아나니..
2010.12.08 -
가을, 피카소의 물감 통
가을, 피카소의 물감 통 우당 김 지 향 피카소가 하늘 이마에 왕방울 황소 눈을 매달았다 풀잎들이 손끝으로 황소 눈알이 머금고 있는 물감을 톡, 퉁긴다 뼈 채로 서 있는 나뭇가지에 왕방울 홍시가 열린다 하늘 이마 군데군데 얼룩처럼 빨간 칠을 한 홍시가 가을바람을 굴린다 나무들이 내는 뭉툭한 타악기 소리 가을을 밟고 가는 이들의 가슴에 자고 있던 추억의 씨가 목을 빼고 내다본다 하늘 가슴도 포물선처럼 숨차게 나부낀다 사방천지 피카소의 왕방울 눈이 댕그랑 댕그랑 황소 목에 걸린 방울 소리를 내며 가을이 깊어간다 깊어가는 가을밤엔 맘껏 퍼내지 못한 채 단풍드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해명이 안 되는 피카소의 황소눈알을 떠 와서 보글보글 클래식과 재즈를 뒤섞어 끓인다
2010.11.03 -
용문산
용문산 노 현 숙 늦가을 골짜기 물소리 새소리 상치빛 하늘의 건반을 두들기고 있다 너를 처음 만났던 날 짙은 향내음으로 정지되었던 나는 국화향 가슴이었고 흔적없이 돌아선 너를 마른 손끝으로 매달려 보지만 차디찬 침묵 뿐 아직도 너를 부르고 있는 그리움의 메아리만 바람으로 불어 오고 벌거벗은 가을이 균열의 시간들을 갈대빛 햇살에 뿌리째 말리고 있다
201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