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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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색잔영(秋色殘影)
추색잔영(秋色殘影) 변 학 규철 따라 허물 벗는알몸 사린 벼랑 아래 걸음처럼 밀려가는숨 모우는 편영(片影)이여흐르는 잔물살 속에굽어보는 깊은 하늘.
2019.11.10 -
11월
11월이 전하는 말반 기 룡(1961- ) 한 사람이 서 있네그 옆에 한 사람이 다가서네이윽고 11이 되네서로가 기댈 수 있고 의탁이 되네직립의 뿌리를 깊게 내린 채나란히 나란히 걸어가시네북풍한설이 몰아쳐도꿈쩍하지 않을 곧은 보행을 하고 싶네한 사람 또 한 사람이 만나조화와 균형을 이루고올곧은 모습으로어기여차 어기여차장단에 맞춰 풍악에 맞춰사뿐히 사뿐히 걸어가시네삭풍이 후려쳐도평형감각 잃지 않을온전한 11자로 자리매김하고 싶네 11월오 세 영(1942- )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돌아보면다들 떠나갔구나,제 있을 꽃자리제 있을 잎자리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상강(霜降).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맨땅에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시대를 통곡한다.시들..
2019.10.22 -
흙과 바람 - 朴 斗 鎭
흙과 바람애경초(愛經抄) 兮山 朴 斗 鎭(1916-1998) 흙으로 빚어졌음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리.바람으로 불어 넣이었음 마침내바람으로 돌아가리.멀디 먼 햇살의 바람 사이햇살 속 바람으로 나부끼는 흙의 티끌홀로서 무한 영원별이 되어 탈지라도말하리.말할 수 있으리.다만 너살아 생전살의 살 뼈의 뼈로 영혼 깊이 보듬어후회 없이후회 없이사랑했노라고. 파초우(芭蕉雨) 조 지 훈(趙 芝 薰) 외로이 흘러간 한송이 구름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성긴 빗방울파초잎에 후드기는 저녁 어스름창열고 푸른 산과마주 앉아라.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기에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온 아츰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2019.10.19 -
별 밭에 누워
별 밭에 누워박 두 진(朴斗鎭, 1916-1998) 바람에 쓸려 가는 밤하늘 구름 사이저렇게도 파릇한 별들의 뿌림이여누워서 반듯이 바라보는내 바로 가슴 내 바로 심장 바로 눈동자에 맞닿는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그 삼빡이는 물기 어림가만히 누워서 바라보려 하지만무심하게 혼자 누워 바라만 보려 하지만오래오래 잊어버렸던 어린 적의 옛날소년쩍 그 먼 별들의 되살아옴이여가만히 누워서 바라보고 있으면글썽거려 가슴에 와 솟구치는 시름외로움인지 서러움인지 분간 없는 시름죽음일지 이별일지 알 수 없는 시름쓸쓸함도 몸부림도 흐느낌도 채 아닌가장 안의 다시 솟는 가슴 맑음이어어떻게도 할 수 없는 울고 싶음이어어떻게도 할 수 없는 소리지름이어
2019.10.13 -
돌의 미학 -趙芝薰
돌의 미학 趙 芝 薰 돌의 맛─그것도 낙목한천(落木寒天)의 이끼 마른 수석(瘦石)의 묘경(妙境)을 모르고서는 동양의 진수를 얻었달 수가 없다. 옛사람들의 마당 귀에 작은 바위를 옮겨다 놓고 물을 주어 이끼를 앉히는 거라 든가, 흰 화선지 위에 붓을 들어 아주 생략되고 추상된 기골이 늠연(凜然) 한 한 덩어리의 물체를 그려 놓고 이름하여 석수도(石壽圖)라고 바라보고 좋아하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흐뭇해진다. 무미한 속에서 최상의 미를 맛보고, 적연부동(寂然不動)한 가운데서 뇌성벽력(雷聲霹靂)을 듣기도 하고, 눈 감고 줄 없는 거문고를 타는 마음이 모두 이 돌의 미학에 통해 있기 때문이다. 동양화, 더구나 수묵화의 정신은 애초에 사실이 아니었다. 파초 잎새 위에 백설을 듬뿍 실어놓기도 하고, 10리 둘레의 ..
2019.10.10 -
문무대왕 해중릉, 석굴암 본존불 / 최순우
석굴암 본존불 경주 토함산 중턱에 자리 잡은 석굴암에서 앞을 바라보면 멀리 동해로 트인 양장구곡의 계곡을 따라 대종천이 흐르고 이 내가 바다로 이어지는 월성 군 봉길리 어촌의 앞바다에 대왕암이라 일컫는 큰 암초가 솟아 있다. 이 암초의 중앙에 넓고 네 칸 정도의 방형으로 파 내려간 인공 못이 있고, 이 못 속에는 흡사 거북이나 전복의 등 모양으로 만든 거대한 뚜껑을 덮은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의 능이 맑고 푸른 물속에 신비롭게 안치되어 있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성왕 문무대왕은 평화로운 신라를 항상 노략질하는 왜구를 저주한 나머지 "내가 죽으면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왜적을 무찌르겠노라. 부디 나의 뼈를 동해 바다에 장사 지내 달라.'는 뜻의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신 애국심의 화신 같은 위인이었다. 그분의 이..
2019.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