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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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향기가
산에서 향기가 이 성 선 산에서 향기가 흘러나오기에 저녁이 깊지만 산으로 들어간다. 산 위에 꽃이 붉게 빛나기에 아침에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산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날은 한밤중에도 깨어나 산정을 바라본다. 산에 가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여기 와서 하는 제일 좋은 일이다.
2013.06.02 -
능엄경 밖으로 사흘 가출
능엄경 밖으로 사흘 가출 능엄경 밖으로 사흘 무단가출해 돌아오지 않는 마음을 안으로, 조용히, 불러들였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혹사시킨 말의 상처, 그 뭇매를 맞은 죄 없는 마음을 치료 하려,곰취 잎사귀에 뿌리를 넣어 녹즙을 냈어요 뿌리로 독 을 빼낸,푸른 물 한 컵, 공복에, 쭈욱 들이켰어요 그리고는 식탁에 앉아 잠시,찰나삼매에 빠졌지요 평상심,그 편안한 느낌을 금방 알아챘어요 현재의 마음을 바라보는 또 하나, 바깥의 마음을 보았지요 마음을 허방에 빠뜨리고, 껍데기 만 거리를 오고 가면서, 왜 그리, 허둥대고 사방 분주하였 던지요 나를 알아차림 후에는,진정 흔들림 없고 치우침 없 는, 고요가 올까요 이제 마음을 몸에 붙여, 참하게 길들이 기로 하겠어요 몸통이라는 그릇에 담은 본 마음 있는 그대로..
2013.05.12 -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 한 이 나 마음 '심心'자 한자 위에 떠 있는 팔만대장경이 마음을 들어내자 가볍게 사라진다. 행방이 묘연하다. 울타리 밖에서 서성이던 팔만 지옥의 근심이 기댜렸다는 듯 곧장 달겨드는, 백지 한 장의,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인,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나 했던가. 아무 일도 없는 듯 하루가 이틀이 한 달이 무심히 건너간다. 까맣게 꿈을 잊고 있다가 보면 뜬금없이 우주 저쪽에서 모르스 부호가 울릴지도 모르지. 마음 '심心'자 한자 위에 다시 세운 팔만대장경이 기우뚱 오후 두시로 기울어져 있다.
2013.05.11 -
먹참선
먹참선 한 이 나 느릿느릿 붓끝에 먹물 묻혀 사군자를 친다 창호지에 새벽 푸르름이 묻어올 때까지 선을 따라 대를 그리고 마디를 넣고 이파리를 하나하나 채워가는 딴 세상 먹참선 대나무 그림 마음과 몸을 하나로 묶는다 마디마디 나를 느낀다 두루적막 속 먹향기는 멀어질수록 향기롭다
2013.05.09 -
병 기울면 달빛조차 간데 없음을
산에 사는 스님이 달빛을 탐내 달빛마저 물병에다 뜨고 있구나 절에 가선 바야흐르 깨달으리라 병 기울면 달빛조차 간 데 없음을 -이 규 보
2013.05.02 -
시골 망동리 생활
시골 망동리 생활 김 정 국 내 밭이 넓진 않아도 배 하나 채우기에 넉넉하고 집이 좁고 누추해도 몸 하나는 언제나 편안하네 밝은 창에 아침 햇살 오르면 베개에 기대어 옛 책을 읽고 술이 있어 스스로 따라 마시니 영고성쇠는 나와는 무관하네 무료할 거라곤 생각지 말게 진정한 즐거움은 한가한 삶에 있나니. 我田雖不饒 一飽卽有餘我廬雖阨陋 一身常晏如晴窓朝日昇 倚枕看古書有酒吾自斟 榮瘁不關予勿謂我無聊 眞樂在閑居
201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