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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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처럼
연꽃 처럼 최 이 인 내 얼마만큼 도를 닦아야 너처럼 흐린 연못에서도 맑게 살 수 있니? 우리가 어느 만큼이나 수행을 해야 둥둥 떠다니지 않고 너처럼 마음을 정하니 ? 모두가 어떻게 살아가야 너처럼 더러운 곳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니?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만 보라. 귀로 듣지 말고 가슴으로 들어라. 너는 소리없이 말을 하고 미소짓는데 나는 무엇이 되어야 너처럼 고귀하게 행동을 하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너처럼 품위를 잃지 않고 환하게 세상을 밝히니? 모두가 몇 만겁이나 고행을 해야 너처럼 늘 엎드려 위대한 하늘을 우러러 사니?
2011.07.06 -
소나무
소나무 김 지 명 천년의 청송(淸松) 황금빛 송화 가루 삶의 여유 자랑하고 태고의 세월에도 언제나 변함없는 자태를 자아내고 마디마다 고통의 세월 청록 잎의 솔향기 바람 따라 흩어지네 나이테 늘려갈 때 마른하늘에 이슬먹고 불사조 같이 살아가는 소나무
2011.05.30 -
깊은 물
깊은 물 도 종 환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 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는가 굽이 많은 이 세상 이 시냇가 여울을 당신은 얼마나 깊은 물인가. 당신의 물에는 술잔 하나, 종이배 하나 뜨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당신과 나, 이렇게 분열되고 고통스러운게 아닌가. 부디 당신의 가슴속에는 깊은 강물이 흐르기를. 그 강물에 큰 배가 뜨고, 그 배가 바다로 흘러가기를. 그 배를 타고 모든 이들이 평화롭기를. ('정호승과 떠나는 작은 詩여행' 에서)
2011.05.28 -
빛깔
빛 깔도 종 환 봄에는 봄의 빛깔이 있고 여름에는 여름의 빛깔이 있다 겨울 지등산은 지등산의 빛깔이 있고 가을 달래강에는 달래강의 빛깔이 있다 오늘 거리에서 만난 입 다문 이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 살아오면서 몸에 밴 저마다의 빛깔이 있다 아직도 찾지 못한 나의 빛깔은 무엇일까 산에서도 거리에서도 변치 않을 나의 빛깔은.
2011.05.21 -
논물 드는 5월에
논물 드는 5월에 안 도 현 그 어디서 얼마만큼 참았다가 이제서야 저리 콸콸 오는가 마른 목에 칠성사이다 붓듯 오는가 저기 물길 좀 봐라 논으로 물이 들어가네 물의 새끼, 물의 손자들을 올망졸망 거느리고 해방군같이 거침없이 총칼도 깃발도 없이 저 논을 다 점령하네 논은 엎드려 물을 받네 물을 받는, 저 논의 기쁨은 애써 영광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 출렁이며 까불지 않는 것 태연히 엎드려 제 등허리를 쓰다듬어주는 물의 손길을 서늘히 느끼는 것 부안 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나도 좋아라 金萬傾 너른 들에 물이 든다고 누구한테 말해주어야 하나, 논이 물을 먹었다고 논물은 하늘한테도 구름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논둑한테도 경운기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방금 경운기 시동을 끄고 내린 그림자한테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2011.04.30 -
들꽃에게
들꽃에게 박 이 현 네 거기서 나 여기서 바람에 흔들리는구나. 저어기 산등성에 묘지 하나씩 늘어 갈 때 마음은 엉겅퀴에 찔려 상처는 상처 위에 덫나도 여전히 바람은 부는구나. 네 거기 나 여기 세상이야기 많다지만 해바라기 씨앗 영글 가을 쯤에 만나 네 아무는 흔적 위로 입김 호호 불어줄게.
2011.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