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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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풍경
11월 풍경 (宵火)고은영 억새꽃 무리지어 싸늘한 바람에 흐르나니 새들은 떼지어 사랑을 찾아 날아가네 창백한 아침이면 계절 가득 들녘에 피는 서리꽃 가난한 자들의 눈 위로 자꾸만 그리운 안부를 묻네 삭막한 거리여 식어가는 대지에 마지막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픈 기억을 안고 이별의 슬픈 하강 곡선에 제 몸을 누일 것이냐 움츠리는 가슴 찬 기류 속을 달려온 세월이여 방황하는 모든 것들과 계절도 제가 돌아가야 할 길을 알고 사랑과 이별의 아픈 선로에서 말없이 떠나 보내고 남아 있어야 할 것들의 서러움을 노래한다 겨울의 목전에 서서 아, 우리는 또 얼마나 기다려야 따뜻한 기억의 사랑을 회복할 것이냐
2011.11.21 -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 고산 윤선도 五友歌 중에서 □대나무 땅속 줄기가 그물처럼 뻗어 넓게 퍼지고 땅속 줄기의 마디 부분에서 새순(죽순)이 나와 한 달만에 높게 자라 숲을 이룬다. 대나무는 한번 자란 후 더 이상의 생장을 하지 않으며 나이테가 없기 때문에 풀로 볼 수도 있고, 겨울에도 꼿꼿하게 서 있을 뿐 아니라 껍질이 단단하여 나무로도 볼 수 있다. 대나무는 60-120년만에 단 한번 꽃을 피운 후 즉시 죽는다.
2011.11.19 -
淸茶一椀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2011.11.12 -
인동(忍冬) 잎
인동(忍冬) 잎 김 춘 수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근교(近郊)에서는 보지 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먹고 있다. 월동(越冬)하는 인동(忍冬) 잎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인간(人間)의 꿈보다도 더욱 슬프다.
2011.11.12 -
목어(木魚)
목어(木魚) 박 종 영 목어는 뱃속을 비워내야 소리가 맑다 하였는가 그 뱃속 누구에게 내어주고 마른 허기로 둔탁한 구걸인가 풍경이 울 때마다 지느러미 물기 털어내 세월풍 한 소절 따라 부르는 슬픈 울음, 염화시중(拈華示衆),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인자한 미소 빛 바랜 단청 곱게 일어서고, 목어 너, 맑은 소리공양으로 온 생이 환해지는 절집.
2011.10.15 -
그리운 부석사
그리운 부석사 정 호 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2011.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