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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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거(山居)
산거(山居) 만해 한 용 운 티끌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것을 잊는다 하기에 산을 깎아 집을 짓고 돌을 뚫어 샘을 팠다. 구름은 소인 향하여 스스로 왔다 스스로 가고 달은 파수꾼도 아니언만 밤을 세워 물을 지킨다. 새소리를 노래라 하고 솔바람을 거문고라 하는 것은 옛사람의 두고 쓰는 말이다. 님 그리워 잠 못 이루는 오고 가지 않는 근심은 오직 작은 배개가 알 뿐이다. 공산(空山)의 적막이여 어디서 한가한 근심을 가져오는가. 차라리 두견성(杜鵑聲)도 없이 고요히 근심을 가져오는 오오 공산의 적막이여.
2012.06.06 -
포도주
포도주 가을 바람과 아침 볕에 마치맞게 익은 향기로운 포도를 따서 술을 빚었습니다. 그 술 고이는 향기는 가을 하늘을 물들입니다. 님이여, 그 술을 연잎 잔에 가득히 부어서 님에게 드리겠습니다. 님이여, 떨리는 손을 거쳐서 타오르는 입술을 축이셔요. 님이여, 그 술은 한밤을 지나면 눈물이 됩니다. 아아 한밤을 지나면 포도주가 눈물이 되지마는, 또 한밤을 지나면 나의 눈물이 다른 포도주가 됩니다. 오오 님이여.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2012.06.05 -
어느 것이 참이냐
어느 것이 참이냐 엷은 紗의 장막이 적은 바람에 휘둘려서 처녀의 꿈을 휩싸듯이, 자취도 없는 당신의 사랑은 나의 청춘을 휘감습니다. 발딱거리는 어린 피는 고요하고 맑은 천국의 음악에 춤을 추고 헐떡이는 적은 靈은 소리없이 떨어지는 天花의 그늘에 잠이 듭니다. 가는 봄비가 드린 버들에 둘려서 푸른 연기가 되듯이, 끝도 없는 당신의 淸실이 나의 잠을 얽습니다. 바람을 따라가려는 짧은 꿈은 이불 안에서 몸부림치고, 강 건너 사람을 부르는 바쁜 잠꼬대는 목 안에서 그네를 뜁니다. 비낀 달빛이 이슬에 젖은 꽃수풀을 싸라기처럼 부시듯이 당신의 떠난 恨은 드는 칼이 되어서, 나의 애를 도막도막 끊어놓았습니다. 문밖의 시냇물은 물결을 보태려고, 나의 눈물을 받으면서 흐르지 않습니다. 봄동산의 미친 바람은 꽃 떨어트리는..
2012.06.04 -
숲에서 생각함
숲에서 생각함 김 영 준 죽음도 저 같이 풀벌레 울음소리이거나 작은 개울물 소리이거나 먼 데서 밀려오는 바람소리이거나 혹은 너무도 어두워 어둡지 않은 밤하늘이었으면 하는 생각 중에 비 내린다 죽음도 저 같이 고추나무 말채나무 국수나무 쉬나무 같은 이름으로만 남을 수 있다면 작살나무 층층나무 귀룽나무 같은 이름으로 떠돌아 일일이 기억되지 않는다면 하는 생각 중에 어디선가 새 한 마리 할喝, 짖고 간다
2012.06.02 -
꽃이름 외우듯이
꽃이름 외우듯이 이 해 인 우리 산 우리 들에 피는 꽃 꽃이름 알아가는 기쁨으로 새해, 새날을 시작하자 회리바람꽃, 초롱꽃, 돌꽃, 벌깨덩굴꽃 큰바늘꽃, 구름채꽃, 바위솔, 모싯대 족두리풀, 오리풀, 까치수염, 솔나리 외우다 보면 웃음으로 꽃물이 드는 정든 모국어 꽃이름 외우듯이 새봄을 시작하자 꽃이름 외우듯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즐거움으로 우리의 첫 만남을 시작하자 우리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먼데서도 날아오는 꽃향기처럼 봄바람 타고 어디든지 희망을 실어나르는 향기가 되자
2012.05.24 -
저녁밥 -山詩 1
저녁밥 - 山詩 1 이 성 선 나는 저 산을 모른다 모르는 산 속에 숨어 피는 꽃 그것이 나의 저녁밥이다.
2012.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