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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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골짜기
우주 골짜기 -山詩 34 이 성 선 옹달샘 가에서 갓 피어난 동자꽃이 샘물을 들여다 본다 샘물이 물 마시러 찾아온 사슴을 쳐바본다 작은 우주 골짜기
2012.07.22 -
여름비
여름비 -山詩 15 이 성 선 대낮에 등때기를 후려치는 죽비소리 후두둑 문밖을 달려나가는 여름 빗줄기
2012.07.22 -
산을 배우면서부터
산을 배우면서부터 이 성 부 산을 배우면서부터 참으로 서러운 이들과 외로운 이들이 산으로만 들어가 헤매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느껴질 때는 이미 그것들 저만치 사라지는 것이 보이고 산과 내가 한 몸이 되어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잊어버렸을 때는 머지않아 이것들이 가까이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집과 사무실을 오고 갈 적에는 자꾸 산으로만 떠나고 싶어 안절부절 떠나기만 하면 옷 갈아입은 길들이 나를 맞아들이고 더러는 억새풀로 삐져나온 나뭇가지로 키를 조금 넘는 조릿대 줄기로 내 이마와 뺨을 때려도 내맞는 즐거움 아름답게 살아남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오르락내리락 더 흘릴 땀도 말라버려 주저앉을 적에는 어서 빨리 집으로만 가고 싶었다 산을 내려가서 막걸리 한 사발 퍼마시고 그냥 그대로 잠들..
2012.07.16 -
족필(足筆)
족필(足筆) 이 원 규 노숙자 아니고선 함부로 저 풀꽃을 넘볼 수 없으리 바람 불면 투명한 바람의 이불을 덮고 꽃이 피면 파르르 꽃잎 위에 무정처의 숙박계를 쓰는 세상 도처의 저 꽃들은 슬픈 나의 여인숙 걸어서 만 리 길을 가본 자만이 겨우 알 수 있으리 발바닥이 곧 날개이자 한 자루 필생의 붓이었다는 것을
2012.07.16 -
산에 가거던
산에 가거던 김 지 헌 산에 가거든 그 안에 푹 젖어 보아라 가만히 귀를 대고 산의 맥박이 뛰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세상의 모든 언약이 서서히 깨어지고 있는 소리를... 산에 가거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풀바람이 되어 보아라 고만고만한 인연들이 모여 제각기 만들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아라 산에 가거든 그 경사진 산맥의 늙은 생애를 울음소리를 들어 보아라 주인없는 무덤가에 피어난 탄식같은 햇살 한 움큼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2012.07.16 -
새와 나무
새와 나무 류 시 화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 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2012.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