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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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장 정 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 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네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 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 앉은 물 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뭇 가지 흔드는 어깻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 밖..
2012.05.11 -
불두화(佛頭花)
불두화 김 승 기 자동차 소리 요란한 도심의 세월 담장 밖으로 밀어내고 오늘도 고궁의 뜨락에서 소담스럽게 불두화 피어나다 하늘은 뿌연 안개 속이어도 무심하게 피워내는 웃음 따가운 햇살 아래서 더욱 눈부시다 절간을 지키는 童子僧인가 엄마의 품에서 옹알이하는 아가인가 그 천진스런 얼굴이 꽃잎마다 젖어 들다 새롭게 쌓아올리는 울타리 안에서 이제 외로움이 깊어지면 내게서도 불두화가 피어날까 머리 위로 떠도는 그리움 멀리 하늘 밖으로 밀어 보내고 늘 환한 웃음 행복한 외로움을 키워 가는 나는 지금 공부 수행중이다
2012.05.11 -
행복론幸福論
행복론(幸福論) 조 지 훈(趙芝薰) 1 멀리서 보면 보석寶石인 듯 주워서보면 돌맹이 같은 것 울면서 찾아갔던 산 너머 저 쪽 2 아무데도 없다 행복幸福이란 스스로 만드는 것 마음 속에 만들어 놓고 혼자서 들여다 보며 가만히 웃음 짓는 것 3 아아 ! 이게 모두 과일나무였던가 웃으며 돌아온 초가 삼간草家 三間 가지가 찢어지게 열매가 익었네.
2012.04.24 -
매화 피었다
매화 피었다 강 려 후 매화 피었다 매화 보아라 제자는 매화를 보고 스승은 드리운 문살을 세고 산 속에 눈 속에 문살 속에 매화 피었다 벙어리 매화 피었다 가지도 없는 둥치에 백매화 환히 피었다 향은 고요해 소리 없고 문풍지 절로 푸르르 떤다
2012.04.22 -
나 없는 세상
나 없는 세상 이 성 선 나 죽어 이 세상에 사라진다 해도 저 물 속에는 산그림자 여전히 혼자 뜰 것이다
2012.02.22 -
절정의 노래
절정의 노래 이 성 선 내가 최후에 닿을 곳은 외로운 설산이어야 하리. 얼음과 백색의 눈보라 험한 구름 끝을 떠돌아야 하리. 가장 외로운 곳 말을 버린 곳 그곳에서 모두를 하늘에 되돌려주고 한 송이 꽃으로 가볍게 몸을 벌리고 우주를 호흡하리. 산이 받으려 하지 않아도 목숨을 요구하지 않아도 기꺼이 거기 몸을 묻으리. 영혼은 바람으로 떠돌며 孤絶을 노래하리. 그곳에는 죽은 나무가 살아 있는 나무보다 더 당당히 태양을 향하여 無의 뼈대를 창날같이 빛낸다. 침묵의 바위가 무거운 입으로 신비를 말한다. 가장 추운 곳, 외로운 곳 말을 버린 곳에서 무일푼 거지로 최후를 마치리.
2012.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