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
산중다인(山中茶人)
산중다인(山中茶人) 이 성 선 찻잔에 매화 붉게 필 때 앞산을 낮게 나는 새가 그 발을 찻잔 물에 적시고 지나간다. 허공에 갑자기 향기 감돌고 저녁 저 발이 누구의 가슴에 깊어지는데 새는 어디에 닿는가 닿고 닿지 않음 도달하고 도달하지 못함을 침 뱉듯이 보는이가 내 뒤에서 조용히 차를 들고 있다.
2012.02.21 -
고목
고목 이 성 선 산에 가서 바라보면 살아 있는 나무보다 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바위 끝에 우뚝 강골로 서서 꼿꼿이 하늘을 찌르고 허공을 찌르고 해와 달을 찌르고 혼자 눈비바람에 견디는 뼈대만 남은 그 모습이 더 위대하다. 죽어서 살아 있는 나무보다 더 큰 새를 앉히고 죽어서 더 편안하게 안개에서 풀려나고 죽어서 더 엄정히 저 아래 어지러운 땅을 굽어보며 침묵으로 말한다. 썩은 살은 던지고 버리고 최후의 몸뚱이만 불꽃처럼 남아 부러진 팔 그대로 벌리고 하늘 아래 섰다. 천둥번개 치면 기괴한 모습 더 드러나 어둠에 거인으로 떠오른다. 아아, 그를 바라보면 단단한 삶만이 죽어서 향기를 뿜는구나. 그 곁에 서면 죽음이 오히려 삶 위에 있다.
2012.02.21 -
나무 안의 절
나무 안의 절 이 성 선 나무야 너는 하나의 절이다. 네 안에서 목탁소리가 난다. 비 갠 후 물 속 네 그림자를 바라보면 거꾸로 서서 또 한 세계를 열어놓고 가고 있는 너에게서 꽃 피는 소리 들린다. 나비 날아가는 소리 들린다. 새 알 낳는 고통이 비친다. 네 가지에 피어난 구름꽃 별꽃 뜯어먹으며 노니는 물고기들 떨리는 우주의 속삭임 네 안에서 나는 듣는다. 산이 걸어가는 소리 너를 보며 나는 또 본다. 물 속을 거꾸로 염불 외고 가는 한 스님 모습
2012.02.21 -
나의 꿈
나의 꿈 卍海 한 용 운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 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히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당신의 책상 밑에서 '귀똘귀똘' 울겠습니다.
2012.02.21 -
새해
새해 오 보 영 늘 다니던 길 어제도 그제도 걸어가던 그 길을 새 마음으로 새 다짐으로 걸으니 새 길 새로운 길이 되누나
2012.01.02 -
새해 첫 기적
새해 첫 기적 반 칠 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201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