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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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강
아침 강 송 수 권 누이야, 동트는 우리 새벽 강물 너는 따라가 보았는가 수런수런 큰 기침하며 강가에 나와 우리 산들 얼굴 씻는 것 어떤 산은 한 모금 물 마시고 쿠렁쿠렁 양치질하는 것 어떤 산은 밤새도록 발을 절고 내려와 발바닥 티눈을 핥는 것 누이야, 너는 그런 동트는 새벽 강물 따라가 보았는가 물총새 한 마리가 담청색 날개를 털어 저 혼자 반도의 아침을 깨우는 것 반짝, 뜨는 은피라미 떼 몰아다 벼랑 끝 감춘 제 새끼들에게 아침 밥상 차리는 것 그 벼랑 끝 삼존마애불 은은한 미소 감도는 것 그 반도의 아침 강을 따라가 보았는가
2010.02.01 -
깃발
깃발 유 치 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표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2010.01.31 -
적막한 바닷가
적막한 바닷가 송 수 권 더러는 비워 놓고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밀물을 쳐보내듯이 갈밭머리 해 어스름녘 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먼 산 바래 서서 아, 우리들의 적막한 마음도 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는 또는 바삐바삐 서녘 하늘을 채워 가는 갈바람 소리에 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 마지막 이 바닷가에서 캄캄하게 저물 일이다
2010.01.30 -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며 피는 꽃 도 종 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듯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2010.01.28 -
사랑 이야기
사랑 이야기 정 연 복 겨울 찬바람을 알몸으로 버티어 온 나목(裸木)의 가지들과 하늘하늘 내리는 눈송이가 만나 서로 뜨겁게 보듬어 안는다 처음에는 사르르 녹더니 쌓이고 또 쌓여 이윽고 가지마다 눈꽃이 피네 그래서 가지들은 따뜻하다 허공을 맴돌던 눈송이는 오붓이 제 집을 찾는다 삭풍 한번 몰아치거나 한줌의 햇살이 와 닿으면 덧없이 스러질 사랑인데도 오! 저 여리고 가난한 목숨들의 단단한 포옹 찰나의 눈부신 동거(同居)
2010.01.28 -
눈
눈 박 용 래 하늘과 언덕과 나무를 지우랴 눈이 뿌린다 푸른 젊음과 고요한 흥분이 서린 하루하루 낡아 가는 것 위에 눈이 뿌린다 스쳐 가는 한 점 바람도 없이 송이눈 찬란히 퍼붓는 날은 정말 하늘과 언덕과 나무의 한계는 없다 다만 가난한 마음도 없이 이루어지는 하얀 단층
2010.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