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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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
둥글레 김 재 황 눈길이 나를 향할 때 아득한 달을 안는다 티없이 맑은 영혼이 내 가슴에 안긴다 너무나 순결한 아름다움을 주체할 수 없어서 피어나는 꿈 나는 다만 황홀함에 잠겨 한 방울 물방울로 구르다가 녹아들어 자연으로 귀일한다 이 목숨도 이슬방울로 영롱하게 숲에서 함께 빛난다
2009.08.03 -
오동꽃
오동꽃 이 해 인 비 오는 날 오동꽃이 보라빛 우산을 쓰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넓어져라 높아져라 더 넓게 더 높게 살려먼 향기가 없어도 괜찮다 나는 얼른 꽃 한 송이 되어 올라갔습니다. 처음으로 올라가 본 오동나무의 집은 하도 편안해 내려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오실래요?
2009.07.25 -
자귀나무꽃 사랑
자귀나무꽃 사랑 송 수 권 우리 산천 어디선들 이름없는 풀꽃들 보았느냐 푸른 버즘처럼 고목에 붙어 진기를 갇어 내는 겨우살이꽃 쉬엄쉬엄 오 리 길을 갈 때마다 길 표시로 심었던 오리 정자나무, 십 리 가서 십리나무꽃 봄이 먼저 와서 키 낮은 꽃다지 들 길에 자욱하고 밤 나그네새 울고 올 때 들머리에 뜬 저 주막집 불빛, 한 상 먹고 나와 뒷간에 앉아 쳐다보던 밤하늘의 캄캄한 먹빛 오디 열매들, 쥐똥같이 동그랗고 까만 쥐똥나무 열매들과 물에 담가 우리 영혼까지 얼비쳐 든 물푸레꽃, 이 나라 산천 발 닿는 곳 어디서껀 마을 앞 그 흔한 며느리밑씻개 개오줌꽃도 잘도 피지 않더냐 그중에서도 손주가 없어 중간대를 거른 방아다리손주 같은 유순한 저 자귀나무꽃 보아라 수꽃의 수술이 불꽃처럼 톡톡 튀는 여름산 비 그친..
2009.07.23 -
숲의 노래
숲의 노래 박 고 은 숲이 좋아 숲에 가면 신록으로 흐르는 대자연의 향연 솔향기 풀꽃내음 향훈 속을 딛는 걸음마다 울리는 정의 소리 풀벌레, 새 소리 술래 노는 다람쥐 합주에 놀라 터지는 머루알 붉은 산앵두로 목축이고 풀물 든 바위에 앉아 솔잎 하나 입에 물면 해맑은 시심은 순수서정 짙푸름이 동화된 육신은 나도 한 그루 나무 깊고 조화로운 숲 초록빛 여울 속 꿈 이파리로 흐른다 오월 피 천 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2009.07.12 -
길 위에서의 생각
길 위에서의 생각 류 시 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 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 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간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 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 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 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 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2009.07.12 -
산나리꽃
산나리꽃 엄 기 창 때로는 혼자일 때가 더 외롭지 않을 수도 있다. 닿을 수 없던 한 뼘만큼의 눈물 꽃술 속에 감춰두고 민들레 꽃씨처럼 그리움의 날개를 날려 한 송이 수줍은 산나리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때로는 기다리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바람이 밟고 가는 나뭇잎 소리에 가슴 설레며 사랑하는 마음 몰래 피었다가 몰래 떨어지는 산나리꽃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2009.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