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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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 신 석 정 저 허잘것없는 한 송이의 달래꽃을 두고 보더라도, 다사롭게 타오르는 햇볕이라거나, 보드라운 바람이라거나, 거기 모여드는 벌 나비라거나, 그보다도 이 하늘과 땅 사이를 아렴풋이 이끌고 가는 크나큰 어느 알 수 없는 마음이 있어 저리도 조촐하게 한 송이의 달래꽃은 피어나는 것이요, 길이 멸하지 않을 것이다. 바윗돌처럼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저 애잔한 달래꽃의 긴긴 역사라거나, 그 막아낼 수 없는 위대한 힘이라거나, 이것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모든 것을 내가 찬양하는 것도, 오래오래 우리 마음에 걸친 거추장스런 푸른 수의를 자작나무 허울 벗듯 훌훌 벗고 싶은 달래꽃같이 위대한 역사와 힘을 가졌기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요,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 송이의 달래꽃을 두고 보더라..
2010.02.16 -
玩花衫 / 나그네
완화삼(玩花衫) -목월(木月)에게 조 지 훈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나그네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지훈(芝薰) 박 목 월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2010.02.12 -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 신 석 정 성근 대숲이 하늘보다 맑아 대잎마다 젖어드는 햇볕이 분수처럼 사뭇 푸르고 아라사의 숲에서 인도에서 조선의 하늘에서 알라스카에서 찬란하게도 슬픈 노래를 배워낸 바람이 대숲에 돌아들어 돌아드는 바람에 슬픈 바람에 나는 젖어 온 몸이 젖어...... 란아 태양의 푸른 분수가 숨막히게 쏟아지는 하늘 아래로만 하늘 아래로만 흰 나리꽃이 핀 숱하게 핀 굽어진 길이 놓여 있다 너도 어서 그 길로 돌아오라 흰나비처럼 곱게 돌아오라 엽맥이 드러나게 찬란한 이 대숲을 향하고...... 하늘 아래 새로 비롯할 슬픈 이야기가 대숲에 있고 또 먼 세월이 가져올 즐거운 이야기가 대숲에 있고 꿀벌처럼 이 이야기들을 물어나르고 또 물어내는 바람이 있고 태양의 분수가 있는 대숲 대숲이 좋지 않으냐..
2010.02.12 -
바위
바 위 유 치 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2010.02.12 -
봄의 유혹
봄의 유혹 신 석 정 파란 하늘에 흰 구름 가벼이 떠가고 가뜬한 남풍이 무엇을 찾아내일 듯이 강 너머 푸른 언덕을 더듬어 갑니다. 언뜻언뜻 숲 새로 먼 못물이 희고 푸른 빛 연기처럼 떠도는 저 들에서는 종달새가 오늘도 푸른 하늘의 먼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시냇물이 나직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아지랭이 영창 건너 먼 산이 고요합니다. 오늘은 왜 이 풍경들이 나를 그리워하는 것 같애요. 산새는 오늘 어디서 그들의 소박한 궁전을 생각하며 청아한 목소리로 대화를 하겠습니까? 나는 지금 산새를 생각하는 "빛나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임이여! 무척 명랑한 봄날이외다. 이런 날 당신은 따뜻한 햇볕이 되어 저 푸른 하늘에 고요히 잠들어 보고 싶지 않습니까?
2010.02.11 -
사랑하는 까닭
사랑하는 까닭 卍海 韓 龍 雲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201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