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2010. 2. 16. 10:17시 모음/시

시인 신석정의 초가 - 스스로 청구원(靑丘園)이라 이름지었다.

 

역사

신 석 정   

 

저 허잘것없는 한 송이의 달래꽃을 두고 보더라도, 다사롭게 타오르는 햇볕이라거나, 보드라운 바람이라거나, 거기 모여드는 벌 나비라거나, 그보다도 이 하늘과 땅 사이를 아렴풋이 이끌고 가는 크나큰 어느 알 수 없는 마음이 있어 저리도 조촐하게 한 송이의 달래꽃은 피어나는 것이요, 길이 멸하지 않을 것이다.   바윗돌처럼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저 애잔한 달래꽃의 긴긴 역사라거나, 그 막아낼 수 없는 위대한 힘이라거나, 이것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모든 것을 내가 찬양하는 것도, 오래오래 우리 마음에 걸친 거추장스런 푸른 수의를 자작나무 허울 벗듯 훌훌 벗고 싶은 달래꽃같이 위대한 역사와 힘을 가졌기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요,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 송이의 달래꽃을 두고 보더라도, 햇볕과 바람과 벌 나비와, 그리고 또 무한한 마음과 입맞추고 살아가듯, 너의 뜨거운 심장과 아름다운 모든 것이 샘처럼 온통 괴여 있는, 그 눈망울과 그리고 항상 내가 꼬옥 쥘 수 있는 그 뜨거운 핏줄이 나뭇가지처럼 타고 오는 뱅어와 같이 예쁘디예쁜 손과, 네 고운 청춘이 나와 더불어 가야할 저 환히 트인 길이 있어 널 이렇게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요,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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