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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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늪에 핀 연잎 같이
수리늪에 핀 연잎 같이 최 대 희 무수히 떨어지는빗줄기를 받아 앉고그 무게를더는 어찌할 수 없는빗물의 무게를고맙다고 인사하듯꾸벅 수리늪에 부려놓고아무 일 없었다는 듯물방울의 흔적을 지우는끝없는 연잎작용 앞에서나를 비우고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2011.07.11 -
석련(石蓮)
석련(石蓮) 정 호 승 바위도 하나의 꽃이었지요 꽃들도 하나의 바위였지요 어느 날 당신이 나를 찾은 후 나의 손을 처음으로 잡아주신 후 나는 한 송이 석련으로 피어났지요 시들지 않는 연꽃으로 피어났지요 바위도 하나의 눈물이었지요 눈물도 하나의 바위였지요 어느 날 당신이 나를 떠난 후 나의 손을 영영 놓아버린 후 나는 또 한 송이 석련으로 피어났지요 당신을 향한 연꽃으로 피어났지요
2011.07.10 -
낙타
낙타 신 경 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2011.07.06 -
연꽃 처럼
연꽃 처럼 최 이 인 내 얼마만큼 도를 닦아야 너처럼 흐린 연못에서도 맑게 살 수 있니? 우리가 어느 만큼이나 수행을 해야 둥둥 떠다니지 않고 너처럼 마음을 정하니 ? 모두가 어떻게 살아가야 너처럼 더러운 곳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니?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만 보라. 귀로 듣지 말고 가슴으로 들어라. 너는 소리없이 말을 하고 미소짓는데 나는 무엇이 되어야 너처럼 고귀하게 행동을 하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너처럼 품위를 잃지 않고 환하게 세상을 밝히니? 모두가 몇 만겁이나 고행을 해야 너처럼 늘 엎드려 위대한 하늘을 우러러 사니?
2011.07.06 -
소나무
소나무 김 지 명 천년의 청송(淸松) 황금빛 송화 가루 삶의 여유 자랑하고 태고의 세월에도 언제나 변함없는 자태를 자아내고 마디마다 고통의 세월 청록 잎의 솔향기 바람 따라 흩어지네 나이테 늘려갈 때 마른하늘에 이슬먹고 불사조 같이 살아가는 소나무
2011.05.30 -
깊은 물
깊은 물 도 종 환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 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는가 굽이 많은 이 세상 이 시냇가 여울을 당신은 얼마나 깊은 물인가. 당신의 물에는 술잔 하나, 종이배 하나 뜨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당신과 나, 이렇게 분열되고 고통스러운게 아닌가. 부디 당신의 가슴속에는 깊은 강물이 흐르기를. 그 강물에 큰 배가 뜨고, 그 배가 바다로 흘러가기를. 그 배를 타고 모든 이들이 평화롭기를. ('정호승과 떠나는 작은 詩여행' 에서)
2011.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