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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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꽃눈, 내리는 꽃비
흩날리는 꽃눈, 내리는 꽃비 박 종 영 어느 산자락 나지막이 탐스럽게 핀 왕벚나무 끝 가지에 눈동자 하얀 원이 사랑스러운 동박새, 경쟁이라도 하듯, 가지마다 오르락내리락하며 날렵한 부리로 왕벚꽃을 따 먹고 있다. 해마다 늦은 4월, 화려한 왕벚꽃 연약한 꽃눈 달고 피어나 심술부린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눈이 애처롭고, 쓰적쓰적 빗물 스며들면 서러운 눈물 훔치며 떨어지는 꽃비가 춥다. 화려한 왕벚나무 곁에서 산개 벚나무 으스대는 꼴이 차마 보기 싫은 것은 바람도 아니고 비도 아니고, 오로지 동박새 혼자만 눈을 흘긴다. 전율처럼 떨리는 그 울음소리 곰곰이 듣다 보니 밑줄 그을 이별의 문장(文章) 하나 있다.
2019.04.17 -
바다에의 열병(熱病)
바다에의 열병(熱病) 존 메이스필드 (영국 1878~1967) 나는 아무래도 다시 바다로 가야겠다. 그 외로운 바다와 하늘로, 높다란 배 한 척과 그 쪽으로 배를 몰고 가야할 별 하나와, 그리고 물살을 차는 키 바퀴와 바람의 노래와 흔들리는 흰 돛만 있으면 그만이다. 수면에 깔리는 잿빛 노을 또는 동트는 잿빛 아침만 있으면 된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바다로 가야겠다. 혹은 거칠게 혹은 맑게, 아니라고 부정(不定)할 수 없도록 밀려오는 조수 같은 물결이 부르는 흰 구름 떠도는 바람찬 날이면 된다. 그리고 흩날리는 물보라와 부풀어 오르는 물거품, 갈매기의 울음소리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바다로 가야겠다. 떠도는 집시의 신세로 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곳, 갈매기가 가는 길, 고래가 가는 길을 ..
2019.04.07 -
뜨지 않는 별
뜨지 않는 별 복 효 근(1962- ) 별이라 해서 다 뜨는 것은 아니리 뜨는 것이 다 별이 아니듯 오히려 어둠 저 편에서 제 궤도를 지키며 안개꽃처럼 배경으로만 글썽이고 있는 뭇 별들이 있어 어둠이 잠시 별 몇 개 띄워 제 외로움을 반짝이게 할 뿐 가장 아름다운 별은 높고 쓸쓸하게 죄짓듯 앓는 가슴에 있어 그 가슴 씻어내는 드맑은 눈물 속에 있어 오늘밤도 뜨지 않은 별은 있으리
2019.04.06 -
수양버들
수양버들 김 용 택(1948- ) 너를 내 생의 강가에 세워두리. 바람에 흔들리는 치맛자락처럼 너는 바람을 타고 네 뒤의 산과 네 생과 또 내 생, 그리고 사랑의 찬연한 눈빛, 네 발 아래 흐르는 강물을 나는 보리. 너는 물을 향해 잎을 피우고 봄바람을 부르리. 하늘거리리. 나무야, 나무야! 휘휘 늘어진 나를 잡고 너는 저 강 언덕까지 그네를 타거라. 산이 마른 이마에 닿는구나. 산을 만지고 오너라. 달이 산마루에 솟았다. 달을 만지고 오너라. 등을 살살 밀어줄게 너는 꽃을 가져오너라. 너무 멀리 가지 말거라. 하늘거리는 치맛단을 잔물결이 잡을지라도 한 잎 손을 놓지 말거라. 지워지지 않을 내 생의 강가에 너를 세워두고 나는 너를 보리.
2019.03.19 -
자귀나무 열매
재가 되어서 이 향 아(1938- )우리는 비로소 만났다 재가 된 후에야 억센 가시덩굴과 흙뿌리와 묵은 둥치 쪼그라든 열매와 버스럭대는 잎사귀들 그들과도 까맣게 이별한 후에 우리는 이제야 재가 되어서 만났다 뜨겁던 날들은 그만큼 외롭더니 타버리면 그뿐, 벼랑인 줄 알았더니 저 구천 벼랑의 갈맷빛 물결 죽지 펴 꽃잎처럼 춤추는 허공 결코 붉거나 푸를 수는 없는 그렇다고 검거나 희지도 않은 '후' 불면 날아갈 하찮은 무게로 이렇게 겸허한 재가 되어 돌아왔다 기다리던 걸음걸음 밭고랑에 쏟아 억울하지 않게 스며드는 길 다시 무슨 섭섭함을 말하려는가 이제야 어리석음을 탓하려는가 돌아다보는 길목 그리움마다 천천히 돌아와서 사각거리는 바람.
2019.03.18 -
산수유
□산수유나무 층층나무과의 낙엽성 활엽 소교목으로 우리나라 각처의 낮은 산에 자생하고, 인가 부근에서는 재배하며, 공원에 조경수로 식재한다. 나무껍질은 갈색이며 비늘조각처럼 벗겨지고, 잎은 마주나는데 계란형으로 끝이 길게 뾰족하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3~4월에 노란색의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8~10월에 타원형의 열매가 붉은색으로 익는데 광택이 나며, 맛이 시기도 하고 떫기도 하다. 열매를 식용하고 음료용으로 쓰며, 한방에서「산수유(山茱萸)」라 하여 열매의 과육(果肉)을 약재로 쓴다. 공해가 심한 도심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다. 산수유 소산/문 재학 화사한 봄을 재촉하는 노란 숨결의 유혹이 눈부시다. 물빛 햇살 다독이면서 아장거리는 봄기운 삭막한 풍경에 뜨거운 생명의 불꽃을 지핀다. 터지는 꽃망울에 ..
2019.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