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402)
-
한 송이 수련으로
한 송이 수련으로 이 해 인 내가 꿈을 긷는 당신의 못 속에 하얗게 떠다니는 한 송이 수련으로 살게 하소서 겹겹이 쌓인 평생의 그리움 물 위에 풀어 놓고 그래도 목말라 물을 마시는 하루 도도한 사랑의 불길조차 담담히 다스리며 떠다니는 당신의 꽃으로 살게 하소서 밤마다 별을 안고 합장하는 물빛의 염원 단 하나의 영롱한 기도를 어둠의 심연에서 건져내게 하소서 나를 위해 순간마다 연못을 펼치는 당신 그 푸른 물 위에 말없이 떠다니는 한 송이 수련으로 살게 하소서
2019.05.17 -
5월의 노래
5월의 노래 황 금 찬 (1918 - 2017)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 숲내를 풍기며 5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꽃잎 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날고 있는 제비가 작년의 그놈일까? 저 언덕에 작은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 5월은 4월보다 정다운 달 병풍에 그려 있던 난초가 꽃피는 달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5월이다.
2019.05.09 -
오월
오월 피 천 득( 1910- 2007)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
2019.05.09 -
나무
나무 고 진 하(1953- ) 나무는 길을 잃은 적이 없다 허공으로 뻗어가는 잎사귀마다 빛나는 길눈을 보라
2019.04.27 -
연못은 생명의 근원
연못은 생명의 근원 황 인 숙 물이 고여 있는 연못에는 수련들이 연못을 가득 채웠습니다 연못 속에는 오리들이 헤엄치며 놀기도 하고 자라와 붕어도 즐거이 한가로이 노닐고 개구리들이 수련 잎 배를 타고 개골개골 노래도 하지요 나비가 놀러 오기도 하고요 잠자리가 비행하며 순찰을 돌기도 하지요 잠자리는 연못에 알을 낳기도 한답니다 연못에서 태어나 연못이 고향 이랍니다 연못은 생명의 근원 많은 생물들을 품어 줍니다 연못은 어머니의 품속 같아요
2019.04.17 -
살구꽃
살구꽃 장 석 남(1965- ) 마당에 살구꽃이 피었다밤에도 흰 돛배처럼 떠 있다흰빛에 흰 돛배처럼 떠 있다흰빛에 분홍 얼굴 혹은제 얼굴로 넘쳐버린 눈빛더는 알 수 없는 빛도 스며서는손 닿지 않는 데가 결리듯담장 바깥까지도 환하다지난 겨울엔 빈 가지 사이사이로하늘이 튿어진 채 쏟아졌었다그 꽃들을 피워서 제 몸뚱이에 꿰매는가?꽃은 드문드문 굵은 가지 사이에도 돋았다아무래도 이 꽃들은 지난 겨울 어떤,하늘만 여러번씩 쳐다보던살림살이의 사연만 같고 또그 하늘 아래서는 제일로 낮은 말소리, 발소리 같은 것 들려서 내려온新과 新의 얼굴만 같고어스름녘 말없이 다니러 오는 누이만 같고(살구가 익을 때,시디신 하늘들이여러 개의 살구빛으로 영글어올 때 우리는늦은 밤에라도 한번씩 불을 켜고 나와서 바라다보자그런 어느날은 ..
2019.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