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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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밭에 누워
별 밭에 누워박 두 진(朴斗鎭, 1916-1998) 바람에 쓸려 가는 밤하늘 구름 사이저렇게도 파릇한 별들의 뿌림이여누워서 반듯이 바라보는내 바로 가슴 내 바로 심장 바로 눈동자에 맞닿는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그 삼빡이는 물기 어림가만히 누워서 바라보려 하지만무심하게 혼자 누워 바라만 보려 하지만오래오래 잊어버렸던 어린 적의 옛날소년쩍 그 먼 별들의 되살아옴이여가만히 누워서 바라보고 있으면글썽거려 가슴에 와 솟구치는 시름외로움인지 서러움인지 분간 없는 시름죽음일지 이별일지 알 수 없는 시름쓸쓸함도 몸부림도 흐느낌도 채 아닌가장 안의 다시 솟는 가슴 맑음이어어떻게도 할 수 없는 울고 싶음이어어떻게도 할 수 없는 소리지름이어
2019.10.13 -
아득한 성자(聖者)
아득한 성자(聖者)무산 오현(霧山 五鉉, 1932-2018)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조오현-아득한 성자 시인은 시로써 말하고 도인은 깨달음의 도력(道力)으로 평가한다. 구도자는 아침에 깨달음을 얻고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득한 성자’는 오현 스님의 대표 시로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작가 자신이 밝혔듯이 오도송(悟道頌)이다. 그러나 기존의 오도송과는 그 형식이나 내용, 격조가 사뭇 다르다.“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
2019.10.03 -
낙화(落花) 趙 芝 薰
낙화(落花) 趙 芝 薰(1920-1968)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낙화(落花)-2 趙 芝 薰 피었다 몰래 지는고운 마음을흰무리 쓴 촛불이홀로 아노니꽃 지는 소리하도 가늘어귀기울여 듣기에도조심스러라杜鵑이도 한목청울고 지친 밤나 혼자만 잠 들기못내 설어라
2019.09.30 -
나에게 이야기하기
나에게 이야기하기 이 어 령(李御寧, 1934- ) 너무 잘하려 하지 말라하네 이미 살고 있음이 이긴 것이므로 너무 슬퍼하지 말라하네 삶은 슬픔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돌려주므로 너무 고집 부리지 말라하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늘 변화는 것이므로 너무 욕심 부리지 말라하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으므로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하네 죽을 것 같던 사람이 간 자리에 또 소중한 사람이 오므로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하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실수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너무 뒤돌아보지 말라하네 지나간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의미 있으므로 너무 받으려 하지 말라하네 살다보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기쁘므로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하네 천천히 가도 얼마든지 먼저 도착 할 수 있으므로 죽도록 온 존재로 사랑..
2019.09.28 -
님의 침묵
님의 침묵(沈默) / 한용운(韓龍雲,1879-1944)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연애(戀愛)가 자유(自由)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拘束)을 받지 않더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나는 해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詩)를 쓴다 님의 침묵(沈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
2019.09.23 -
白 鹿 潭
白 鹿 潭정지용(鄭芝溶,1903- ?) 1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花紋처럼 版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咸鏡道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八月한철엔 흩어진 星辰처럼 爛漫하다. 山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긔서 기진했다.2巖古蘭, 丸藥 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3白樺 옆에서 白樺가 髑髏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白樺처럼 흴것이 숭없지 않다.4鬼神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5바야흐로 海拔六千呎 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녀..
2019.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