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시(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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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하늘 박 두 진(1916-1988) 하늘이 내게로 온다여릿여릿 멀리서 온다하늘은, 멀리서 온 하늘은호수처럼 푸르다.호수처럼 푸른 하늘에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향기로운 하늘의 호흡초가을 따가운 햇볕에목을 씻고내가 하늘을 마신다.목말라 자꾸 마신다.마신 하늘에 내가 익는다.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2019.07.29 -
석탑
석탑 손 상 근 열리지 않는 문이 있습니다 두드려도 귀 멀어 듣지 못 하는 가슴이 있습니다 해 묵은 책 속 한 귀절 시귀(詩句)처럼 꺼내기 어려운 향기가 있습니다 안개처럼 허리 휘감는 나의 말들은 표면에 부딪혀 스러집니다 맴도는 내 가슴 환히 보면서 모른 채 서 있는 당신 입니다 석탑 목 필 균 청빈한 그는 한번 걸친 옷 그대로 노숙한 세월이 얼마인지 욕심이 없어서 가진 것이 없었는지 가진 것이 없어서 욕심이 없었는지 홀홀단신 노숙의 바람 청태로 끌어안고 아이디도 없고 비밀번호도 없는 단단한 가슴 안으로 잠근 채 풍화된 사랑도 지우지 못할 정이었는지 한번 올라선 계단 침묵 그대로이다
2019.07.23 -
낙산사 홍련암에는 해당화가 피고
낙산사 홍련암에는 해당화가 피고 목 필 균 누군들 저 막막한 기다림을 알까 까마득한 절벽 쉼 없이 파도가 휘돌아치고 파도에 쓸려간 절절한 독경소리는 붉은 연꽃 수평선 바라보며 삭여온 눈물은 붉은 해당화 꽃이 다르다고, 아픔마저 다를까 발원을 위해 수없이 꿇었을 무릎 아득한 수평선에 눈이 먼 빈 눈동자 붉은 꽃은 인고의 향기였다. 낙산사 홍련암에는 해당화가 피고 내가 무심히 바라보듯 홍련암도 무심히 바라보고 해당화도 무심히 바라보고 무심함이 그은 인연 줄이 텅 빈 가슴에 풍경을 울린다
2019.07.21 -
주목(朱木)
주목(朱木) 김 승 기 언제 꽃을 피웠을까 몰래 쌓아온 비밀 가을하늘 위에 멍울이 서는 紅點 기쁨 되어 터지다 늙을수록 아름다워지는 天生美人 살아 천년 죽어서도 천년 그 붉은 향이 사람 사는 안방에서 잡귀 물리치는 수호신 되어지다 무엇으로 온몸 가득 그윽한 향내를 띄우고 삶의 강을 건너 몇 만 년 흐르는 보배로 남게 할까 너를 향한 사랑법 오늘도 가슴을 저미게 하는 나의 고행이다 주목 (朱木) 주목과의 상록성 침엽 교목으로 우리나라 각처의 높은 산 숲에 자생한다. 큰 가지와 줄기는 적갈색이고, 가지는 사방으로 뻗는다. 잎은 선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짙은 녹색을 띤다. 암수한그루로서 4~5월에 암꽃과 수꽃이 갈색으로 피고, 8~9월에 열매가 붉은 색으로 익는데 속에 까만 씨가 들어있다. 열매의 붉은 껍질은 ..
2019.07.17 -
나무의 철학
나무의 철학 조병화 (1921-2003) 살아가노라면 가슴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깊은 곳에 뿌리를 감추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를 사는 나무처럼 그걸 사는 거다 봄, 여름, 가을, 긴 겨울을 높은 곳으로 보다 높은 곳으로, 쉼없이 한결같이 사노라면 가슴 상하는 일 한두 가지겠는가
2019.07.10 -
늙은 나무를 보다
늙은 나무를 보다 이동순 (1950- ) 두 팔로 안을 만큼 큰 나무도 털끝만 한 싹에서 자랐다는 노자 64장 守微*편의 구절을 읽다가 나는 문득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 감동은 대개 이렇게 오는 것이다 그래서 숲으로 들어가 평소 아침 산책길에 자주 만나던 늙은 느릅나무 영감님 앞으로 다가갔다 느릅은 푸른 머리채를 풀어서 바람에 빗질하고 있었다 고목의 어릴 적 일들을 물어보아도 묵묵부답 다람쥐가 혼자 열매를 까먹다가 제풀에 화들짝 놀라 달아난 그 자리에는 실낱처럼 파리한 싹이 하나 가느다란 목을 땅 위로 쏘옥 내밀고 있는 참이었다 * 수미 : 노자가 쓴 의 한 부분.
201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