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0. 12:05ㆍ사진/야생화
열매
오 세 영
세상의 모든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는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석
한 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을이 오면
김 용 석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
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가을이
오면
*솔방 : 몽땅, 모두, 전부 등의 의미인 경상도 말
홍시
윤 효
감나무 가지 끝에
홍시 하나가
까치밥으로
남아 있었다
서릿바람 불고
눈발 날려도
가지 끝에
빨갛게
남아 있었다
밤새 꺼지지 않던
貧者一燈
망개 열매
강마을 시인
태풍 지나가고
다시 맑게 갠 날
일자봉에 오르다
빠알간 망개 열매 보았네
모진 태풍에
실한 과실들도 떨어지고
큰 나무들도 꺾이고 넘어간 것들 많은데
낮은 풀숲 사이 망개 열매
빠알갛게 열려 있었네
가까이 가 보니
그 붉음 그저 붉음이 아니었네
작은 알맹이들마다에
색바래고 얼룩진 이파리들마다에
한 번의 태풍이 아니라
수많은 날들 비바람 견뎌낸
검은 상처들 배어 있었네
석류
김 용 호
안타까이
기다리다 못해
그리움에 북받쳐 터진
너 가슴속에
누구를 줄 양으로
그처럼 그처럼
사무친 알알을
감추어 두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