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곡마을의 구룡목(龜龍木)

2015. 3. 27. 11:25문화유적 답사기/나도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나곡마을의 구룡목(龜龍木)

-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소나무

  2015. 3.16.

  

가야산 가는 길에 묘산면 화양리의 나곡마을을 들리기 위해  합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묘산. 거창행 군내버스를 타고 묘산면 삼거리에서 하차한다.

나곡마을 까지는 대중교통편이 원활치 못하여 도상거리 약 7km를 걷기로 한다.

걸어서 가는 길은 싱그럽고 편안하여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묘산면(妙山面)은 고려시대에 심묘면으로 되었다가 조선시대에는 심묘와 거울산으로 나누어졌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묘산면이 되었다.

동쪽은 경상북도 합천읍, 서쪽은 거창군과 봉산면, 남쪽은 합천읍과 봉산면, 북쪽은 야로면과 가야면에 인접해 있다.

산세를 보면 서북쪽은 오도산과 두무산, 동쪽은 만대산과 노태산, 남쪽으로는 마령산이 뻗어 있으며, 면 중부에 화성산,샛등산이 자리 잡아 넓은 들이

없고 마을 주위에 농토가 조금 있는 편이다.

또한 반포 발심  사리에서 발원된 물이 교동천에서 합류하여 경남북경계에서 가야산에 발원된 물과 합류하여 쌍림천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로

타면의 물이 흘러 들어오지 않는 산간오지이다.

 

묘산천을 따라 도로를 걷다보니 왼쪽으로 멀리 중계탑을 머리에 인 오도산이 바라보인다.

우리나라에 야생하던 마지막 표범이 1962년 덫에 걸려 생포된 곳이 오도산이다.

도옥마을과 안성마을을 지나 화양마을 입구에 다다른다.

"합천 화양리 소나무 3.2km" 이정표가 서 있다.

묵와고가 이정표를 지나치니 언덕 위로 야천신도비각이 바라보인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르막 산길이 시작된다.

"화양리 소나무 3.2km"라 되어 있어 가볍게 생각하였던 것이 잘못이었다.

후에 안 일이자먼 해발 500m 높이의 포장도로 등산을 한 것과 같았다.

 

굽이굽이 고개를 넘으니 넓은 길은 좁은 길로 변하고 길은 갈수록 더욱 가팔라지기만 한다.

첩첩산중 오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지친 다리로 가파른 고개를 넘어서니 멀리 마을이 보이고 밭두렁 논두렁 속에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오! 구룡목(龜龍木)이다.

이 반가움이여...

이 즐거움이여 ...

갑자기 생기가 난다.

불어오는 바람에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힌다.

 

정자 옆으로 오래된 마을 표지석이 서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곡부락"이라 새겨져 있다.

나곡마을의 나곡은 본래 상나에서 시작되어 하나로 흘러가는 계곡을 경계로 해서 북쪽은 합천군 현내면이고, 남쪽은 합천군 겨울산면으로 되어 있던 것이 행정구역 개편으로 묘산면 화양리에 흡수된 자연마을이다.

이곳 사우나는 두무산(斗霧山)에서 뻗어내려 온 시루봉 동쪽에 자리 잡은 해발 500m 고지에 위치한 오지마을이다.

마을 앞 밭두렁 논두렁 사이에  천연기념물 제289호 합천 화양리소나무,  일명 "구룡목"이 우뚝 서 있다.

 

1982년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 수령은 약 720년으로 추정되었다.

이 소나무는 광해군 5년(1613년) 영창대군의 외조부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모함을 받고 역적으로 몰려 3족이 멸하게 되자 김제남의 6촌되는 김규(金揆) 공이 도망 와서 이 나무 밑에 초가를 짓고 살았다 한다.

그가 입촌하여 구룡송 밑에 잠이 들어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물을 길어 가는 꿈을 꾸고 그곳을 파보니 물이 솟아 그 샘을 나천(羅泉)이라 하고 마을명도 나천이라 하였다 한다.

 

배낭을 내려놓고 밭두렁 옆의 구룡목으로 향한다.

축 처진 소나무 가지 끝에 금줄이 늘어져 있고, 세 아름이 훨씬 넘는 웅장한 나무 밑동에는 겹으로 두른 금줄이 쳐져 있다.

소나무 껍질은 밑동에서부터 가지 끝까지 거북이의 등처럼 갈라져 있다.

구불구불한 몸체와 가지가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닮았다.

그래서 구룡목(龜龍木)이라 하였다던가.

신령스럽다.

오!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가슴이 뛴다.

내 이제껏 수많은 소나무를 보아 왔다만 이런 감동과 가슴을 뛰게 하는 소나무는 아마 처음이리라.

첩첩산중 오지에 초연히 살아온 구룡목

밭두렁 논두렁 사이에 서 있는 구룡목이 장엄하고 신령스럽다. 

소나무 주위를 돌며 이리 보고 저리 보며 500년 긴 세월 눈 비바람맞으며 만난 고초(萬難苦楚)를 이겨내고 살아온 고목을 찬탄하며 기린다. 

그래서인지 푸른 솔잎 사이에 매달려 있는 솔방울이 더욱 깨끗해 보이고 솔바람에 묻어오는 솔향이 더욱 깊기만 하다.

논두렁 위에 서서 구불구불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그윽이 바라본다.

오래오래...

 

이색의 '송풍헌시' 한 구절을 떠 올려 본다.

"나 이제 붓을 잡고 솔바람 노래하려니 붓 끝에서 마치 솔바람이 이는 듯하도다

 솔바람은 달을 흔들고 강에는 물결이 솟는데 이런 정경 바라보며 담연히 세상풍정 잊는다

 허공은 지극히 고요하여 만고에 푸르고 소리와 빛은 어디로부터 와 천지에 가득한가? "

 

오랜 세월 농사일만 하며 살아왔기에 살갗이 흙빛으로 변한 밭두렁에서 만난 할머니,

소나무가 자꾸 죽어가고 있어 큰 걱정이라며 근심 어린 눈으로 구룡목을 바라본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였던가

우주의 만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모든 현상은 시시각각으로 생멸ㆍ변화하여 항상 변천한다 하였다.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멸하는 것

영원한 것은 없다.

 

 

송풍헌시(松風軒詩)     /이 색

 

달이 흐린 물에 드니 달그림자가 없고

바람이 단단한 돌에 부딪히니 소리가 없구나

수목이 있어야 바람이 진동하는 법이고

물 솟는 샘이어야  달그림자도 분명한 법이다

 

강은 물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소나무는 나무속에서 더욱 우뚝하다

서로 만남이 보통과 다름을 알겠으나

확 트인 선비라야 그것을 취하여 이름 짓는다

 

나옹의 강에 비친 달은 예처럼 희고

절간의 소나무에 부는 바람 지금도 맑도다

달 밝고 바람 맑음에 태평곡 흐르니

적막한 천지에서 누가 능히 화답하리오?

 

나 이제 붓을 잡고 솔바람 노래하려니

붓 끝에서 마치 솔바람이 이는 듯하도다

솔바람은 달을 흔들고 강에는 물결이 솟는데

이런 정경 바라보며 담연히 세상풍정 잊는다

 

허공은 지극히 고요하여 만고에 푸르고

소리와 빛은 어디로부터 와 천지에 가득한가?

하물며 이제 그림자 속 그림자를 그려내려니

때마침 외물이 나의 정신을 흔들어 놓는구나

 

솔바람과 강 속의 달 두 가지 아름다운 곳 향해

높이 누워 우렛소리처럼 코 골며 쉬어보리라

 

 

야천신도비각(冶川神道碑閣)

 

 

야천신도비각(冶川神道碑閣)

야천(冶川) 박소(朴紹, 1493-1534)의 신도비다.

김굉필의 문인으로 1519년에 문과에 장원으로 금제 한 후 수찬, 사서, 필선 등을 역임하였고 시간으으로 있을 때 정유삼흉으로 불리는 김안로, 허항, 채무택 등 훈구파의 탄핵으로 파직되어 외가가 있는 합천으로 내려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가 타계한 후 나라에서는 그의 공을 인정하여 영의정으로 추증하고 문강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사암 박순이 짓고 글씨는 석봉 한호가 썼다.

 

 

야천신도비(冶川神道碑)

 

신도비 거북 받침대

 

 

  

석봉 한호의 글씨

 

 

  

나곡마을 표지석 "나곡부락'이라 새겨져 있다

 

 

나곡마을(1)

 

 

나곡마을(2)

 

 

밭두렁 논두렁 사이에 서 있는 합천 화양리 소나무,  구룡목(龜龍木 )

 

 

 

 

논두렁 위에 서서 구불구불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바라본다.

 

               

합천 화양리 소나무 (陜川 華陽里 소나무) - 천연기념물  제289호

 

 

합천 화양리 소나무 (陜川 華陽里 소나무) - 천연기념물  제289호

합천 회양리의 소나무는 해발 500m 정도 되는 곳에 위치한 화양리 나곡마을의 논 가운데 서 있으며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17.7m, 둘레 6.15m의 크기로 가지는 2.5∼3.3m 높이에서 갈라져 다시 아래로 처지 듯 발달하였는데 그 모습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다. 나무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고 가지가 용처럼 생겼다 하여 구룡목(龜龍木)이라고도 한다. 연안 김 씨의 후손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광해군 5년(1613)에 연흥부원군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모함을 받고 역적으로 몰려 3족이 멸하게 되자 김제남의 6촌 벌 되는 사람이 도망 와서 이 나무 밑에 초가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로 여기고 오랫동안 보호해 왔으며, 민속적·역사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가지가 하 늘로 승천하는 용을 닮았다

 

 

가지 하나가 죽어가고 있다

 

 

                   

금줄

 

                          

뒷산 중턱에 이보다 더 크고 웅장한 할아버지나무가 있었는데 송충이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버티지 못하고 먼저 가버렸다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이 되면 할머니나무에 제사를 올릴 때 잊지 않고 할아버지나무가 있던 자리에 먼저 가서 혼백을 불러온다 한다.

  

 

 

  

몸체가 구불구불 승천하는 용을 닮았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나무 밑동- 세 아름이 훨씬 넘는다

 

 

 

 

 

 

 

 

나무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다

 

 

  

 

 

 

푸른 솔잎 사이에 매달려 있는 솔방울이 깨끗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