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8. 09:06ㆍ문화유적 답사기/나도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雪花 핀 금강소나무에서 들리는 거문고 소리
2015. 2. 5
대설大雪 내린 설악산 눈꽃 산행
부산스러운 소리에 이른 새벽 눈을 뜬다.
웅성거리는 소리로 짐작건대 간밤에 설악산에 큰 눈이 내린 것 같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중청대피소 통로로 나서니 세찬 눈보라가 얼굴을 할퀴어 눈을 뜰 수가 없다.
주먹 같은 눈이 펄펄 날리고 있다.
국립공원 직원이 말하길 현재 대설경보가 내려져 있고 입산통제 중이라 한다.
하산길은 오색코스와 천불동계곡코스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출을 보는 일 없어 천천히 조반을 해 먹고 날이 밝자 스패치를 두르고 이른 아침 중청대피소를 나서니 눈이 그쳤다.
간밤 큰 눈이 내려 쌓이고 운무까지 가득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다.
눈길을 걸으니 발목이 눈 속에 푹푹 빠진다.
대청봉을 오르니 하늘도 희고 땅도 희고 온 천지가 다 하얗다.
허연 눈을 뒤짚어 쓴 대청봉 표지석이 허옇게 웃고 있는 듯 보인다.
오색으로 내려가는 길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도 눈꽃
사철 푸른 나뭇잎에도 눈꽃
고사목에도 눈꽃, 바위에도 땅에도 온통 눈꽃이 피었다.
이따금 세찬 바람에 우수수 눈꽃이 떨어지며 하늘에 눈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雪花 핀 금강소나무에서 들리는 거문고 소리
아름들이 금강소나무에 눈꽃이 피었다.
붉은 가지 푸른 솔잎 위에 흰 눈을 이고 나무 중의 으뜸인 소나 문으로서의 기개와 기상을 뽐내고 있다.
'歲寒然後 知松松柏之後凋,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하였으니,
눈이 와야 솔이 더욱 푸른 줄 알겠다.
설한풍(雪寒風)이 불어오니 솔잎 위 눈더미가 부셔져 떨어지며 눈보라를 일으키며 내는 소리가 가슴을 전율케 한다.
머리에 눈을 이고 있는 푸른 솔잎, 흰 눈을 몸에 붙이고 이어 더욱 고고해 보이는 붉은 몸과 붉은 가지
오! 아름다운지고~
탄성이 절로 난다.
눈이 시리다.
조선 중기의 고승 사명당 유정(泗溟堂 惟政)은 푸른 소나무에게 바치는 헌시 청송사(靑松辭)에서,
소나무를 초목 중의 군자라 하였고, 소나무에 부는 바람소리를 거문고 소리라 하였다.
푸른 소나무에 바치는 헌시
소나무여 푸르구나
초목중의 군자로다
눈서리 차가워도 개의치 않고
이슬 내려도 웃음 보이지 않는구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변하지 않고
겨울이나 여름이나 푸르디푸르구나
푸르구나 소나무여
달뜨면 잎 사이로 달빛 곱게 체질하고
바람 불면 거문고 소리 청아하구나
靑松辭
松兮靑兮
草木之君子
霜雪兮不腐
雨露兮不榮
在冬夏靑靑
靑兮松兮
月到兮節金
風來兮鳴琴
바람 타고생각 않고 솔잎에 부는 바람 소리 들으며 망연히 서 있는다.
흰 눈을 머리에 인 직선의 꼿꼿한 강인한 소나무 잎은 설한풍 속에서도 더욱 푸르름을 발하고 있다.
퇴계 이황의 영송(詠松)
돌 위에 자란 천년 묵은 불로 송
검푸른 비늘같이 쭈글쭈글한 껍질 마치 날아 뛰는 용의 기세로다.
밑이 안 보이는 끝없는 절벽 위에 우뚝 자라난 소나무...
높은 하늘 쓸어 낼 듯 험준한 산봉을 찍어 누를 듯
본성이 울긋불긋 사치를 좋아하지 않으니
도리(桃李) 제멋대로 아양 떨게 내버려 두며
뿌리 깊이 현무신(玄武神)의 기골을 키웠으니
한겨울 눈서리에도 까딱없이 지내노라
솔잎
김 지 하
엄동에도
솔잎은 얼지 않고
나무들은
뿌리만으로 겨울을 견딘다
모두 오염되고
파괴돼 있어도
생명은 얼지 않고
뿌리에서 오는 힘으로 넉넉히
새봄을 준비한다
'문화유적 답사기 > 나도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곡마을의 구룡목(龜龍木) (0) | 2015.03.27 |
---|---|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0) | 2015.03.09 |
자작나무 사이로 하얀 겨울바람이 부는 설악산 (0) | 2015.02.25 |
함양학사루(咸陽學士樓)의 느티나무 (0) | 2015.02.17 |
춤추는 학의 형상을 한 권금성 안락암의 무학송(舞鶴松) (0) | 2015.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