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5. 07:29ㆍ문화유적 답사기/나도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자작나무 사이로 하얀 겨울바람이 부는 설악산
2015. 2.3 - 2.4
설악산을 대표하는 천불동계곡의 비경
비선대에 이르러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니 미륵봉 형제봉 선녀봉 깎아지른 침봉이 병풍을 치고 있다.
비선교 철다리를 건너 북쪽의 금강굴과 마등령 가는 길을 바라보며 왼쪽 철대문을 넘는다.
설악산을 대표하는 천불동계곡
화채릉과 공룡릉 자락이 만들어내는 비선대부터 대청봉까지 이어지는 12km의 깊은 협곡은 각양각색의 물줄기, 폭포와 담이 비경을 만들어낸다.
얼어붙은 깊은 협곡 따라 또는 가로지르며 놓인 아슬아슬한 철계단과 철다리를 지난다.
공룡능선의 자락이 만들어낸 설악골과 잦은 바위골의 초입을 지난다.
눈 쌓인 얼어붙은 계곡과 기치창검 같이 치솟은 침봉들이 만들어내는 비경에 푹 빠진다.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모진 북풍한설을 맞으며 꿋꿋이 살아가는 금강소나무
바위들이 빚어내는 만물상
눈 쌓인 겨울의 천불동계곡은 또 다른 색깔로 다가온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설악산의 진면목이 이제야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뾰죽 치솟은 귀면암이 보인다.
갈증을 느껴 귀면암 밑 휴식처에서 배낭을 풀고 감귤을 먹는다.
산새들이 하나 둘 나뭇가지에 날아들더니 지저귀기 시작한다.
이나무 저나무를 날아다니고 땅에 내려와 앉기도 한다.
감귤 껍질을 베끼고 한 점 한 점 떼어 놓으니 새들이 부리로 하나씩 물고 나뭇가지로 날아오른다.
칠성봉을 지나 화채봉 줄기와 이어지는 칠성골 갈림길을 지난다.
용비늘 껍질을 한 금강소나무가 우뚝 서 있다.
의연한 기개
푸른 솔향이 난다.
얼어붙은 오련폭포를 지난다.
긴 철다리너머 눈 덮인양폭대피소가 보인다.
양폭대피소에 올라 앞을 올려다보니 화채릉의 만경대와 염주골이 바라보인다.
불에 타버린 대피소를 재건하여 준공한 지 이제 7개월이 지난 양폭대피소 침상에 짐을 푼다.
진한 나무향이 코 끝에 묻어난다.
암봉에 둘러싸인 협곡에 위치한지라 휴대폰마저 두절되는 곳이다.
10명 수용의 아늑하고 아담한 대피소에서 길고 긴 겨울밤을 보낸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니 천불동 협곡에는 운무가 자욱하게 끼었다.
어디를 보아도 한 폭의동양산수화 같다.
철다리너머 멀리 염주골이 보인다.
양폭을 내려다보며 계단을 오른다.
철계단에 서서 얼어붙은 천당폭포를 본다.
오른쪽을 바라보니 가맣게 아슬아슬한 철계단이 이어진다.
이곳이 천불동 제일의 협곡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겹겹의 침봉들로 둘러싸여 있다.
희끗희끗 흰 눈을 덮어쓴 암봉 위에 서 있는 소나무가 보인다.
동녘이 훤하게 밝아온다.
잎을 떨꾸고 나목이 된 나무들
하늘에 가지를 활짝 펼친 겨울나무를 바라보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행복해진다.
자작나무 사이로 하얀 겨울바람이 분다.
희운각대피소 앞 철다리를 건너 철계단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희운각대피소가 눈으로 덮여있다.
소청봉 오르는 길의 자작나무 군락지
자작나무 하얀 밑동이 하얀 눈 속에 파묻혀 있다.
하얀 자작나무가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빛 속에 서 있는 자작나무
자작나무 숲
오 석 만
그냥 서서 듣고 싶다
하얀 속살 드러내며
속삭이는 목소리
바람에 만져지는 것들을
그냥 서서 보고 싶다
하얀 몸뚱이 솟아올라
하늘거리는 손떨림
설원 속에 피어나는 것들을
그냥 서서 울고 싶다
자작자작 울먹이는 하얀 몸짓
순백의 아픔
추위 속에 핀 꽃들을
첫날밤을 밝히는
타오르는 불꽃
자작나무 숲에서
하얀 나비 되어
날아오르고 싶다
자작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
최 원 정
하얗게 벗은 자작나무 나목 숲 사이로 아침 해가 빛나고 있다.
자작나무 순백의 향기
눈이 시리다.
은빛 자작나무 사이로 하얀 겨울바람이 분다.
햇살은 눈부신데
잔설殘雪은 산등성이마다
겨울을 깔아 놓았다
철마다 갈아입던 옷 벗어 놓고
하얀 속살을 드러내어
수줍어함일까...
자작나무 사이로는
하얀
겨울바람이 분다
이 추운 겨울에
나목裸木이 된 것이
어디 자작나무뿐이랴...
은빛 감도는
자작나무의 속살에 취해
겨울도
하얀 바람을 부른다
자작나무 숲너머로 공룡릉과 화채릉이 바라보인다.
언제나 장엄한 설악을 바라보며 빛 속에 서 있는 자작나무는 언제나 행복할 것 같다.
김훈은 '세설' '물드는 산, 꿈꾸는 나무'에서 말했다.
"잎이 다 지고 나면, 자작나무는 그 눈부시게 흰 밑동과 가지 안으로 겨울을 난다.
겨울에, 자작나무의 흰 가지들은 그 위에 쌓이는 흰 눈과 더불어 평화롭다.
흰 자작나무는 겨울에도 빛나면서 찬란하다.
이 찬람함에는 번쩍이는 광휘가 없다.
겨울의 자작나무가 봄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자작나무는 어떠한 시간도 기다리지 않는다.
자작나무는 모든 시간과 모든 계절 속에서 하나의 완벽한 축복에 도달해 있다."라고
"자작나무는 만주에서 시베리아, 남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나무다. 중앙아시아와 북아시아에서 알타이 굿을 할 때 샤먼은 자작나무와 말을 이용하여 제례를 치른다. 말 등 위에서 자작나무 가지를 흔들며 말을 죽인 뒤 그 가지를 불 속에 던진다. 몽골의 부리야트족은 자작나무를 천상계의 문을 열어주는 문의 수호자로 생각했다. 만주족의 창세 신화도 마찬가지로 보고 있다. 그들은 자작나무로 별을 담는 주머니를 만들었다."
< 강판권의 '나무사전'에서 발췌 >
대청봉의 눈향나무
모진 북풍한설을 견디며 사느라 몸을 한껏 낮추고 땅으로 기며 살고 있는 눈향나무
멀리 흰 눈을 뒤집어 쓴 중청 끝청을 바라보며 대청봉 기슭 하얀 눈 밭 속에 눈향나무가 서 있다.
눈향나무 묵은 가지에는 비늘잎(鱗葉)이 새 가지에는 바늘잎(針葉)이 달려 있다.
뾰족한 바늘잎이 얼마나 많은 세월 세찬 바람을 받았으면 끝이 둥글둥글한 비늘잎으로 변하였을까
어쩌면 세찬 바람 속에 모진 세월을 보내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것이리.
푸른 잎에 두 줄의 흰색 선이 있는 눈향나무 비늘잎에서 인고의 세월을 본다.
그 눈향나무에서 푸른 향이 난다.
향나무는 나무에서 향기가 나서 붙인 이름이다. 향나무는 측백나무과에 속한다. 향나무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향나무, 뚝향나무, 눈향나무, 둥근 향나무, 가이스카향나무 등이다. 늘 푸른 키 큰 향나무는 한 몸에 두 종류의 잎을 갖고 있다. 어린 가지에는 바늘잎(침엽 針葉)이 달리고, 7-8년 생 묵은 가지에는 비늘잎(인엽 鱗葉)이 달린다. 대부분 암수가 따로 있는 향나무의 열매는 콩알처럼 둥글다. 향나무는 몸에서 향이 나서 붙인 이름이지만 그냥 손으로 만지거나 코로는 향기를 맡기가 어렵다. 향나무는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내는 냄새를 향기라 여겨진다.
눈향나무는 높은 산에서 자라며, 세찬 바람을 이겨 내기 위해 줄기가 땅을 기며 퍼져 나간다. 잎은 어릴 때는 날카로운 바늘 잎이지만 늙으면 비늘 잎으로 된다. 푸른 녹색이 도는 잎 앞면에 2줄의 넓은 흰색 선이 있다. 암수 한 그루로 가지 끝에 꽃이 피는데 연한 갈색을 띠는 수꽃은 달걀형이고 암꽃은 둥근 모양이다. 둥근 열매는 가을에 검푸른색으로 익는다. < 강판권의 '나무사전'에서 발췌 >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대청봉(大靑峰)
Y자가 선명한 흰 죽음의 계곡 위로 흰 눈을 머리에 인 대청봉 정상이 보인다.
대청봉 오르는 길이 백호(白虎)의 등줄기처럼 꿈틀거린다.
대청봉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니 외설악에 운무가 가득 피어오르고 있다.
하늘은 검은 구름 흰 구름으로 덮였다가는 세찬 바람으로 다시 새파래지곤 한다.
대청봉 표지석을 중심으로 밧줄이 쳐진 둘레를 돌며 동서남북 설악의 진면목을 감상한다.
흰 눈을 머리에 인 중청 끝청 그리고 산, 산 능선너머 또 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외설악의 운무는 물러가지 않고 계속 피어오른다.
석양이 검은 구름 속에 들어갔다가는 또 나온다.
대청봉에 서서 운무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완상하고 중청대피소에 들어 잠자리에 든다
옆에 있던 청년이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별을 찍는다고 일어선다
대청봉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한가 보다.
젊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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