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래정活來亭의 차향茶香을 그리며

2013. 6. 14. 18:32도보여행기/차향(茶香) 찾아 걷는 길

활래정活來亭의 차향茶香을 그리며

- 조선시대 차문화의 명소 활래정

 

활래정活來亭  전경

 

 

선교장의 차실인 활래정은 열화당과 함께 선교장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연잎이 무성한 연못, 소나무를 심은 인공 섬인 당주當洲,  연못에 돌기둥을 세워 연못 안으로 돌출한 누樓형식의 정자가 물 가운데 떠 있는 듯 아름답다. 선교장 뒤 언덕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송림松林은 오늘도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태장봉으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활수活水는 연못으로 모여든 후 경포호수로 흘러간다.

 

활래정으로 들어가는 월하문月下門 문설주에는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읊은 시가 새겨진 편액이 걸려 있다.

鳥宿池邊樹

僧鼓月下門

새는 못가의 나무에서 잠자고

스님은 달 아래의 문을 두드린다

 

 

활래정 뒤로 선교장 본채가 보인다.

 

             

 

월하문月下門

 

월하문月下門

 “鳥宿池邊樹 僧鼓月下門”  새는 못가의 나무에서 잠자고 스님은 달 아래의 문을 두드린다
선교장에서 이 시구의 의미는 “늦은 저녁 선교장을 찾았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 월하문을 두드리시오. 그러면 반갑게 맞이하겠어”라는 뜻이라고 한다.

 

활래정活來亭

 

     

선교장 터를 이루는 산줄기는 대관령에서 뻗어내린 줄기이다.  대관령에서 뻗은 산줄기의 한 가닥은 오죽헌 자리를 만들고 다시 동북쪽으로 뻗어 시루봉으로 솟고 시루봉에서 뭉친 맥은 경포대 방향으로 뻗어가면서 여러 개의 자그마한 산줄기들을 나누게 된다. 시루봉에서 뻗어내린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이 선교장 뒤편으로 흘러내린다.

선교장船橋莊은 조선 시대 상류 사대부집의 전형을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 경포호수는 장장 30리에 달하는 커다란 호수였었는데 이 호수를 배로 건너 다녔다고 해서 선교장이 있는 곳을 배다리라 부르고, 집이름도 배다리의 한자어인 선교장船橋莊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효령대군의 11세 손인 무경 이내번茂卿 李乃蕃(1703∼1781)이 건립하였고, 누대에 걸쳐 증축하였다. 활래정은 이내번의 손자 오은 이후鰲隱 李厚(1773~1832)가 선교장의 茶室로 쓰기 위해, 순조 16년(1816년)에 건립하였다.  이 시기는 바로 근세의 대표적인 茶人 해거도인 홍현주,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초의 스님등이 차 한잔으로 청교를 맺던 조선조말 차문화의 전성시대였다. 

 

험준한 대관령을 넘어 머나먼 이곳 활래정에 온 만년의 추사 김정희는,

'단풍처럼 모든 것을 텅 비우고 산에 살리라'는 , '紅葉山居」라는 친필을 남겼다. 8대를 전해 내려온 손때 묻은 야외용 차통 등 귀중한 茶具 들과 함께 이 글씨도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李厚의 증손인 경농鏡農 이근우李根宇(1877~1938)가 고종 43년 (1906)에 중건한 것이다 

활래정은 조선 시대 차실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유적이다. 부용정과 같은 독특한 운치를 자랑하는 활래정 내에 차를 끓일 수 있는 ’ 부속 차실‘을 둔 정자의 형태는 조선시대 건축양식에서도 아주 독특한 모습이다.

  

활래정이란 이름은 송나라 주자(朱子)의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작은 연못이 거울처럼 펼쳐져
하늘과 구름이 함께 어리네
묻노니 어찌 그같이 맑은가
근원으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물이 있음일세
(爲有源頭 活水來)

 

정자를 건립한 무렵에는 경포호수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와 관동팔경을 유람하는 선비와 풍류가들의 안식처로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선교장을 찾은 많은 묵객들은 이곳에서 차 한 잔과 함께 시를 읆고 거문고를 켜고 노래를 즐기며 풍류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다.

활래정에는 시인 묵객들이 남겨 놓은 현판과 편액, 주련들이 빼욱히 걸려 있다. 

 

활래정 누마루인 대청에는 순조 때 영의정인 운석雲石 조인영趙寅永의 ‘活來亭記’가 있어 활래정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활래정기活來亭記에서 “선교장은 언덕이 둘러 있고 시내가 감싸 안았으며 땅은 기름져 곡식심기에 알맞고 과실과 풀열매며 물고기들을 놓아두고 값을

쳐서 받지도 않으며 또한 산과 바다의 아름다움도 겸하여 갖추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活來亭’이라는 현판은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규원葵園 정병조鄭丙朝 등이 썼으며, 이진화李鎭華, 임준상任俊常, 심동윤沈東潤 등 수많은 사람들의 현판이 걸려 있으며, 농천農泉 이병희李丙熙의 주련이 건물의 각 면에서 휘장처럼 둘러있다.

 

가지마다 밝은 꽃과 빽빽한 대나무 들어 있는데
주인은 작은 연못 속의 정자에 있네
구름이 걷히니 푸르름이
산봉우리에서 그림처럼 드러나고
비가 내린 후 붉은 꽃은 젖어서인지
온갖 풀이 향기롭구나.
느지막이 휘장치고 동자 불러 차 한 잔 얻으니
난간에는 퉁소 부는 객이 있어
차 향 속에 잠겨 있네.
그중에서 신선의 풍류 얻을 수 있으니
아홉 번이나 티끌세상이 헛되이 긴 줄 알겠구나

            -편액 중에서,  오천 정희용 칠언시

 

당주當洲의 푸른 소나무가  활래정 누마루로 가득 들어온다.

사면에 흙벽 대신에 띠살 창호를 두른 누마루 차실

정오의 햇살이 파고들고 있다.

긴 나무 원목의 차탁,  백자 화병 속의 붉은 꽃

차향이 어리어 있다.

  

차를 마십니다.

다리어지는 차를 보며 마시고

차 향기로 마십니다

 

혀 끝을 통해

내게 들어온 차는

생각을 타고 돌다

닫혔던 마음을 열어주고

서로의 마음 또한 이어줍니다

 

차로

가득 채운 방은

     -박인혜의 '차를 마십니다'

  

 

활래정 옆으로 난 계단을 밟고 언덕을 오른다.

군데군데 300년 수령의 노송이 하늘로 하늘로 향해 있다.

푸른 솔밭 길을 걷는다. 

추사 김정희 친필 '紅葉山居'  네 글자가 뇌리에 맴돈다.

단풍처럼 산에 살리라.

단풍 같은 마음으로

버리고 비워 텅 빈 마음으로 살리라....

송림 사이로 불어오는 솔바람에 솔향이 묻어 있다.

  

천 마디 강론도 입에서 나오고
천만 줄의 시론도 손으로 쓰지

 

차나 한잔 더 드시게

똥 냄새도
사람 몸 안에 있거늘……
어느 손이 닿으면 구린내가 되고
어느 혀가 거두면 향이 되는 법

 

학문이란,
사람이 왔다 가는 자리 한 그루 나무여야 하고
지식이란,
사람이 지나는 자리 한 떨기 꽃이라야 하겠지

 

차나 한잔 더 드시게

 

이제 다 벗어놓고 갈 나이
그대 몸에서 향이 나야지

        -이목윤의 '차나 한잔 더 드시게'

 

 

 

활래정活來亭 다실茶室    당주當洲의 소나무가 바라보인다

 

       

 

 

활래정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는 띠살문

 

       

 

추사의 친필 '홍엽산거紅葉山居'   단풍처럼 모든 것을 다 텅 비우고 산에 살리라'

 

        

 

 

선교장 뒤 언덕의 푸른 송림松林

 

                     

 

언덕에 있는 노송老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