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雲上院의 차향과 옥피리 소리

2011. 8. 3. 15:03도보여행기/차향(茶香) 찾아 걷는 길

(3) 雲上院의 차향과 옥피리 소리

     2011. 7.23  토요  안개 흐림

 

새벽 5시 민박집을 나선다.

"벌써 가십니까?"  주인이 뜨락에 서 있다.

"예, 갈 길이 멀어서요. 잘 쉬었다 갑니다."

 범왕교 직전에서 꼬부라진 길을 따라 목통마을로 향한다.

칠불사 가는 지름길이다.

목통골의 물소리가 요란하다.

목통교를 건너 마을 깊숙이 들어선다.

 간밤에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폭우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밖을 내다보니 비는 오지 않고 달이 보인다.

웬일인가 곰곰 생각하니 지리산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다.

벼락 치듯 쏟아지는 물소리로 자다 깨다 하며 보낸 밤이었다.

 목통마을은 도로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산자락에 둘러싸인 숨겨진 마을이다.

수려한 목통골을 끼고 있는 목통마을.

옛날 이곳은 '목통' 밭이어서 목통마을로 불러왔다.  

'목통'은 '으름덩굴'의 사투리로 으름덩굴 뿌리와 줄기의 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린 것을 '목통(木通)'이라 하는데 한약재로 쓰인다.

'목통'이란 한방약재 이름에서 비롯된 지명이라고 한다.

또한, 지리산에 대해 연구해 온 김경렬 옹은,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운상원에서 수도하는 일곱 왕자를 보기 위해 범왕리에 머물렀었는데, 

그곳이 바로 목통마을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물레방아 위치를 물으니 마을 주민이 저쪽으로 가면 된다며 손끝으로 가리킨다.

손끝 방향을 따라 다랑이 밭뚝길을 걷고, 농수로 물길을 따라 걸은 뒤,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무성한 잡초를 헤치며 물레방아를 찾는다.

 

  

 

 

 

잡초가 우거진 물레방앗간

 

 

이 물레방아는 목통마을이 지리산에서 최초로 전깃불을 사용한 마을이 되게 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바라 보니, 방앗간은 허물어지고 주변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물은 옛 물 그대로 흐르는데 물레방아는 돌고 있지 않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지리산 최초로 전깃불을 제공했던 목통마을 물레방아와 방아간

 

                                

 

물레방아를 돌리기 위해 목통계곡에서 끌어들인 물길

 

                               

 

물은 옛 물이로되 물레방아는 돌지 않는다.

 

                                        

마을 끝 닭장 집 옆 칠불사 넘어가는 산길을 오르니  잡풀이 우거져 진행하기 어렵다.

다시 내려와 마을 사람에 물으니, 요즈음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수풀이 우거져 길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한다.

그 옛적, 자갈색으로 익어가는 으름덩굴에 주렁주렁 달린 으름 열매를 눈에 그려 보며 마을을 조망한다.

산길을 포기하고 범왕교로 다시 나와 도로를 걸어 칠불사로 향한다.

 

너와집을 바라보며 물소리 들으며 걷는다.

길가 화단에 상사화가 피워있다.

서어나무를 지난다.

 

목통마을의 집들

 

너와집

 

상사화

 

 

서어나무

 

                                                               

원범왕마을 입구를 지나 범왕다리를 건너니 우측으로 토끼봉 오르는 등산로가 보인다.

현재는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봉쇄되어 있다.

오르막 산길을 허위허위 걷다 뒤돌아 보니 운무가 산 허리를 감싸고 피워 오른다.

산록에 차밭이 보인다.

산이 높고, 안개가 자주 끼고, 골짜기가 깊고, 마사토와 자갈이 섞인 땅이 차나무가 생장하는 최적지라 한다.

지리산 산록은 운무에 싸여 있다.

맑은 이슬비에 젖은 산록의 차나무가 한결 푸르르고 상큼하게 보인다.

 

안개가 뒤덮인 지리산 산록 범왕리 차밭

 

운무 속에  '草衣禪師茶神塔碑'가 보인다.

초의선사가 이곳 칠불암에 와 여기에 소장돼 있는  '만보전서'에서 차에 관한 부분인 '채다론'을 베껴 정리하여 발문을 쓰고 

'다신전(茶神傳)'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책은 차를 따는 시기와 요령, 차를 만드는 법, 보관하는 법, 물 끓이는 법, 차 마시는 법 등 22개 항목으로 나누어 알기 쉽게 꾸몄다,

그 후 저술한 東茶訟은 해거도인 홍현주가 부탁하여 지은 것으로 모두 31句訟으로 되어 있다.

차의 기원과 차나무의 생김새, 차의 효능과 제다법, 우리나라 차의 우월성 등을 말하고 있다.

중국에 육우의 '茶經'이 있으면 한국에는 '東茶訟'이 있다고 한다.

이는 곧 '한국의 茶經'이라고 할 수 있는 '차의 전문서'이기 때문이다.

 

초의선사 다신 탑비

 

탑비에 새겨진 차 공양상

 

 

문수동자탑

 

                                                                     

'구름 위의 집'  다웁다.

智異山七佛寺 일주문부터 운무에 잠겨 있다.

 

김수로왕은 아유다국 허황옥 공주를 왕비로 맞아 10남 2녀를 두었는데, 그중 장남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셋째 왕자는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아 김해 허 씨의 시조가 되었다.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숙인 장유보옥을 따라 출가하여 여러 곳을 전전하며 수행타가 이곳 지리산에 운상원을 짓고 수행정진하여 모두 성불하였다. 칠 왕자의 성불로 인하여 칠불암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지리산 칠불사 일주문

 

김수로왕 부부가 출가한 일곱 왕자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와서 왕자를 만나려 하자, 장유보옥은 “왕자들은 출가 수행하는 몸이라 상면할 수 없고, 꼭 보고 싶으면 절 밑에 연못을 만들어 물속을 보면 왕자들을 볼 수 있다." 하니, 이에  연못을 만들고 연못 속을 보니 일곱 왕자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왕자들을 본 김수로왕 부부는 환희심을 느끼고 돌아갔다 한다. 그로 인해 이 연못을 '영지'라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지에는 금붕어만 한가로이 노닐고, 영지 속의 나무 그림자만 무심히 바람과 물고기가 일으키는 파문에 일렁이고 있다.

 

일곱 왕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는 영지
무 명의 석종형 부도 2기

 

                                                                                                                                 

동국제일선원 현판이 걸린 보설루를 오른다.

보설루 벽에는 칠불사 전경 사진이 걸려있고, 잡보장경 法句가 걸려있다.

 

동국제일선원 보설루

 

지리산 칠불사

 

                                                    

반석(盤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기 어려움을 참는 것이 진실한 참음이고,

누구나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은 일상의 참음이다.

자기보다 약한 이의 허물을 용서하고,

부귀영화 속에서 겸손하고 절제하라.

참기 어려운 것을 참는 것이 수행의 덕이니,

원망을 원망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성내는 사람을 대하여도 마음을 고요히 하여,

남들이 모두 악행 한다고 가담하지 말라.

강한 자 앞에서 참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고,

자기와 같은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은 싸우기 싫어서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이 진정한 참음이다.

욕설과 헐뜯음을 못 참는 것은 어리석음이요.

욕설이나 칭찬으로 지혜로운 이를 어찌하지 못함은

큰 바위에 폭우가 쏟아져도 부서지지 않음과 같아

비방과 칭찬 괴로움과 즐거움을 만나도

지혜로운 어진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이 그러해서 욕을 먹으면

그것이 사실이니 성낼 것 없고,

사실이 아닌데도 욕을 먹으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 되는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때나

화를 내지 않는다.          

 (잡보장경)

 

 

보설루 대웅전 아자방 문수전 설선당 원음각이 안개에 덮여 있다.

 

아자방

 

 

 

 

 

 

 

아자방 선원

亞子房은 신라 효공왕 때 김해에서 온 담고(曇空) 선사가 선방인 벽안당 건물을 아자형으로 구들을 놓았는데 초기에는 한번 불을 때면 석 달 이상 따뜻했다고 한다.  이 아자방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한 우익공계 건물로서 정면 우측 2칸은 부엌이고 좌측 3칸은 온돌방으로 내부는 틔어져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 높이가 다른 이중 온돌 구조로 되어 있으며 방안 네 모퉁이와 앞뒤 가장자리 쪽의 높은 곳은 좌선처이고 가운데 십자형으로 된 낮은 곳은 좌선하다가 다리를 푸른 경행(輕行) 처이다. 공부할 때는 종일 눕지 않고, 하루 한 끼만 공양하며 묵언정진하느 규율이 전해져 왔으며, 유명하여 중국 당나라에까지 알려졌다. 이중 구조의 이 온돌은 수평인 곳이나 수직인 곳, 높이 있는 좌선처나 낮은 경행처 모두 똑같은 온도를 유지하여 탁월한 과학성을 자랑하고 있어 1979년 '세계건축사원'에도 수록되었다. 1948년 12월 여순반란사건의 공비 토 벌 때 소실되었으며, 폐허 된 칠불사를 복원하면서 1982년 우통광 선사에 의하여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자방 참선 스님은,

눕지 말아야 하며 (長坐不臥)

말을 하지 말아야 하며 (默言)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한다 (一日一食)

 

조선시대 이름난 스님 西山, 浮休, 金潭, 大隱, 草衣, 月松, 秋月이 이곳을 거쳐갔다. 특히 추월스님은 아자방에서 선 채로 참선을 해 견성한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선 수행처 아자방의 주련을 옮긴다.

 

담공선사 빼어난 솜씨 멀리 당나라에까지 알려졌고

금관가야에서 오시어 아자방을 축조하셨네

정교한 공법 기이한 공적 엿볼 수 없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천 번 만 번 생각게 하네

눕지 않고 한 끼 먹고 면벽하고 앉아

다그치는 참선 공부 서릿발 같이 엄하네

 

천길 벼랑 끝에 매달린 손 놓고 몸을 날려 뒤쳐야 하나니

그 중간에 아예 사량분별 하지 말라

솔바람 가을달은 바위에 비춰 어리고

고목에 꽃이 피니 영겁밖의 향기로다

훗날 나와 더불어 만나게 되면

임제의 선풍이 한 바탕 나타나리

  

싱그러운 안개를 헤치며 맑고 촉촉한 이슬 기운을 느끼며 칠불사 경내를 걷는다.

설선당 처마 끝 풍경은 운무망망(雲霧茫茫)한가운데 모든 것을 놓아 버린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설선당 처마의 풍경

 

                                                                       

예로부터 칠불사에 乳泉水가 있다고 전해 온다.

동다송에서 나오는 "나에게 乳泉이 있어 이 물을 떠서 찻물을 끓이면"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유천은 일지암의 샘물을 말하는데, 물은 차의 몸이요, 차는 물의 정신이 되는 것으로 좋은 물을 잘 끓여서 사용하는 것이 차를 달이는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 유당이 유배 갔다가 풀려 돌아갈 때 일지암에 들러 하루 묵었는데, 乳泉의 물을 맛보고는 "소락(우유로 만든 음료)보다 더 맛이 좋다"라고 했다 한다. 乳泉水란 모든 생명을 기르는 젖과 같이 좋은 샘물을 말한다. 명나라 전예형이 지은 '煮泉小品'의 '乳泉'조에 " 乳泉이란 종유석의 샘이요, 山骨의 고수(膏髓)이다그 샘물의 빛깔은 희고 무거우며 지극히 달고 향기로워 마치 감로와 같다"라고 하였다.

 

칠불사 경내에 있는 유천수라 전해지는 샘물을 한 바가지 떠 마신다. 

맑고 좋은 물이다.

 

칠불사 경내의 유천수라고 전해지는 샘물

 

 

동다송 22절에 "又有九難有四香玄妙用  何以敎汝玉浮臺上坐禪中"이란 구절이 있다.

바로 지리산 칠불암 옥부대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얘기다.

초의스님은 "지리산 화개동에 차나무가 40-50리나 연이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보다 더 넓은 차밭은 없으리라.

화개동에는 옥부대가 있고 그 밑에 칠 불 선원이 있는데 좌선하는 스님들이 늘 쇤 잎을 늦게 따서, 

섶나무처럼 볕에 말려 솥에다 나물국을 끓이듯 삶는다. 

빛깔은 짙고 흐리며 맛은 몹시 쓰고 떫어 천하에 좋은 차를 속된 솜씨로 못쓰게 한다"며 그 스님들에게 차 만드는 법을 

어떡하면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썼다.

초의스님은 그다음 구절에서 지리산 화개동의 차를 극찬한다.

 

"아홉 가지 어려움을 그르치지 않고 네 향이 온전하면

지극한 맛, 가히 하늘에 바칠 만하네

비췻빛 푸른 향, 마시자마자 머릿속 깊이 스며

맑고 총명함이 두루 미치고 막힘이 없어지네

하물며 그대 신령스러운 뿌리, 더욱 영산인 지리산에 내렸으니

신선 같은 용모, 고결한 풍채는 그 종자부터가 절로 다르네"

 

초의스님이 이곳 칠 불 선원 아자방에서 공부를 하던 때가 43세 때인 1828년, 이곳 서고에서 청나라 모환문이 엮은 백과사전의 일종인 

'만보전서' 가운데 채다론(採茶論)을 초록해 가지고 있다가 2년 후 대흥사 일지암에서 정서해 새로 이름 붙인 것이 '다신전(茶神傳)'이다.

초의선사는 '총림에 조주의 끽다선풍이 있으나 모두가 다도를 모르고 있어 후학들을 위해 '채다론'을 초록했다'라고 써놓고 있다.

 

옥부대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사는 칠불암은 어떤 곳인가.

칠불암은 1500미터가 넘는 지리산의 15 봉우리 중 토끼봉(1533m)의 주맥이 섬진강을 보고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중턱에 2000년 전에 

세운 암자이다.

........ 

화개천이 흐르고 있는 주위를 우리나라 차의 시원지로, 또 차문화의 진원지로 꼽는 데는 누구도 사족을 달지 않는다.

칠불암이 토끼봉 주맥이 흐르는 산마루에 자리를 잡은 지 2000여 년.

수로왕에게 시집올 때 차 씨를 가지고 왔다는 허왕후, 그가 낳은 아들 7왕자가 성불한 곳이다.

또 신라 42대 흥덕왕 때 당나라에 갔던 사신 대렴(大廉)이 가지고 온 차씨를 이 산 아래에 심었다고 한다.

조선조 때는 부휴스님이 이곳에서 차나무를 가꾸고 차를 만들어 마시며 공부하다 입적했다. 

 ..... 

임란의 명장이자 차인인 부휴스님 茶詩

 

굽어보고 우러러 천지 사이에

잠깐 동안 한때의 나그네 되었구나

숲을 헤쳐서는 새로 차를 심고

솥을 씻어 약석을 달이노라

 

달 뜬 밤에는 밝은 달빛 희롱하고

가을 산에서 가을 저녁 보낸다

구름도 깊고 물도 또한 깊어

찾을 사람 없으니 절로 기뻐지네

  

아무도 없는 궁벽한 산속. 그 속에서 차나무를 심고 한가로이 달을 희롱하는 그 여유가 좋다.

한가로움을 달래기 위해 차나무를 심고 약석(藥石)을 달이는 그는 시인인지 산증인지, 초인의 경지요 달인의 경지다.

 

깊은 산에 홀로 앉아 일마다 가뿐한데

하루 종일 사립문 닫고 무생(無生)을 배웠노라

생애를 낱낱이 살펴봐야 별다른 것 없나니

햇차 한 잔에, 한 권의 경책일세

 

아침에는 잎차 따고 저녁에는 섶을 줍고

산과 가지 거두나니 아주 가난하지는 않다네

향 사르고 홀로 앉아 별다른 일 없으면

정다운 사람과 나눌 새 이야기 생각하네  

(김대성의 '한국차문화 기행'에서)

 

 

雲上院은 칠불암의 옛 이름이다.

그 아래로 구름이 있어 구름 위의 天上과 같다 하여 구름 위의 집 雲上院이다.

전설 속의 장유보옥의 옥피리 소리와  옥보고의 거문고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범왕천을 따라 자연의 음악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운무가 낀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사박사박 걷는다.

  

 

 

 

 

물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무렵 쌍계사 입구에 도착한다.

11시가 조금 넘었는데 무더위로 인해 몸은 벌써 지친다.

식당에 들러 산채비빔밥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민박을 정해 휴식한다.

휴식 후 쌍계사와 불일암 불일폭포를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