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화개골의 천년 차향(茶香)

2011. 8. 9. 22:07도보여행기/차향(茶香) 찾아 걷는 길

(5) 화개골의 천년 차향(茶香)

    천년차나무와 대비암

       2011.7.24.  일요일  안개 흐림

 

새벽

으슴푸레한 길에 선다.

파르스름한 겹겹의 지리산 봉우리들이 해맑은 새벽안갯속에 묻혀 있다.

 

 

진감국사는 다도의 선구자요, 차의 달인이다. 다선일미의 진수를 터득한 그는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차나무 씨앗을 가져와 옥천사 주위에 심고 가꾸었다. 봄이 오면 돋아난 새 잎을 따서 덖어 차를 만들어 마시며 수행정진 하였으며, 청아한 목소리로 범패를 불러 오묘한 불법을 전파했다. 진감선사비명에 고운 최치원은 선사의 차생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중국의 차(漢茶)를 공양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솥에 섶으로 불을 지피고 가루로 만들지 않고 끓이면서 말하기를 '나는 맛이 어떤지 알지 못하겠다. 뱃속을 적실 따름이다.'   참된 것을 지키고 속된 것을 싫어함이 다 이러하였다."라고 하였다. 격식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스러운 차생활을 한 진감선사. 위 몇줄의 비문으로 인하여 쌍계사가 차의 명소가 되었다. 초의선사의 동다송에 "지리산 화개동에 차나무가 40-50리나 연이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보다 더 넓은 차밭은 없으리라."라고 하였다. 화개동천은 우리나라 최대의 야생 차밭으로 이름이 나 있다.

 

'차시배지 길'을 걸어 석문마을을 지나니 산록에 차밭이 나온다. "차시배지(茶始培地)" 표지석 '진감국사 차시배 추앙비' '견당사 김대렴 차시배 추원비'가 나란히  서 있다. '삼국사기'에 신라 흥덕왕 3년(828)에 보면,  "겨울 12월, 사신을 당나라에 들여보내어 조공하니 당나라의 문종이 인덕 전에 불러 만나보고, 잔치를 베풀었는데 충하가 있었다.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사신인 대렴(大廉)이 차씨를 가져오니 왕은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이미 선덕왕 때부터 있었으나 이때에 이르러 성행되었다."

그러나 차시배지가 쌍계사쪽인지 화엄사 쪽인지 서로 자기 쪽이라 주장하며 갑론을박하나 정확한 고증이 없다.

 

차시배지 표지석과 추원비

 

 

야생 차밭

 

대나무숲이 둘러 선 산록에는 새벽 맑은 이슬을 머금은 푸른 잎의 토종 야생 차나무가 싱그러운 차향을 뿜어내고 있다. 차밭 뒤로 지리산 연봉이 운무 속에 아물아물하다. 야생 차밭 고랑길을 걸어 산기슭으로 올라가 앞을 보니 지리산 겹겹의 봉우리가 운무에 파묻혀 있다. 지리산 산록과 화개골은 온통 차밭이다.

 

초의선사는 동다송 제1절에 이렇게 쓰고 있다.

"后皇(조물주)이 아름다운 차나무에 귤나무와 같은 덕을 갖게하였으니

명을 받아서 옮겨가지 아니하고 남쪽 나라에서만 사는구나

빽빽한 이파리는 싸락눈과 싸우며 겨우내 푸르르고

흰꽃은 서리에 씻기어 가을 정취를 빛내누나

고야산에 사는 신선의 살결같이 희고 깨끗하며

염부제의 단금 같은 황금빛으로 꽃술을 맺었구나"

 

차나무를 군자의 덕. 정절. 충절. 歲寒精神. 순결로 상징했다.

 

초의선사는, "차나무는 과로(瓜蘆)와 같고, 잎은 치자(梔子)와 같고, 꽃은 백장미와 같고, 꽃술은 황금과 같아 가을이면 꽃을 피워 맑은 향기가 은은하더라"라고 풀이 했다. 차나무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다. 모든 식물은 꽃이 피면 당년에 씨앗이나 열매가 익지만, 차나무는 독특하여 꽃이 피면(9-11월) 꼭 1년 후에 열매가 익는다. 한 가지에 익은 열매가 1년 후에 피는 꽃을 맞이하여 '꽃과 열매가 서로 만난다'하여 '實花相逢樹'라 한다.

도심다원 찾아가는 길가에는 백일홍나무가  송이송이 붉은 꽃을 뽐내고,  옥수수나무도 털털한 꽃을 피우고 있다.

 

 

신촌마을 차밭을 지나 도심마을에 들어선다. 장승이 군데군데 서 있다. 맑은 이슬을 머금은 야생 차밭의 싱거로운 차향이  코끝에 묻어온다. 벽옥 같은 푸른색에 눈이 시려온다.

 

 

 

정금리 '도심다원'에 있는 한국에서 제일 크고 수령이 천년이 넘는 "천년차나무"를 만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도심다원'의 가파른 길을 오른다.  산록의 야생 차밭의 푸른빛 싱거로움을 만끽한다.

 

 

 

도심다원

 호두나무에는 주렁주렁 호도알이 익어가고 있다.

 

 

정금리 회강이 골  해발 약 200m 산 중턱 도심다원 맨 위쪽에  천년차나무가 있다.

河東 井琴里 茶나무(경남 기념물 제264호)

"차나무 높이 4.2m,  지표의 나무둘레 57cm,  수관폭은 5.6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로 '한국최고차나무'  또는 '천년차나무' 등으로 불려지고 있다.  차나무는 관목성으로 主幹(원줄기)이 발달하지 않으나 이 차나무는 소교목형으로 대나무와 활엽수의 기존 수림 속에서 생존해 왔었다.1960년대부터 차를 가꾸고 차밭을 새롭게 조성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차나무는 대부분 제거되거나 강한 전정으로 고유한 수형을 잃었고,  이 차나무만 수세가 강하고 수형이 좋아 지금까지 보호 관리되고 있다."

 

 

 

천년차나무
냉해를 입어 죽어가고 있는 천년차나무

 

천년차나무

천년 세월 지리산 연봉과 화개동천 굽어보며 이 자리에서 서 있었다니 경외롭기만하다. 그러나 애석하다. 지난해 겨울 모진 추위에 냉해를 입어 앙상한 가지에는 파란 이파리 하나 돋아나지 않는다. 회생하기를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바람으로 다시 푸른 잎을 달고 살아나기를 기원해 본다.

 

푸른 야생 차밭 산록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산록 아래 도심마을이 보이고 앞산 너머 저 멀리 화개장터와 섬진강 남해대교가 운무 속에 아물 거린다.오늘 정금리 산록의 야생 차밭에 서서 운무 속의 화개동천과 지리산 연봉을 바라보니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다.

코끝에 맡아지는 차향, 혀끝에 느껴지는 차미는 일부분이라는 것이다.코로 맡지 않고 혀로 느끼지 않는  차향과 차미가 있다.그것은, 차나무 씨앗 뿌려 가꾸며 키우면서, 계절마다 차나무 생태를 관찰하면서, 봄이면 돋아나는 새순을 따면서, 무쇠 가마솥에 찻잎을 덖고 

또 손바닥으로 비비면서, 찻물 끓는 소리 들으면서, 찻잎 우러난 빛깔 보면서, 그때그때 가슴에 닿아지는 숨결들이 모든 차향이며, 차미인 것이다.이러한 모든 숨결들이 어우러져야 진정 깊고 그윽한 차향과 차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신촌교를 건넌다.

화개동천  양 옆으로 푸른 차밭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산기슭을 따라 푸른 차밭이 이어지고 있다.

 

대비암 가는 길  정금리

이곳 정금리의 정금(井琴)은 지리산 운상대에서 옥보고가 뜯는 가야금 소리가 30리나 떨어진 이곳 우물 속까지 울려왔다고 해서 井琴이라 부르게된 전설의 마을이다. 지독히도 무더운 날씨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대비암 가는 길은  끝없이 오르막 길이다. 잠시 길가 야생 차밭 둔덕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운무에 지리산 봉우리가 보이지 않는다. 마을 노인에 대비암 위치를 물으니,  "산밑까지 가야 해요" 한다.

채마밭의 옥수수 꽃이 위안이 되고, 돌담을 타고 덩굴을 뻗은 '노랑하눌타리 꽃'이 위로해 준다.

마을이 끝나는 산 중턱이다. 누런 개가 낯선 객을 보고 짖는다. 개 짖는 소리에 멈칫 발걸음을 멈춘다. 깜깜한 새벽 월출산 사자봉 올라가는 입구  천황사의 개짓는 소리에 온몸이 얼어붙었던 기억이 난다. 

대비암 입구 차량통행금지 차단봉에 풍경이 달려 있는데 바람이 불적마다 쟁그렁 쟁그렁 소리를 낸다. 운치를 느낀다.

 

 

옥수수 꽃

 

노랑하늘타리 꽃

 

 

대비암 입구 차량통행금지 차단봉

 

돌담을 타고 늘어진 능소화가 만발하여 경내를 환히 밝히고 있다. 만발한 능소화 속에 쌍사자가 힘껏 화사석을 떠받치고 있는 석등이 보인다.아담한 대웅전과 만덕당 요사채 그리고 마당에는 수령 300년의 서어나무가 무성한 잎을 달고 우뚝 서 있다. 경내 주위에는 울울한 수림과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작지만 운치 있는 대비암이다. 이곳은 1,900여 년 전 지리산 운상원에서 수도하는 일곱 왕자를 찾아온 김수로왕의 왕후 허황옥이 묵고 간 대비암터다.

서어나무 옆을 지나니, 범부채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일곱 왕자를 찾아온 허황옥이 묵고 간 1,900여 년 전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환하게 웃고만 있다. 작은 계류에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쌍사자 석등과 능소화

 

대웅전과 만덕당

 

 

수령 300년의 서어나무

 

범부채

 

요사채에는 '대비암' '화개동천' 두편액이 걸려 있다.

 

정금마을 앞에서 정금교를 걸어 화개동천을 건넌다. 야생차가 자라는 화개동천과 지리산 산록은 아름답기만 하다.

화개 십리벚꽃길은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게 보도가 설치되어 있다. 섬진강을 따라 화개천에 황어가 올라와야 이곳 십리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고 한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아래까지 약 십리에 이르는 이 벚꽃길은 일제 강점기인 1931년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주민 둘이 직접 심어 조성하였다. 홍도화 200그루, 벚나무 1,200그루를 심어 지금의 벚꽃길이 형성되었다 한다.

십리 벚꽃길에서 조망되는 운무에 가리어진 화개골 지리산록은 천년 세월 우리나라 토종 야생차가 면면히 자라 온 우리 차의 고향이다. 수많은 역사와 전설을 간직한 채 천년 차향이 머물고 있는 지리산 화개 천년 지리산 숨결과 차향은 면면히 이어져 오늘도 천년 숨결과 차향을 토해 내고 있다.

 

 

 

화개동천의 지리산 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