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三神洞을 찾아서 -산 높으니 골 깊어라

2011. 7. 29. 22:00도보여행기/차향(茶香) 찾아 걷는 길

(2) 三神洞을 찾아서

     산 높으니 골 깊어라

      2011. 7.22.   금요   새벽 비, 안개, 흐림

 

04:50분 세석대피소를 나서니 비가 뿌리고 있다.

배낭 위로 우의를 걸쳐 입고 랜턴을 켜고 출발한다.

안개가 자욱한 영신봉과 영신대를 지난다.

영신봉과 덕평봉 아래 일원이 三神洞인 義神.靈神.神興 중 靈神에 해당된다.

비록 안개로 뒤덮여 있지만 눈 길은 靈神을 향하며 걷고 있다.

산 능선길은 비가 내려 미끄러워 잰걸음으로 진행할 수가 없다.

우의를 입은 탓이지 땀이 줄줄 흐른다.

 

 

 

선비샘에 도착하여 배낭 풀고, 차가운 샘물을 받아 마시고 또 마신다.

누가 소리를 지른다.

"저기를 보세요"

안개가 걷히며 하늘이 열린다.

지리산 연봉들이 점점이 섬이 되어 구름바다에  떠 있다.

아!  장엄한 광경이다.

사진기를 꺼내는 중에 안개가 순식간에 하늘을 닫아 버린다.

점점 더 안개는 짙어만 가고 두 번 다시 하늘은 열리지 않는다.

 촉촉한 빗속의 야생화는 물기를 머금고 있다.

지리터리풀은 더욱 빨갛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능선을 따라 곳곳에 피어있는 주홍색 말나리가 산행을 즐겁게 해 준다.

동자꽃, 일월비비추, 긴 산꼬리풀, 원추리, 양지꽃...

 

말나리

  

긴산꼬리풀

                         

 

동자꽃

                        

 

원추리

                            

벽소령 가까운 능선길 싸리나무에는 나비모양의 붉은색 꽃이 촘촘히 피어 있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등산화 끈을 조이고 스틱을 짚고, 삼신동 야생차향을 찾아 '의신마을(하동)' 이정표 팻말을 흘끗 보며 길을 잡는다.

인적 없는 산길을 따라 15분여 걸어내려가니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린다.

풀숲을 헤집고 계곡으로 내려서 보니, 나무와 숲이 우거진 골 속에 작은 계류가 흐르는데  검은 이끼 바위 위로 흐르는 물길이 아름답다.

 

 

 

 

 

바위 사이를 흐르며 작은 폭포를 이루는데 우렁찬 물소리가 산중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다.

작은 계류 두 물길이  만나는 다리를 건너 인적 없는 너덜지대 길을 걷는다.

 7-8명 정도의 사람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안녕하세요' 수 인사하니, 선두의 여성이 "반갑습니다" 화답한다.

맑고 깨끗한 얼굴에는 단아한 미소가 흐르고 있다.

나도 어느덧 미소가 번진다.

일행들과 조용히 서로 목례하며 엇갈리며 지난다.

너덜길을 오르는 여성들의 몸놀림과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하나같이 얼굴이 맑고 평화롭다.

구도자(求道者)들인 것을....

산길을 허위허위 걸어 멀리멀리 구름 위로 올라가고 있다.

 다리가 끊어진 작전도로에 도착한다.

 

 

 

평탄한 좁은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왼쪽은 깊고 깊은 골짜기다. 나무들이 빼 욱한데 안개로 뒤덮여 있다.

 

옛 작전도로는 군데군데 돌이 무너져 내렸고 잡목이 우거져 차량통행은 불가능하고 작은 오솔길만 나 있다.

중간에 삼정마을로 내려서지 않고 길게 돌더라도 옛 작전도로에 난 오솔길을 계속 따라 걷고 싶은데  목책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출입금지' 표지가 붙어있다.

 

 

 

너 댓 집 정도가 있는 삼정마을에 도착한다.

염소 축사가 보인다.

염소가 흐르는 물을 먹고 있다.

 

 

 

 

 

가파른 시멘트 길을 걸어 내려간다.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 아래로 내려선다. 계곡 물소리가 요란하다.

배낭 풀고 맑은 계류에서 탁족을 한다. 

열기로 가득한 발을 5분여 차가운 계류에 담그고 있으니 온몸에 한기가 느껴진다.

지친 세포가 다시 활력을 되찾는다.

 

의신마을  내려가는 길가 자귀나무에는 분홍색 꽃이 피어 있다.

기다란 분홍색 수술이 깃털처럼 모여 피였고, 꼬투리열매가 달려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자귀나무꽃

 

산 높으니 골 깊어라.

의신골 깊은 계류는 유장히 흐른다.

산기슭 개머루에 조발조발 달린 둥근 머루알이 커가고 있다.

 

머루

 

연녹색을 띤 때죽나무 열매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두 눈이 둥그렇게 떠지며 가슴이 뛴다.

 

때죽나무 열매

 

 

 경이로운 때죽나무 열매를 보며, 문효치의 시를 떠 올린다.
    
그날 바위를 두드리며
우리의 귀를 씻어 주던 물소리. 

오늘은 저 때죽나무에 올라
푸른 열매가 되어 방울방울 열렸네. 

무엇은 무엇이 되고
또 무엇은 무엇이 되고 한다는데

그대의 영혼은
지금 무엇이 되어
나를 보고 있는가 
......                          

 

의신마을에 도착한다.

지리산역사관 입구에는 '지리산 공비토벌루트 안내도'가 있다.

단출하게 꾸며진 1층짜리 건물 '지리산역사관'에 들어선다.

지리산을 주 무대로 살아가던 화전민들의 생활상을 소개하고 있다. 

설피, 나무절구, 나무김칫독 등 생활도구들이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빨치산의 역사와 토벌 과정을 설명해 놓았다.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기상과 혼이 담긴 명산이지만, 해방 후 현대사의  아픔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6.25 전쟁이 끝났음에도 투항하지 않고 토벌대에 의해 최후를 맞은 빨치산.

그들이 사용했던 총기류 등이 전시되어 있어 빨치산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의신마을 뒷산에 있는 당산나무를 보기 위하여 마을길을 오른 후, 땀을 뻘뻘 흘리며 산길을 오른다.

은은한 향을 풍기는 야생차나무 밭 산기슭에 수령 200년이 넘는 당산나무가 우뚝 솟아 마을을 굽어보고 서 있다.

나무 밑동에는 금(禁) 줄을 쳐 놓았고,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축대 아래로는 꼭대기에 새 모양을 얹은 여러 기의 솟대가 서 있다.

 

마을 노인에 의하면, 당산나무의 수종은 참나무인데, 이곳 마을사람들은 '속 싸리 꿀밤나무'라 하는데, 자잘한 꿀밤(도토리)이 많이 열린다 한다.

속싸리 꿀밤나무에 열린 꿀밤으로 만든 묵은, 다른 꿀밤나무 꿀밤으로 만든 묵보다 훨씬 더 맛있다고 한다.

              

의신마을 뒷산에 있는 당산나무

 

당산나무 밑동에 쳐진; 금(禁) 줄과  그 앞의 제단

 

     

 

 

의신마을 뒷산에 있는 당산나무와 솟대

 

                                     

풍수지리상 의신마을은 선학포란(仙鶴抱卵 : 학이 알을 품은 형상) 형이라 한다.

또한 산줄기가 흘러내려 마을 앞에서 합수하는 모습이 물 위에 떠 있는 배와 같다 하여 행주형(行舟形)이라고 마을사람들은 믿어왔다.

마을 입구에 돛대에 해당하는 솟대를 세웠는데, 금줄을 둘른 장대 꼭대기에는 나무로 만든 새를 얹어 놓았다.

 

마을 노인이 이르길 마을 사람들은 마을 뒷산에 있는 당산나무를 '뒷당산'이라 하고, 마을 입구에 세운 솟대를 '앞당산'이라 한다.

당산제는 매년 음력 섣달그믐 해가 바뀌는 12시에 '뒷당산' 제단에 제물을 차리고 제를 지내는데, 마을 주민들의 소원성취와 소망을 

소지 종이에 적어서 불에 태워 올린다고 한다.

또한 정월 초하루 아침 앞당산 앞에서 제를 올리는데, 특이한 것은 제를 올릴 때 객사밥을 같이 올리며(이는 국가변란시, 임진왜란, 

한일합방, 여수반란, 6.25 전란이 있을 때 항상 골이 깊은 이 마을에서 끝을 맺는다는 유래가 있음), 마을 어르신들을 모셔 새해 새배를 

올리며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한다 한다.

 

 

솟대, 그리고 仙鶴亭과 仙鶴館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솟대

 

                 

장대 꼭대기에 나무로 만든 새를 얹어 놓았다

 

                           

깊은 골을 따라 걷는다.

이 길에는 유난히 자귀나무가 많다. 분홍 깃털꽃을 바라보며, 화개동천을 따라 걷는다.

대성골 입구를 지나고, 단천마을, 선유동계곡 입구를 지난다.

 

'삼신동(三神洞)'은  義神(의신마을, 대성마을을 포함한 대성리), 神興 (신흥, 목통마을 포함한 범왕리), 靈神 (덕평봉 일원과 대성계곡 상류 일원) 

세 마을을 일컫는데, 이는 최치원 등이 신선이 살만한 곳이라고 명명을 하였다 한다.

이곳에는 옛날 義神寺  神興寺  靈神寺의 세 절이 있었던 곳이라 三神洞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삼신동은 임진왜란과 의병들의 항전, 여순반란과 6.25 전쟁 시  많은 수난을  당하였다.

삼신동 주민들은 마을 이름에 모두 귀신 신(神) 자가 들어 있어 재난을 입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의 한자 글자를 義信, 新興으로 바꾸었고, 

靈神은 아예 德平으로 고쳤다고 한다.

 

삼신동에는 최치원 선생의 세 가지 흔적이 있다.

'三神洞' 각자와, 푸조나무, '洗耳岩' 각자다. 최치원 선생이 신라말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지리산으로 들어가며 더러워진 귀를 씻었다는 '세이암(洗耳岩)' 각자가 있는 너럭바위는 화개동천 건너에 있다.

 

                                        

옛날 신흥사(신응사) 자리에는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가 자리하고 있고, 그 교문 앞에는 푸조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서 세이암과 화개동천을 

굽어보고 있다. 하동 범왕리 푸조나무의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5m 둘레가 6.25m이다. 이 나무가 세이암 건너편에 자리하게 된 전설이 전해지는데, 최치원 선생이 지리산 신흥사로 들어갈 때 꽂아 두었던 지팡이에서 싹이 자란 나무라고 하며, 선생은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았고 이 나무가 죽으면 나도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 이 나무는 마을에서 쉬어 갈 수 있는 정자나무의 구실을 하고 있다

 

 

나무 높이 25m, 둘레가 6.25m 나 된다.

 

경남 기념물 제123호 하동범왕리푸조나무

 

                                   

신흥교 삼거리에 '천년지향'이라는 찻집 옆 마당에 '三神洞' 각자가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三神洞'이라는 글씨는 최치원 선생의 친필이라고 한다.

三神洞은 옛날 靈神.義神.神興의 세 절이 있었던 곳이라 三神洞이라 했다 한다.

지금은 절이 없고 의신사 터는 의신부락으로, 신흥사터는 신흥부락이 되었다.

 

 

            

'三神洞' 각자

 

                                                 

또한 신흥교가 있는 자리는 옛날 홍류교와 능파각이 있던 자리다.

신흥교 앞 삼거리  도로 산기슭 아래에는  남명선생시비가 세워져 있다.

 

남명선생시비

 

 

 

남명선생의

讀書神凝寺 (신응사에서 글을 읽다가) 시를 옮겨 본다. 

 

讀書神凝寺           신응사에서 글을 읽다가

瑤草春山綠滿圍   아름다운 풀 봄산에 가득한데      

爲憐溪玉坐來遲   시냇물 좋아 늦게까지 앉았다        

生世不能無世累   세상 사는데 번거로운 일 없지 않아                                               

水雲還付水雲歸   물과 구름을 물과 구름에 되돌려 보낸다.                                         

 

남명선생시비 앞에 서서 옛 홍류교 능파각과 신흥사 그리고 내 은적암터를 바라본다.

두 내가 합쳐지는 곳  현 신흥교 자리에 옛 홍류교와 능파각이 있던 곳이다.

산기슭에 야생차밭(현 명성다원) 있는데, 그 차밭 위쪽에 '내 은적암'터가 있고  차밭 아래가 신흥사(현 화개초등 왕성분교)가 있던 자리다.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으로 돌아가 '두류산 신흥사 능파각기'에서 휴정이 묘사한 풍광을 눈에  그려 본다.

 

 

 

왕성분교 뒤편 야생차밭(현 명성다원) 정자 뒷편 산기슭에 내 은적암터가 있다

 

                            

한동안 서서 화개동 골을 바라보며 서산대사의 행적을 쫓는다.

서산대사의 위대한 삶이 시작된 곳

두류산 화개동 골짜기에서의 자취를 더듬는다.

그는 생원시에 낙방하고 남쪽지방의 산천유람을 하기 위해 유랑하다 두류산을 찾아들었고, 여러 절을 떠돌다 화개동 골짜기에서 숭인스님을 만나 그가 건네준 전등록. 화엄경. 법화경. 유마경. 반야경등을 탐독한 후 크게 깨닫고,

忽聞杜宇啼窓外    갑자기 창 밖에 두견새 우는 소리 들으니

滿眼靑山盡故鄕    눈앞의 봄산이 모두 고향이네. 
汲水歸來忽回首    물을 길어 오다 문득 머리를 돌리니

靑山無數白雲中    푸른 산은 무수히 흰구름 속에 있네.

라는, 이 시를 짓고 숭인스님 앞에서 삭발 출가하여 원통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한다. 영관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주로 의신사 근처의  원통사 삼철굴 원적암 신흥사 등  토굴과 여러 암자를 찾아다니며  피나는 정진과 수행을 하였다.  어느 날 남원 고을을 지날 때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고 시를 읊는다.     

 

髮白非心白    머리는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古人曾漏洩    옛사람 일찍이 말했던가

今聞一聲鷄    이제 닭 우는 소리 듣고

丈夫能事畢    장부의 큰 일 능히 마쳤네.

 

忽得自家處    홀연히 내 집 어딘지 깨닫고 보니

頭頭只此爾    모든 것이 다만 이렇고 이렇도다.

萬千金寶藏    천만금 보물인 대장경도

元是一空紙    원래 하나의 빈 종이로다
              

휴정(休靜)이라는 법명을 얻고 13년간 수도하며 머물렀던 정든 두류산을 떠난 뒤, 승과에 급제하여 大選을 거쳐  禪敎兩宗判事가 된 뒤, 문정왕후의 신임을 받아 왕실 전용 기도처 선교의 종찰 봉은사 주지를 겸직한다. 벼슬과 명리가 출가의 본뜻이 아님을 홀연 깨닫고, 명종 15년(1560년) 나이 41세에 처음 출가 수행하였던 두류산 화개동 골짜기로 다시 돌아온다. 신흥사 뒤편, 신라 때 왕족 거 서한이 세운 허물어져가는 내 은적암을 전국에서 시주를 얻어 2년여 걸쳐 개축하여 淸虛院을 짓고  스스로 호를 淸虛라 하였다. 청허원에서 차를 달여 마시며 많은 저술을 하였는데 '三家龜監'이라는 역작도 이곳에서 집필하였다. 차를 다려 마시며 맑고 허공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시로 읊었다.

 

 內隱寂

 

 頭流有一庵         두류산에 암자가 하나 있으니
 庵名內隱寂         암자의 이름은 내은 적이라.
 山深水亦深         산 깊고 물 또한 깊어
 遊客難尋跡         노니는 선객은 찾아오기 어렵다네.
 東西各有臺         동서에 누대가 있으니
 物窄心不窄         물(物)은 좁아도 마음은 좁지 않다네.
 淸虛一主人         청허라는 한 주인은
 天地爲幕席         천지를 이불 삼아 누웠다네.
 夏日愛松風         여름날 솔바람을 즐기노니
 臥看雲靑白         구름은 청백으로 조화를 부리누나.

                   

頭流山 內隱寂庵

 

有僧五六輩        도반 대여섯이
築室吾庵前        내은 암에 집을 지었네.
晨鐘卽同起        새벽 종소리와 함께 일어나
暮鼓卽同眠        저녁 북소리 울리면 함께 자네.
共汲一澗月        시냇물 속의 달을 함께 퍼다가
煮茶分靑烟        차를 달여 마시니 푸른 연기가 퍼지네.
日日論何事        날마다 무슨 일 골똘히 하는가
念佛及參禪        참선과 염불일세.

  

청허원에 머문 이듬 해인 명종 16년(1561년) 신흥사 주지 옥륜스님과 조연스님이 두 시내가 합쳐지는 곳에 절 앞 냇가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다리의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만들어  리를 놓아 紅流橋라 하였고, 그 홍류교 위에 다섯 칸 높은 누각 凌波閣을 지었다. 凌波란 계곡의 물굽이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모습을 뜻하며, 凌波閣은 속세를 벗어나 도량으로 들어가는 문을 뜻한다. 신흥사 주지 옥륜이 청하여 휴정이 凌波閣記文을 짓게 된다.

휴정은 능파각기문외에 홍류교 능파각에 관한 자신의 감흥을 담은 별도의 시를 남겼다.

  

다리에 걸린 구름 물에 비쳐 흘러가고

산승은 오늘도 무지개를 밟고 섰네

인간사 어지럽기 그 몇 번이련가

세월이 백성을 저버려 늙기도 어렵고녀

 

봄 저문 골짜기에 꽃비 휘날릴 제

달 밝은 하늘 아래 다락은 비어있소

물소리 솔바람은 천년의 음악인데 

만고의 누리에서 한바탕 웃어보세

  

'두류산 신흥사 능파각기'는 문체가 수려한 명문장이기에 번역된 記文을 옮겨 본다

       ( 출처 : '청허당집'   박경훈 譯 )

 

頭流山 信興寺 凌波閣記.

세상에서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 삼신산이 있는데 두류산이 그 하나다라고 한다. 두류산은 우리 동국의 호남과 영남의 두 남방 사이에 있다. 그 산에 절이 있는데 이름을 신흥사라 하고 절이 있는 골짜기는 이름을 화개동이라 한다. 골짜기는 협착해서 마치 사람이 병 속을 드나드는 것과 같다. 동으로 바라보면 蒼漭(창망)한 골짜기가 있으니 청학동이라 푸른 학이 살고,  남으로 바라보면 강 위에 있는 두어 봉우리는 백운산이니 흰 구름이 난다. 골짜기 가운데 한마을이 있어서 네댓 집이 사는데 꽃과 대나무가 어지러이 비치고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린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의관이 순박하고 모발도 예스러우며 생계는 다만 밭 갈기와 우물 파는 것뿐이요, 서로 찾고 만나는 사람은 다만 늙은 스님뿐이다.  골짜기에서 절의 문으로 가려면 남으로 수십 걸음쯤 되며 동. 서의 두 시내가 합해 한 골짜기의 물이 되었다. 맑은 물은 돌에 부딪쳐 굽이치면서 소리를 내는데 놀란 물길이 한번 뒤치면 설화가 어지러이 날리니 참으로 기관이다. 시내의 양쪽 언덕에 돌소 [石牛]와 돌염소[石羊]가 누웠으니 이 물건은 처음 하늘이 험한 곳을 만들면서 반드시 그 靈府를 숨기려 한 것이다. 겨울에 얼음이 얼고 여름에 비가 오면 양쪽 사람이 서로 왕래하지 못하므로 깊이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가정 신유년 여름에 그 산의 德士 玉崙이 道友 祖演에게 부탁하여 시냇가에 누워있는 돌 소와 돌 염소를 채찍질하여 기둥을 만들고 한 층의 긴 다리를 놓았다. 다리 위에는 다섯 칸의 높은 누각을 짓고 붉은빛으로 곱게 단청을 한 뒤에 그 다리 이름을 紅流라 하고 그 누각 이름을 凌波라 하였다. 그 형상됨이 밑으로는 黃龍이 곁에 누워있고 위로는 붉은 鳳이 하늘로 나니, 형세는 端禮(단례)와 黿閣(원각) 같으나張儀(장의)와 龜橋와는 아주 다르다. 산승이 이곳에 이르면 禪定에 이르고 騷客(소객. 떠들소 손님객)이 이르면 시에 고민하고, 도사가 이르면 뼈를 바꾸지 않고 바로 가벼운 바람을 탄다.  그리하여 윤·(崙·演. 옥륜과 조연)의 두 사람은 마음을 먼 하늘에 붙이고 몸을 뜬구름에 맡기어,  때로는 지팡이를 짚고 나와서 그 사이에서 한가히 읊조리기도 하고, 혹은 차를 마시기도 하며, 혹은 기대어 눕기도 하면서 장차 늙음이 오는 줄을 모른다.  또 그 누각됨은 높아서 백 척 위에 올라서 별을 따는 정취가 있고 눈이 천리에 트여 하늘에 오르는 정취가 있고 외로운 따오기와 떨어지는 노을은 藤王閣의 정취가 있으며(등왕각. 초당의 시인 왕발의 등왕각 서문에[떨어지는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난다]는 구절이 있음) 하늘 밖의 삼산은 鳳凰樓의 정취가 있으며, 맑은 내와 꽃다운 물은 黃鶴樓의 정취가 있으며, 떨어진 꽃이 물에 흐름은 도원의 정취가 있고, 가을은 비단에 수놓은 듯한 단풍으로 적벽의 정취가 있으며, 좋은 손님을 맞고 보냄은 虎溪의 정취가 있다. 또 짐을 진 사람이나 짐을 인 사람이나 밭 가는 사람, 고기 낚는 사람, 빨래하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 바람 쏘이는 사람, 시를 읊는 사람······,  그리고 나아가서는 고기를 구경하는 사람이나 달을 감상하는 사람, 누구나 이 누각에 오르면 모두 그 즐거움을 즐기게 되니 이 누각이 사람의 흥취를 돕는 것이 또한 적지 않다.

그뿐이 아니라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나 얼음이 얼고 눈이 올 때에도 물을 건너는 사람의 옷을 걷어 올리는 수고가 없으니 내를 건너게 하는 그 공도또한 크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각 하나가 이루어짐으로써 온갖 즐거움이 갖추어져 있으니 어찌 반드시 현자라야만 이것을 즐긴다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옛날 하늘이 영부를 숨겼던 것을 한탄하였더니 지금 이 두 사람이 구름을 꾸짖고 그것을 열어 내어 드디어 산과 절과 골짜기와 시내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이름을 숨기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維摩詰(유마힐)의 수단을 얻어 이 누각을 넓히어 천 칸 만 칸, 심지어 끝이 없는 칸 수의 큰 집을 만들어 널리 천하 사람들을 두루 수용하게 할 수 있을 건가.

 1564년(명종 19년)   갑자년 봄에 적는다    휴정 씀.

 

  

은은한 화개동 골짜기의 차향을 느끼며 서산대사의 마음의 끝을 쫓는다.

벼슬과 명리가 출가의 본뜻이 아님을 홀연 깨닫고, 초발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삭발 출가하였던 두류산 화개골짜기로 그는 다시 돌아왔다

휴정은 '맑고 빈 허공'같이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허물어진 내 은적암을 개축하여 淸虛院을 짓고,  스스로 호를 '맑고 빈 허공'인 淸虛라 하였다.

  

도반 대여섯이 
내은 암에 집을 지었네.
새벽 종소리와 함께 일어나
저녁 북소리 울리면 함께 자네.
시냇물 속의 달을 함께 퍼다가
차를 달여 마시니 푸른 연기가 퍼지네.
날마다 무슨 일 골똘히 하는가
참선과 염불일세.

 

시냇물 속의 달을 함께 퍼다가

차를 달여 마시니 푸른 연기가 퍼지네

은은한 차향 속에 든다.

집은 좁아도 마음은 좁지 않다네

천지를 이불 삼아 누웠다네

물소리 솔바람 천년의 음악소리 들으며

청허의 마음 끝을 쫓는다.         

  

두류산에 암자가 하나 있으니

암자의 이름은 내은 적이라.
산 깊고 물 또한 깊어
노니는 선객은 찾아오기 어렵다네.
동서에 누대가 있으니
물(物)은 좁아도 마음은 좁지 않다네.
청허라는 한 주인은
천지를 이불 삼아 누웠다네.
여름날 솔바람을 즐기노니
구름은 청백으로 조화를 부리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