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불모산 장유암을 찾아서

2012. 4. 29. 21:36도보여행기/駕洛國의 편린을 찾아서

(8) 불모산 장유암을 찾아서 

        2012. 3.23   흐리고 비

 

05:30 외동에 있는 숙소를 나서니 해가 뜨기 전이라 깜깜하다.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이따금 빗방울이 떨어진다.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장유행 시내버스에 오른다.

한참을 달려 장유면 대청 1교를 지나 갑오마을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부귀를 뜬 구름같이 보고 티끌세상을 초연하여 불모산으로 들어가 장유(長遊)하여 나오지 않으므로 장유화상으로 부르게 된, 아유타국 태자이며

허황옥의 오빠인 허보옥이 창건했다는 장유암을 찾아가는 길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갑오마을 아파트 앞에서 장유암 도로 표식을 따라 1시간 정도 걸으니 대청계곡 입구에 장유암(4.5km) 이정표가 보인다.

입구 빗돌에는

" 이곳으로.....

살다보면 언덕도 있을 거야

어디가 길인지도 모를 수도 있지

힘들 땐 고향풍경이 있는

이곳으로 와요. "라고 새겨져 있다.

 

물레방아를 지나 폭포교를 지난다.

대청계곡을 따라 걷는다.

 

 

 

 

어제 내린 비로 암반 위를 흐르는 대청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하다.

장유폭포가 우렁찬 소리를 내고 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고 있는 노란 생강꽃에 물방울이 맺혀있다.

나뭇가지에는 무수한 구슬을 달아 놓은 듯 물방울이 영롱하게 반짝인다.

싱그러운 빛을 발하는 푸른 댓잎.

찌르르 산새 소리가 들린다.

대청계곡

 

 

장유폭포

 

 

 

 

낙남정맥과 신낙남정맥이 갈라지는 곳 불모산.

용지봉 기슭 장유암은 운무에 싸여 있다.

수도꼭지를 틀어 샘물을 조롱박에 받아 몇 번이나 마신다.

대웅전 법당에 들어 부처님께 삼배한다.

돌계단을 오르니 서책에 둘러싸인'장유화상사리탑이' 보인다.

푸른 이끼를 매단 고색창연한 모습이다.

가락국 수로왕의 처남인 장유화상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석조팔각사리탑은, 가락국 제8대 질지 와(451-492) 때 장유암을 재건하면서 세워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1,500여 년의 오랜 세월 여러 번의 전란으로 암자와  관계 유물은 거의 소실되었다.

지금의 사리탑은 그 제작 수법으로 보아 고려말이나 조선초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옆으로 '駕洛國師長遊和尙紀蹟碑'가 보이고, 나무 뒤로 두 기의 비석이 보인다. 

 

이 장유화상기적비에는,

"화상의 성은 허 씨이며 이름은 보옥이니 아유타국 임금의 아들이다. 가락국 시조 수로왕이 건국 7년(48년)에 보주태후 허 씨인 아유타국 공주를 맞이하여 하늘이 지어준 배필로 삼았다. 바다를 건너올 때 탑(파사석탑)이 바람을 진압하였고 수십 인의 승선남녀 등 일행을 감호한 이는 곧 화상이니 태후의 아우이다. 화상은 황후의 친족이나 부귀를 뜬 구름같이 보고 티끌 세상에 초연하여 불모산으로 들어가 장유하여 나오지 않았으므로 세상에서 장유화상(長遊和尙)이라고 하였다. 만년에 가락의 7 왕자와 함께 방장산으로 들어가 부처가 되었으니 지금의 하동군 칠불암이 그 터이다. 질지 왕대에 이르러 장유암을 세우고 화상의 진영을 칠성각에 모셨다고 한다.”라고 새겨져 있다.

 

사리탑 앞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운무만 가득하다.

대웅전 용마루에는 두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을 향하고 있다.

운무 속의 까만 나뭇가지와 희미한 겹겹의 산능선을 바라본다.

 

귀를 뜬 구름같이 보고 티끌 세상에 초연하여 불모산 이곳으로 들어와 수행정진하며 나가지 않았던 허보옥(許寶玉)을 생각한다.

대웅전 처마 밑의 물고기는 운무 속을 유영하고 있다.

바람소리

풍경 소리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절 마당에 깔린 자잘한 돌 위로 내리는 빗소리

 

 경봉스님이 적음(寂音) 스님에게 보낸 편지글이 생각난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대숲 흔드는 소리, 아~ 귀를 간질이는 이슬 구르는 소리, 이 모두가 다 적음(寂音)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복잡한 삶에 이 애끓는 소리를 듣는 이 있으니, 그대 얼마나 행복한가…”

향성(香聲)!

귓가를 맴도는 향기 나는 소리 

운무에 가려진 산 능선을 망연히 바라본다.

 

 山  房

조 지 훈

 

닫힌 사립에

꽃잎이 떨리노니

 

구름에 싸인 집이

물소리도 스미노라.

 

단비 맞고 난초잎은

새삼 치운데

 

볕바른 미닫이를

꿀벌이 스쳐간다.

 

바위는 제자리에

옴찍 않노니

 

푸른 이끼 입음이

자랑 스러라.

 

아스럼 흔들리는

소소리바람

 

고사리 새순이

도르르 말린다.

사천왕문과 범종루

 

장유암 전경

 

대웅전

 

장유화상 기적비와 사리탑 전경

 

장유화상 사리탑

 

가 락국사장유화상기적비

 

삼성각

 

 

용마루에는 두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고 있다.

 

 

 

 

풍경

 

하산길은 운이 좋게도 장유암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대청봉 계곡 입구까지 내려온다.

비가 오락가락한다.

대청봉 계곡 입구 임시정류장에서 창원행 버스를 1시간여 기다려 버스에 탑승하여 불모산터널을 지난다.

조금 달려 남산시외버스정류소 맞은편 정류장에 하차하니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길을 건너 남산시외버스정류장 앞에서 용원행 시내버스에 오른다.

진해시 용원동 버스 종점에 하차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해안가 옆 유주정에 앉아 망산도를 바라본다.

돌덩이만 덩그렇게 쌓여 있는 전설의 섬 망산도(望山島)

거북등처럼 갈라진 돌덩이가 신비스럽게 보인다.

큰 바위 한쪽 끝에는 '望山島'라고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의하면 수로왕이 왕이 된 지 7년이 지나도록 왕비가 없어 신하들이 왕비를 맞이할 것을 청하였는데, 수로왕은 왕비는 하늘이 정해줄 것이라고 말하고 유천 간(留天干)을 현 진해시 용원동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으로 보내 기다리게 했는데, 그 섬이 지금의망산도(望山島)이다. 허황옥 일행이 타고 온 돌 배가 바닷속에서 뒤집혔는데, 이곳 망산도에서 동북쪽으로 70m쯤 되는 곳에 있는 바위섬인 유주암(維舟巖)이라고 한다.

 

망산도 주변은 모두 매립되어 공단과 시가지로 변하였다.

역사적인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다행히 망산도는 매립되지 않고 바다와 통하고 있다.

유주정에 앉아 비 내리는 망산도와 시꺼먼 뻘을 무연히 바라본다.

신부산항 저 너머 먼바다에서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허황옥이 탄 배가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가야여 없는 듯 있어온 뜨거운 핏줄이여    

이 현 우

 

 전설로 묻혀버린 세월 속에서 그 이름만 홀로 남아
 가야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찾는 이 하나 없던 천 오백 년 하늘과 땅
 푸른 신명 찬란한 빛 모두 가린 채
 산천도 사람도 제 모습 잃었구나.
 구지봉, 봉황대, 망산도를 내려와
 바람 불면 흩어지고 눈 내리면 지워져
 알 수 없는 먼 길을 걸어왔구나.
 그러나 오늘은 새 천 년 새 날
 오래된 미래의 문을 여는 날
 너를 품어 키웠던 낙동강 가에
 형제처럼 모여 앉은 마을을 본다.
 역사는 언제나 거기 있는 것
 문화는 그네들과 함께 하는 것
 가야여, 없는 듯 있어온 뜨거운 핏줄이여
 오리형 토기조각 기마 인물상
 한 줌 흙 풀뿌리도 네 넋을 받아
 눈빛이며 숨결이며 실핏줄 한 올까지
 살아서 활짝 핀 생명이기를
 우리 곁에 환히 웃는 얼굴이기를.

 

그치지 않는 비로 인하여 오늘 답사여행은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오후 3시 용원동에 있는 숙소에 일찍 들어 짐을 푼다.

 

望山島, 교각 앞에 유주암이 보인다.

 

 

유주정

 

망산도 전경

 

거북등처럼 갈라진 돌덩이

 

거북이 형상의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