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

2009. 7. 11. 23:45좋은 글/좋은 글

걷기 예찬

바디드 르 브르통 산문집 / 김화영 옮김 David Le Breton  “Eloge de la marche”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걷는다는 것을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숲이나 길, 혹은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 세상이 지워주는 늘어만 가는 의무들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되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9)

 

걷는 동안 여행자는 자신에 대하여, 자신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하여, 혹은 자신과 타인들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하게 되고 뜻하지 않은 수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바쁜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가로이 걷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시간과 장소의 향유인 보행은 현대성으로부터의 도피요 비웃음이다. 걷기는 미친 듯한 리듬을 타고 돌아가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질러가는 지름길이요 거리를 유지하기에 알맞은 방식이다. (14, 15)

 

스티븐슨이 생각하기에 ‘전정한 걷기 애호가는 구경거리를 찾아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기분을 찾아서 여행한다’ (21)

 

루소에게 있어서 걷기는 고독한 것이며 자유의 경험, 관찰과 몽상의 무궁무진한 원천, 뜻하지 않는 만남과 예기치 않은 놀라움이 가득한 길을 행복하게 즐기는 행위다. 젊은 시절의 토리노 여행을 추억하면서 루소는 걷기의 향수와 행복을 말한다. ‘나는 내 일생 동안 그 여행에 바친 칠필 일 간만큼 일체의 걱정과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틈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그 추억은 그 여행과 관련된 모든 것, 특히 산들과 도보여행에 대한 가장 생생한 맛을 내게 남겨놓았다. 나는 오직 행복한 날에만 늘 감미로운 기쁨을 만끽하며 걸어서 여행했다. 머지않아 온갖 책무들, 볼일, 들고 가야 할 짐보따리 때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점잔을 빼면서 자동차를 타야 했다. 전과 달리 그때부터 내가 여행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가는 기쁨과 도착하는 기쁨뿐이었다. 스위스의 소로투른에서 파리로 가면서 청년 루소는 중요한 것이라곤 오직 존재하는 것뿐인 이 완벽한 순간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 이 여행에는 보름이 걸렸는데 나는 이때를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로 꼽을 수 있다. 나는 젊었고 건강했으며 돈도 충분히 있었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나는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도보로, 그것도 혼자서 여행하는 것이었다……여러 가지 감미로운 공상들이 나의 동행이 되어주고 있었다. 내 뜨거운 상상력이 내게 이처럼 멋진 공상들을 안겨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나는 한 번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며 이렇게 뿌듯하게 존재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때 혼자 걸어가면서 했던 생각들과 존재들 속에서만큼 나 자신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3, 24)

 

걷기는 집의 반대다. 걷기는 어떤 거처를 향유하는 것의 반대다. 우연히 내딛는 걸음걸음이 인간을 과객으로, 길 저 너머의 나그네로 변모시키기 때문이다. 그를 걷잡을 수 없는 인간으로, 집도 절도 없는 인간으로, 구두밑창이 닳도록 어느새 저만큼 떠나버린 인간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바로 그가 저녁마다 잠자는 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여기 혹은 저기에 존재한다는 것은 실처럼 뻗어간 길, 고저장단으로 변화하는 곡선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 사실 걷는 사람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다가 거처를 정한다. 저녁에 멈추는 발걸음, 밤의 휴식, 그리고 식사는 매일같이 새롭게 달라지는 거처를 체험적 시간 속에 새겨놓는다. 걷는 사람은 시간을 제 것으로 장악하므로 시간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 숱한 여러 가지 다른 수단들을 다 버리고 바로 이런 이동수단을 택함으로써 그는 달력의 시간과 맞서서 자신의 양보할 수 없는 권능을, 사회적 리듬에 맞서서 자신의 독립성을 앞세운다. 그리하여 길가에서 등에 진 배낭을 벗어놓고 달콤한 낮잠을 즐기거나 돌연 마음을 흔들어놓는 한 그루 나무나 어떤 풍경을 음미하거나 또는 운 좋게 목격하게 된 어떤 지역의 풍습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33)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누구에게 무엇을 보고해야 할 의무 같은 것은 없는 자유인이다. 그야말로 기회와 가능성의 인간이요, 흘러가는 시간의 예술, 길을 따라가며 수많은 발견을 축적하는 변화무쌍한 상황의 나그네다. (35)

 

스티븐슨은 대번에 보행자에게 왜 고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이론을 내놓는다. ‘도보로 산책하는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혼자여야 한다. 단체로, 심지어 둘이서 하는 산책은 이름뿐인 산책이 되고 만다. 그것은 산책이 아니라 오히려 피크닉에 속하는 것이다. 도보로 하는 산책은 반드시 혼자 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가 그 내재적 속성이기 때문이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멈추거나 계속하여 가거나 이쪽으로 가거나 저쪽으로 가거나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걷기 챔피언 옆에서 뛰다시피 따라 걷거나 데이트하는 처녀와 함께 느릿느릿 걷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보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50)

 

빅토르 세갈렌…..’ 남다르고 각별한 경험을 하는 데는 자기만의 견고한 정체성이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다. 이러한 규칙에 수반되는 약간 의외의 귀결은 바로 혼자서 여행하는 편이 낫다는 사실이다. 둘이서 여행하게 되면 벌써 동일한 경험을 나누어 가지기 위하여 자신이 어느 한몫을 포기하게 되며 그리하여 목표에 다가갈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때 목표란 바로 세상에서 제일 친한 두 친구의 여행에서 얻는 결론, 즉 여행은 혼자서 하라는 교훈 바로 그것이다.’ (50, 51)

 

소로는 처음부터 생각이 뚜렷하다. 그는 이렇게 쓴다. ‘확신하거니와, 내가 만약 산책의 동반자를 찾는다면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는 어떤 내밀함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 결과 나의 산책은 분명 더 진부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취미는 자연을 멀리함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산책함으로써 얻게 되는 저 심오하고 신비한 그 무엇과는 작별인 것이다.’ (51)

 

해즐리트(William Hazlitt)…..’ 방 안에 있을 때는 나도 남과 어울려지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일단 밖에 나서면 자연만으로 충분하다. 내가 혼자일 적만큼 덜 외로울 때는 없는 것이다. 나는 걸으면서 동시에 말을 하는 것이 지성의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들판에 나가면 들처럼 식물이 되어 지내고 싶다. (51)

 

아름다움은 민주적인 것이어서 만인에게 주어진다. 지극히 아름다운 곳들은 수없이 많다. 심지어 같은 날, 같은 산책에서 경이로운 일이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여 나타나서 어떤 배경, 분위기, 풍경, 소리, 얼굴을 남긴다. 보행은 세계의 희열을 향한 자기 개방이다. 그것이 내면적인 휴지와 평정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변환경과 몸으로 만나는 일이므로 우리는 여러 장소의 감각적 조건에 끊임없이, 거리낌 없이 자신을 맡기게 된다. (115)

 

세상에 대한 지식을 무한히 넓히기 위해서도 길이 필요하다. 아스팔트에는 역사도 없고 이야기도 없다. 심지어 그 위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해도 자동차들은 그곳에 아무런 기억의 자취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버린다. 자동차는 장소와 역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풍경을 칼처럼 자르고 지나간다. 자동차 운전자는 망각의 인간이다. 풍경이 차의 앞 유리창 너머 멀리서 휙휙 지나갈 뿐이므로 길에 대한 감각적 마취 혹은 최면상태에 빠져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다만 엄청나게 커진 눈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길을 가다가 멈출 여유가 없다. 그는 바쁜 사람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걷는 사람은 전신의 감각을 열어놓고 몸을 맡긴 채 더듬어가는 행로와 살아 있는 관계를 맺는 가운데 매 순간 발밑에 밟히는 땅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거쳐 가는 길 위의 숱한 사건들을 골고루 기억한다. 물론 길가의 산세가 아름답다고 해서 너무나 열중해서 감상하다 보면 다른 보행자와 충돌할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121, 122)

 

다른 곳으로부터 와서 그저 비껴지나가는 것뿐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의 굳게 닫혔던 입이 열리고 즉각적인 접촉이 더 쉬워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어서 기껏해야 몇 시간 뒤면 저마다 멀리 떠나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만남이 더욱 용이해지는 것이다. (135)

 

글쓰기는 길을 가는 동안 수집한 수많은 사건들의 기억, 숱한 감동들, 그리고 느낀 인상들이다. 그것은 여행자가 시간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그 시간을 공책의 페이지들로 탈바꿈시켜 가지고 나중에 향수에 젖으며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보는 방식, 텍스트 여기저기에 점철된 수천수만 가지의 표적들 덕분으로 그 시간을 추체험하는 한 방식이다. 기억이란 그것대로 한계를 가진 것이기에 우리는 걷는 동안 경험한 것들 중에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것들의 전체는 우리들 앞에 보잘것없는 몇 토막이 남았을 뿐인 기록의 합에 비긴다면 어지러울 정도로 그 수가 많은 것이다. 길을 가면서 일기를 쓰게 되면 그때의 우여곡절들을 규칙적으로 기록하고 또 더듬어온 길들을 회상해 보거나 과거의 에피소드들을 상기해 보기 위한 독서에 바쳤던 노력 덕분에 그 도보여행은 그만큼 더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는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상상이 실제 경험과 뒤섞이고 간결하게 기록한 몇몇 문장들에서는 실제로 표현된 것 이상의 암시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글 속에는 여행으로부터 축적된 수많은 이미지가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140, 141)

 

카잔차키스……’ 나는 노랗게 바랜 여행수첩을 뒤적여본다. 그러니까 어느 것 하나 죽어 없어진 것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제 이렇게 그 모든 것이 깨어나서 반쯤 지워진 해묵은 페이지들로부터 솟아올라 다시 수도원이 되고 수도사가 되고 그림들과 바다가 되다니! 그리하여 나의 친구도 그때의 아름답던 모습 그대로, 꽃다운 청춘의 모습 그대로, 독수리 같은 푸른 눈으로 시가 가득한 가슴으로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땅속에서 다시 솟아오른다. (142)

 

도시인은 침묵이 지배하는 공간에서는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그는 침묵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얼른 큰 소리로 말을 하거나 자동차의 라디오나 시디 음악을 켜서 안도감을 주는 소리를 추가하고 누구에게 건 휴대전화를 걸어서 자기의 존재를 확인받고자 한다. 소음에 길이 든 사람들에게 고요한 침묵의 세계는 결국 표적이 사라진 불안의 세계가 되고 만다. 갑자기 떠들썩한 소리가 딱 그쳐버리면 기분이 으스스해지기 쉽다. (213)

 

긷기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을 털어낸다. 걷기는 세계를 사물들의 충일함 속에서 생각하도록 인도해 주고 인간에게 그가 처한 조건의 비참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걷는 사람은 개인적 영성의 순례자이며 그는 걷기를 통해서 경건함과 겸허함, 인내를 배운다. 길을 걷는 것은 장소의 정령에게, 자신의 주위에 펼쳐진 세계의 무한함에 바치는 끝없는 기도의 한 형식이다. (237)

 

길을 걷는 것은 때로는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걷다 보면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여유가 생기게 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걷는 것에 의해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트이고 추억들이 해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걷는 것은 죽음, 향수, 슬픔과 그리 멀지 않다. 한 그루 나무, 집 한 채, 어떤 강이나 개울, 때로는 오솔길 모퉁이에서 마주친 어느 늙어버린 얼굴로 인하여 걸음은 잠들어 있던 시간을 깨워 일으킨다. (255)

 

우리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만들고 해체한다. 여행이 우리를 창조한다.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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