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를 보게 하소서

2009. 6. 18. 14:15도보여행기/국토종단 길에 오르다

나를 보게 하소서

 2009.5.15.  금요일  흐림

 

04 : 10분 숙소를 나서니 깜깜하다.

어제 왔던 길을 되짚어 농로를 걸어 용문천 둑길로 올라서서 걷는다.

반암교를 건너 덕림리에 다다르니 보성강과 만난다.

용지교를 건너 895번 도로를 따라 겸백을 향하여 걸어간다.

여명의 석호마을은 파르스름한 들 풍경이 아름답고.

물이 흥근한 논 물 속의 실루엣도 아름답다.

 

 

 

보성강이 파르스름하게 보인다. 

도로 양옆의 가로수는 이팝나무다. 

하얀 이팝꽃이 활짝 피어 있다.

들길에 피어 있는 엉겅퀴를 촬영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야생화다.

이팝나무 길 따라 걷다 보니 가장교 앞이다.

마을사람 한 분을 만나 "안녕하세요, 이 근처에 음식점이 어디 있는지요?" 하고 물으니,

"의사요? 아침은 먹고 댕겨야재. 잠은 어디서 잤어요?"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다.

가장교를 건너면 겸백인데 거기에 음식점이 있단다.

가장교를 건너가니 이른 새벽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다시 되짚어 가장교를 건너 우측 895번 도로 길을 잡는다.

복내에 가서 식사하기로 하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보성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운림마을을 지난다.

큰 앵두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앵두가 달려 있다.

 

복내 인공습지를 지나니, 복내 사거리다.

우선 약국을 찾아 탈지면과 소독약. 밴드를 구입하고 물집에는 무슨 약을 발라야 좋은지 물으니, 후시딘이라 한다.

비빔밥 전문집에 들어가 육회비빔밥을 주문한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20km 남아 있는데, 발가락 통증으로 걷기가 몹시 힘들다.

주암 조각공원까지 버스를 이용할까 생각하고 버스정류장 버스시간등을 주인에게 묻고 있으려니,

옆에서 식사하던 분이 문덕까지는 차를 태워줄 수 있다고 한다.

발을 더 악화시켜 중도에 여행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덕까지 6km를 신세 지기로 한다.

트럭에 합승하니 휑하니 달려 문덕에 내려주고 차는 사라진다.

 

쉬었다 걸으니 통증은 더욱 심하다.

문덕에서 주암조각공원까지의 길이 왜 그리도 멀게 느껴지는지 고개 길을 넘고 또 넘는다.

서재필선생 기념공원에 들려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민박처를 알아보니 용암리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지도를 보니 죽산교를 건너면 모텔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주암조각공원에서 문덕교까지의 길은 갓길도 없는 구불구불한 도보로 걷기에는 위험천만한 길이다.

교통량도 많고 덤프트럭이 수 없이 오간다. 

조심조심 걸어 문덕교를 지나고 죽산교를 지나가보니, 모텔은 없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한 흉물스러운 건물만 하나 있다. 

잔뜩 찌푸린 날씨는 금방 비라도 쏟아 질 것 같다.

가끔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대원사 가는 길 죽산리에는 민박집이 많은 것으로 지도에 나와 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대원사에서 템플스테이 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이곳 죽산교에서 대원사까지 5km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든  "왕벚나무 터널" 길이다.

 

 

 

왕벚나무가 도열해 서 있는 길을 걷는다. 

길 옆으로는 천봉산에서 흘러 내리는 죽산천이 흐르고 있다.

 

 

 

 보성군립백민미술관을 지난다.

죽산천 수변생태습지에는 연못가득 노랑꽃창포가  활짝 피어 있다.

노랑어리연꽃은 보이지 않고 흰 수련만 군데군데 보인다.

 

 

 

왕벚나무 따라 걷는다. 

죽산천 따라 걷는다. 

발통증으로 인하여 가시밭길을 걷는 듯한 걸음을 떼어 놓는다.

천봉산 대원사에 도착하니 오후 4시 55분이다.

 

종무소에 들어가,  눈 맑은 젊은 스님에게 일박을 청하니 쾌히 응락한다.

절차를 마치고 오늘 묵을 방으로 안내해 주고 공양시간 세면실 등을 소상히 설명해 준다.

대원사 템플스테이 " 나를 보게 하소서 " 현수막이 걸려있는 "천봉선원 선정실"이 오늘 묵어갈 방이다.

방에 들어가 배낭을 푼다.

방안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한 벽면에 대나무로 만든 옷걸이가 소박하고 정갈해 보인다.

어릴 적 고향 시골에서는 '횟대'라고 불렀었는데,  옛날 추억을 떠 올리게 한다.

 

횟대

 

                                                             

우선 세면실에 가서 몸을 씻은 후,  발가락과 발바닥 물집을 터뜨리고 소독하고 약 바르고 밴드를 붙인다.

저녁 공양시간이 되니  한 처사가 툇마루로 나와 목탁을 친다.

목탁소리 나는 곳이 공양실이다.

저녁 공양을 마치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천봉선원 툇마루에서 맞은편에 묵고 있는 한 처사를 만나,

" 내일 일기 예보 들어보셨어요?" 하고 물으니

" 저는 텔레비전을 안 보고 사는 사람이라 모르는데요."

" 테레비를 안보고 어떻게 사십니까? 그런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인지요? "

" 테레비를 안보고 살다 보면 그렇게 살아져요.  절에서 살았어요. 어떤 때는 스님이 안 계신 깊은 산속 암자에서도 몇 해 산적도 있는데요."

" --- "

 

방으로 돌아와  너무도 피곤하여 자리에 눕는다.

내일에 대한 일은 내일 일어나서 생각하기로 한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범종소리가 들린다. 

저녁 예불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걷기가 불편하다.

 

비바람 소리와 처마 끝 풍경소리를 들으며 잠 속으로 빠져 든다.

 

 

오늘 걸은 길 : 석문마을-용문천 둑길-반암교-용지교-석호마을-겸백-평호리-운림리-복내

                      문덕-주암조각공원-문덕교-죽산교-대원사

금일 보행거리 : 33km

 

 2009.5.16  토요일 하루종일 비

 

창문을 때리는 비바람 소리에 눈을 뜨고  방문을 열어 보니, 깜깜한 어둠 속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다.

처마 끝 풍경이 '쟁그렁 쟁그렁'  깨질 듯하다.

"하루 더 묵어가야 되겠다 "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원래부터 템플스테이를 하고 싶었고, 비도 억수 같이 오고, 또 발을 치료하기 위해 쉬어야 하는 불가피한 이유

가 있기에(물집은 보통 2일 정도만 걷지 않고 휴식하면 거의 낫는다 )

 

아침 공양이다.

녹두죽이다.

이곳 대원사 공양주의 음식 솜씨는 맛깔스럽고 정갈하다.

공양실 벽에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 있다.

 

" 밥 "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먹어라

 

봄에서 한여름 가을까지

 

그 여러 날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 아닌가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 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움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야

 

 

 

비가 잦아들어 우의를 입고 경내를 걸어 수미광명탑과 티베트박물관을 향하여 걸어간다.

종무실 앞에서 기와불사를 한다.

시주한 후 주소와 가족 이름을 쓰고 마지막으로 "소원성취 "라고 적는다.

 

티베트박물관은 1000여 점의 티베트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른 시간이라 아직 개관하지 않았다.

건물을 돌며 벽화를 본다.

천봉산은 운무에 가득 묻어 있다.

 

 

 

 

 

죽산천 계곡을 건너니, 때죽나무에 흰 꽃이 조발조발 매달려 가득 피어있다.

들꽃을 보며 걷다 보니 천봉산 등산로 입구 푯말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등로를 따라 오른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발 치료를 위해 묵고 있는데 무리하면 안 된다 싶어 등산을 포기하고 돌아서 경내로 돌아온다.

 

대원사는 7개의 연못에 수련과 연꽃을 기르고 있고  또한 수생식물도 기르고 있다.

사철나무 연인목에는 왕목탁과 왕염주가 걸려 있다.

또한 화단에는 기화요초가 자라고 있다.

 

사철나무 연인목에 걸려 있는 왕목탁과 염주

 

                                       

 "진리의 길을  걸어간 부처님의 모습을 상징하는  부처님 발자국(佛足跡)을 새긴 불족석(佛足石)과

극락전 사이에는 연꽃을 기르는 대야가 즐비하다.

 

불족석(佛足石)

 

                                                           

 연꽃 다라이 중 하나에 나의 눈이 머문다.

" 2000년 전의 연꽃" 대하연(大賀蓮) 푯말이다.

 

 

  

대하연(大賀蓮)의 손자 연( 蓮) )

 

                                

"1951년 일본 지바현의 지질 학자인 다이까박사가 지표조사 중 2000년 전의 지층에서 연꽃 씨앗 3개를 발견하였다.

그중 2개가 싹이 터서 육종에 성공하였다.

다이까박사의 이름을 딴 '대하연'은 세계 각국의 수생식물원에 보내졌는데 현재 대원사에는 대하연의 손자 연이 자라고 있다. 

연꽃의 씨앗은 물에 떨어져도 썩지 않고 싹이 트지 않는다.

1000년, 2000년, 3000년까지 보존되는 꽃이 연꽃의 씨앗 석련자이다.

연꽃의 씨앗이 싹트기 위해서는 제 몸이 깨져야 한다.

그래서 연 씨를 발아시킬 때는 시멘트바닥에 한쪽을 갈아서 속살이 나오게 해서 심는 것이다.

연꽃은 우리들에게 삶의 고통과 불행을 깨달음의 지혜로 바뀌어져야 한다고 소리 없이 말한다." / 대원사 

 

허리를 굽혀 '대하연' 손자 연꽃을 촬영하고 일어서니 스님이 계신다.

" 저 대야 속의 연꽃은 겨울에는 어떻게 보관하는지요? "

" 연꽃은 겨울에도 그냥 그대로 두는 겁니다. "

" --- "

 

연꽃의 지혜  /  대원사

 

"연꽃은 우리 몸 안의 에너지센터(챠크라)를 나타내는 성스러운 꽃이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백련을 ‘라지브’라고 하는데 그 뜻은 ‘신神을 낳는 어머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첫째, 종자불실種子不失
씨앗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연꽃의 씨앗은 500년, 1000년, 3000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보존되다가 조건이 주어지면 다시 싹이 튼다.

삼세인과의 법칙을 생각하게 한다.

둘째, 처염상정處染常淨
더러운 물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연꽃은 물의 오염물질을 흡수하여 양분으로 삼고 산소를 내뿜어 물을 정화한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염된 세상을 맑히고 향기로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는 뜻이다.

셋째, 화과동시花果同時
꽃이 지면 열매가 맺지만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힌다.

 

그것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이웃들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심을 없애고 자비심을 키워서 모든 이웃을 위해 사는 일이

바로 깨달음의 삶이라는 것을 연꽃은 말하고 있다.

연꽃과 수련은 그릇에 따라 자기의 잎과 꽃을 맞춘다.
그릇이 작으면 작게 피고 큰 그릇에 옮겨주면 잎과 꽃도 크게 자라다가 큰 방죽에 넣어주면 방죽을 가득 채워 버린다.

연 씨는 스스로 싹트지 않고 반드시 제 몸에 상처를 받아야 싹이 튼다.

아픔으로 성숙해지는 사람처럼...

연꽃은 저녁에 오므렸다가 아침에 다시 피어나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부활과 영생의 상징으로 무덤천장을 연꽃문양으로 장식하였다.

은 꽃의 아름다움과 함께 중요한 식량이자 약초구실을 했다.

연뿌리는 자양강정제와 식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연잎은 갈아서 칼국수를 만들고 물에 불린 찹쌀을 연잎에 싸서 중탕하면 향기로운 연밥이 된다.

연잎을 찧어서 바르면 지혈, 야뇨증, 지네해독에 쓰인다. 생 연뿌리는 폐결핵, 각혈, 코피 멎는데 쓰인다.

그리고 찹쌀을 켜켜로 넣어서 익혀 빚은 연엽주蓮葉酒는 우리의 향기로운 민속주였다.

갓 피어난 연꽃 속에 차 잎을 넣고 연잎이 오므릴 때 은박지에 싸서 냉동보관 했다가 차모임에 내면 가장 품격 높은 ‘연차蓮茶’를 맛볼 수 있다. "

 

 

비는 오락가락 계속 내리고 있다.

극락전 옆길로 들어서 성모각으로 간다.

이곳은 단군의 어머니 웅녀를 보신 전각이다.

 

바르도의 길을 걷는다.

죽음을 관하는 곳 수관정이 나타난다.

 

 

 

 

 

 

   

대나무 숲 오솔길을 걸어간다.

 

 

 

신라 왕자의 신분으로 홀홀 중국으로 건너가 구화산에서 75년을 수행하며 구도의 삶을 살다 99세에 열반하셨다. 

지장보살로 추앙받는 육신보살이며 등신불이신 김교각 스님 김지장전에 참배한다.

스님이 중국으로 갈 때 신라에서 가지고 갔던 금지차 종자를 구화산에서 다시 구해와 현재 김지장전 주변에서 기르고 있다 한다.

 

이곳 대원사에는 '나무의 노래'가 있다.

경기. 좋은 글. 지혜의 글들을 아름답게 써서 나무에 걸어 놓았다.

이 글들은 곧 법문이다.

 

사시예불에 참석해 예불을 드린다.

 

천봉선원 툇마루에 앉아 비를 맞고 있는 금종루와 대웅전을 바라본다.

찬불가가 은은히 경내를 흐르고 있다.

 

종무소에 가서  젊은 스님에게 하루 더 묵어 갈 것을 청하니 쾌히 응락하고, 어제 묵은 방을 계속 사용하겠느냐고 묻는다.

오후에 대학생 6명이 템플스테이 하기 위해 천봉선원 선정실 옆방에 입소한다.

미국인 여학생도 끼여 있다.

방에 들어 가만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왁자지껄 소란스럽다.

 

저녁 예불 범종 소리가 여울진다.

가슴에도 종소리가 여울진다.

 

밤이 되니 개구리울음소리가 진동한다.

내일도 계속 비가 온다는 것인가?  

 

대원사 해우소에  앉으면 다음과 같은 글이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 있네

탐. 진. 치 삼독도 이 같이 버려

한 순간도 허물이 없게 하리라.

씻고 또 씻으니 몸도 없고

밝히고 또 밝히니 마음도 없네

몸도 마음도 거품 같거니

무엇을 버리고 무얼 버리랴. "

 

비바람 소리와 풍경 소리를 듣는다.

방에 비치된 효봉스님 책을 읽는다.

대원사의 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사람들이 짓는 많고 많은 죄업 중에 가장 큰 죄는 ' 내가 나를 모르는 죄'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얽어매는 욕망과 번뇌의 족쇄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합니다.

무거운 짐을 내리고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지혜를 키우고 자비심을 키워 삶을 복되게 하는 일 "  

 

 " 나를 보게 하소서 "

 

 

오늘 걸은 길   :  대원사 경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