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혼자 먼 재미로 댕긴대요

2009. 6. 18. 09:22도보여행기/국토종단 길에 오르다

혼자 먼 재미로 댕긴대요

 2009.5.13. 수요일  맑음

 

07 :30분 발 강진행 고속버스에서 탑승하여 4시간 30분 걸린, 12 : 00시 강진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날씨는 화창하다.

강렬한 뙤약볓이 아스팔트 위에 내려 꽂히고 있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김영랑시인 생가 쪽으로 향하고 있다.

장광과 모란꽃이 보고 싶다.

영랑생가 장광 앞에는  시비,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 가 서 있다.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 오-매 단풍 들겠네."

 

장광에 골 붙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 오-매 단풍 들겠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다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 오-매 단풍 들겠네."

 

 

장광 옆 감나무에 붉게 물드는 감 잎을 바라보며 가을을 감동하는 누이의 맑은 심성과, 홍조를 띤 빛나는 얼굴과

맑은 눈이 보이는 듯하다.

반면에, 바람이 불고 추워지기 전에 추석에 해야 할 일을 걱정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자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는 떨어지는 붉은 감잎을 보며 누이와 함께 가을의 감동에 빠진다.

 

장광 옆 모란꽃은 이미 뚝뚝 떨어져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인 모양이다.

모란은 자취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군데군데 씨방이 보인다. 

저 씨방은 이제 나날이 영글어 갈 것이다.

담장 옆 돈나무에는 하얀 꽃이 활짝 피어 있다.

 

김밥집에 들러 간단히 요기하고, 탐진강이 강진만으로 들어가는 곳 목리교를 향하여 걸어간다.

탐진강은 영암군 장흥군 강진군을 흘러 남해 강진만으로 흘러드는 길이 56km의 강이다.

 

목리교를 건너서 바로 둑길로 내려서서 걸어간다.

뚝방 길 따라 들꽃들이 피어 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들꽃들도 바람결에 살랑인다.

뚝길 아래로 강변길이 보인다. 

아래로 내려가 걷는다.

갈대숲에서 온갖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개구리소리, 새소리, 맹꽁이소리, 갈대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길을 떠날 때 / 이해인

 

길을 떠날 때면 처음으로 빛을 보는 나비가 된다.

바람따라 떠다니는 한숨 같은 민들레 씨

내일 향한 소리 없는 사라짐을 본다.

여행길에 오르면 내가 아직 살아있는 기쁨을 수없이 감사하고

서서히 죽어 가는 슬픔을 또한 감사한다

山, 나무, 江에게 손을 흔들며

나는 들꽃처럼 숨어 피는 이웃을 생각한다.

숨어서도 향기로운 착한 이웃들에게 다정한 목례를 보낸다.

                               

 

탐진강을 따라 걷는다. 

구름 따라 걷는다.  

그저 걸을 뿐이다.

 

석교교를 건너 둑길과 강변 갈대와 억새가 우거진 잡초길을 걸어간다. 

 

 

2번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 육교가 있다. 

육교를 넘어 풍동리로 향한다.

멀리 산기슭 아래로 큰 불상이 보인다.

세계불교 미륵대종 총본산  '화방산 남미륵사' 일주문을 들어선다. 불두화가 하얗게 탐스럽게 피어 있다.

이 절은 중국식 절 모습을 갖추고 있다.

중국에서 제작하여 모셨다는 아미타황동대 불은 높이 36M의 동양 최대라고 한다.

그 앞으론 33층 석탑이 까맣게 솟아 있다.

 

 

 

 

 

농로를 걸어 명암마을과 송암리를 거쳐 장흥읍으로 들어선다.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  '한라국밥' 집에서 소국밥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탐진강을 건너 장흥읍내에 숙소를 정하고 배낭을 푼다.

 

오늘 걸은 길 : 강진읍-목리교-둑길-석교교-둑. 강변길-풍동리-송암리 -장흥읍

금일 보행거리 : 21km

 

2009.5.14  목요일  맑음

 

04 :45분 숙소를 나선다.

상리를 지나니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노랑꽃창포와 붉은 작약이 들길에 활짝 피어 반기고 있다.

물이 흥근한 논에 사자산이 아름답게 비추이고 있다.  

사자산 뒤가 붉게 물들어 오고 있다.

 

 

 

장승이 도열하여 서 있는 길을 걸어 신기마을을 지나 제암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새끼발가락이 아픈 관계로 사자산 넘는 먼 길을 선택하지 않고 곰재를 넘기로 하고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철쭉꽃이 드문드문 보인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 오른다.

모든 생물은 공생공영이다.

꿀을 주면 열매를 맺게 해 준다.

허리를 굽혀 기웃거리며 들꽃의 향을 맡는다.

 

나는 새벽이 좋다. 

싱그러운 이 새벽이 좋다.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새벽이 좋다.

어둑어둑한 길을 천천히 걸으며 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좋다.

숨어서 피어 있는 들꽃이 좋다,

산 냄새가 좋고,  흙냄새가 좋고,  들꽃 향이 좋다.

 

곰재에 다다라 이곳저곳을 다녀 보아도 만개해 있어야 할 철쭉꽃은 자취도 찾아볼 수 없다.

온산이 붉게 물들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올해에는 기온이 일찍 높아, 이미 피웠다 진 모양이다.

허무하다.

곰재를 넘어서니  큰 꽃으아리가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고 있지 아니한가.

 

 

 

포장도로를 택하지 않고 왼쪽 비포장도로로 걸어 올라가니,  커다란 이팝나무에 꽃이 하얗게 피어 있고 그 옆으로

전망대가 있다.  

제암산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라 가파른 경사길을 걸어 내려가니, 자연휴양림 가는 아스팔트길과 만난다.

계곡엔 물소리가 요란하다. 

일림산에서 발원한 물줄기에 이 물도 보태져 보성강을 이룰 것이다.

 

중학생들이 자연관찰 학습을 오는 모양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면서, 제암산 자연 휴양림이 얼마나 남았는지 묻는다.

걷는 것이 힘든 모양이다.

본격적인 보성강이 시작되는 웅치교에 도착한다. 그 옆에 포토 존 전망대가 있다.

 

 

 

옥암리를 지나 원봉리를 향햐여 걷는다. 

12시가 가까워 온다.  5월의 미풍이 부드럽게 불어온다.

고개를 넘어 걸어가다 보니,  마침 '푸른 산장' 음식점이 보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신발 끈을 풀고 방 안으로 들어가니, 아기를 안고 어르던 할머니가 돌아보며,

" 혼자 왔시오?" 하고 묻는다.

" 네 "

" 혼자 먼^ 재미로 댕긴대요. 여럿이 같이 댕겨야 재미있재. "

" --- "

된장찌개 백반을 차려준다.

밥은 얼마든지 더 들어도 되니 필요할 때 말 하란다.

풋풋한 정을 느낀다.

 

물 따라 구름 따라 걷는 길에 무슨 벗이 더 필요한가.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있어 늘 속삭여 주고,

숨어서 피는 들꽃들이 늘 반겨주고 있고,

두둥실 떠 가는 저 흰구름이 늘 벗 해주고 있는데

어찌 혼자 댕기는 것이랴.

하늘과 강과 산과 들 그리고 나무들이 항상 함께하고 있는데

어찌 외롭다 할 수 있으랴. 

 

보성읍을 지나고 용문리를 지나 반암교에서,

오늘 묵기로 생각했던 덕림리 민박집에 전화로 문의하니 혼자 묵기에는 적당치가 않다.

지나가는 마을사람에 물으니 민박처가 마땅치 않다.

보성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용문천 둑길과 농로로 걸어간다.

다시 큰길로 들어서 석문마을에 다다르니 도로변에 모텔이 보인다.

오른발 새끼발가락이 터진 듯 통증이 심하다.

모텔에 들어 목욕하고 발가락 발바닥 물집을 터뜨려 소독하고 약 바르고 밴드를 붙인다.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

 

오늘 걸은 길  ;  장흥읍-신기마을-곰재-제암산자연휴양림-웅치-웅치교-옥암리-원동리-보성읍-석문 -용문리-반암교-석문

금일 보행거리 :  2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