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31. 15:56ㆍ사진/야생화
유월의 언덕
노 천 명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하늘은
사뭇 곱기만 한데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고 안으로 안으로만 들다
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
곧 얼음모양 꼿꼿이 얼어 들어옴은
어쩐 까닭이뇨
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고운데
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해 볼 사람은 없어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어가지고 안으로만 들다
장미가 말을 배우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사슴이 말을 하지 않는 연유도
알아듣겠다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언덕은
곱기만 한데...
양귀비 꽃
오 세 영
다가서면 관능이고
물러서면 슬픔이다
아름다움은 적당한 거리에만 있는 것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된다
다가서면 눈멀고
물러서면 어두운 사랑처럼
활활
타오르는 꽃
아름다움은
관능과 슬픔이 태워 올리는
빛이다.
"거기 화단 가득히 양귀비가 피어 있었다.
그것은 경이였다.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다.
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 줄은 그때까지 정말 알지 못했다.
가까이 서기조차 조심스러운, 안개가 서린 듯 몽롱한 잎새, 그리고 환상적인 그 줄기가 나를 온통 사로잡았다.
아름다움이란 떨림이요 기쁨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때부터 누가 무슨 꽃이 가장 아름답더냐고 간혹 소녀적이 물음을 해오면 언하에 양귀비꽃이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처럼 분명하고 자신만만한 확답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절절한 체험이었기 때문이다."
-<법정(法頂) 스님 '무소유' 중에서>
□ 양귀비(楊貴妃)
미나리아재비목 양귀비과 양귀비속 식물로 학명은 Papaver somniferum L
영어로는 Opium poppy, 중국어에서는 罌粟(yīngsù, 앵속), 일본어에서는 ケシ(keshi, 芥子, 罌粟)라고 한다. 북한 문화어로는 '아편꽃'이다. 이 꽃의 표준어 명칭이 독특한데 한자어인 앵속(罌粟)이 아니라 당현종의 후궁이었던 양귀비의 미모에 빗대 양귀비라고 불린다. 실존인물 양귀비 때문에 한 나라가 파탄 난 것처럼 한 사람의 인생 혹은 나라를 파탄 내는 마약의 원료라는 점에서 정말 적절한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0세기경 수메르인들의 공예품에서 양귀비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양귀비에서 아편을 추출하는 법은 고대 그리스인도 알고 있었는데, '오피움'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인들이 붙인 말이다. 이것이 중국에서 '아편'으로 음역 되어 들어왔다.
□ 꽃양귀비
식물도감 상 정식 이름은 개양귀비이다. 영어 이름 뽀삐(poppy), 학명은 Papaver rhoeas이다. 환각성분이 있는 마약 양귀비(Papaver somniferum L)와 과는 같으나 '종'이 다르다. 양귀비와 구분하기 위해 꽃양귀비, 우미인, 우미인초(虞美人草), 물감양귀비라고도 한다. 아편 성분이 없는 개양귀비의 별명은 우미인초인데 항우의 연인이었던 그 우미인의 이름이 붙었다. 같은 미인이지만 나라를 말아먹은 양귀비는 아편이 있는 양귀비에 이름을 남겼고 그저 사랑만 하다 죽은 우미인은 아편이 없는 양귀비에 이름을 남겼다.
※양귀비의 구별법은 마약류 양귀비는 줄기가 매끈하고 잔털이 없으며 둥글고 큰 열매가 맺히는 반면, 관상용 양귀비는 줄기 전체에 잔털이 많이 나 있고 열매가 작은 도토리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마약용 양귀비는 검은 반점이 있는 붉은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관상용인 경우에는 연한 주황색이나 엷은 분홍색, 흰색인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