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2023. 12. 23. 12:06사진/사찰

봉은사  '날물곳'('솟아나는 물'이라는 뜻이며 통칭은 수각水閣임) 옆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勒菩薩 半跏思惟像)

 

 

 

□반가사유상의 성격과 의미

상이 표현하는 대상이 정말로 미륵보살이 맞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논란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고뇌하는 모습, 혹은 출가를 막 결심한 모습을 나타낸 표현이라고 하여 태자(太子) 사유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실 반가사유상이 미륵보살이라는 설의 발원지인 일본에는 관음보살 반가사유상도 있다. 현재는 미륵보살이라는 설이 가장 대중적이지만 일부 권위 있는 학자들은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불상 전파에는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다. 불교의 본산이던 인도에서 바다를 따라 동남아와 중국 남부를 거쳐 한국일본에 전해지는 경로와, 인도에서 북쪽 중앙아시아를 통해 티베트 위쪽의 실크로드(사막, 고원)를 거쳐 육로로 전파되는 경로다. 전파 경로에 따라 인도 내의 발상지와 종파가 다른데, 여기서 불상의 모습이 여럿으로 갈린다. 가령, 유명한 간다라 지역 불상은 헬레니즘 영향을 많이 받아 고대 그리스 석상 양식의 특징을 많이 가졌다면, 마투라 지역이나 굽타 왕조의 불상에서는 인도인 석상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여러 불상과 미륵 반가상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나타난다.

때문에 옷이나 관, 그리고 손가락의 특징에 따라 불상의 성격을 추측하는데, 문제는 반가사유상이 취하는 자세가 석가모니불이 보리수나무에서 번뇌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으로도 볼 수 있고,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사유하는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일부 반가사유상은 불상에 태자 사유상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전자가 맞다고 공인되며, 일부 반가사유상은 혼란기인 위진남북조시대에 미륵 신앙 유행과 함께 등장하였으므로 미륵불일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한반도의 반가사유상은 어떤 불교 교리와 연관되어 등장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여러 학설이 분분하지만 공통으로 삼국 시대에 등장한 왕즉불 사상인 호국 불교에서 출현했다고 본다. 전쟁이 이어지던 삼국시대에서 미래에 부처가 혼란한 세상을 구원한다는 미륵불 신앙이 유행한 것이다. 왕실에서도 이를 수용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신라는 왕족들의 이름을 석가모니 가족들의 이름과 동일하게 지었다. 왕자의 이름을, 불교에서 성왕으로 묘사되는 전륜성왕에서 따오기도 했다.

특히 신라는 화랑을 미륵불의 화신으로 여겼으며 화랑들이 전투를 했던 영역에서 거대 반가사유상이 발견된다. 경북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보물 제997호)은 하반신만 남아 있지만, 이 하반신을 통해 전체 모습을 추정하면 복원 추정 높이 2.5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반가사유상이며, 옷주름 형태가 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매우 흡사하다. 삼국의 반가사유상이 미륵불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남아 있는 기록과 유행하던 신앙, 혼란한 시대상을 통해 추측건대 한반도에서 기술적, 심미적으로 완성된 형태의 반가사유상이 많이 발견된 것은 미륵불을 통해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염원했던 민중의 바람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 <'나무위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