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실상사 석장승(南原 實相寺 石長栍)

2019. 4. 19. 22:02사진/사찰

실상사
 이 우 걸(1946- )

구름을 잠재우고 산을 잠재우고
나그네를 잠재우고 마을을 잠재우면서
불면의 밤을 가꾸는
너는 무엇인가?

방황은 외투처럼 네가 걸치는 화두일까
벼랑을 건너가는 종소리의 아픔일까
석장승 외진 입상의 정처 없는 시선일까.

뜰에 진 꽃잎 하나 무심히 줍는 사이
천년이 흘러가고 또 천년이 온다 해도
스스로 채워 둔 족쇄
풀 길 없는 사유의 강.

 

 

남원 실상사 석장승(南原 實相寺 石長栍)

(1)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

 

돌장승 옹호금사축귀장군 뒤로 자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옆으로 만수천이 흐르고 있다.

 

자목련과 돌장승

 

 

(2)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멀리 지리산 노고단을 뒤로 하고 들에 서 있는 돌장승 상원주장군

 

 

 

 

좌측으로 실상사가 보인다

 

(3)  대장군(大將軍)

 

멀리 노고단을 바라보고 있는 느티나무 옆의 돌장승 대장군

 

 

느티나무와 돌장승. 만수천을 가로지르는 해탈교가 보인다

 

느티나무와 돌장승

 

남원 실상사 석장승(南原 實相寺 石長栍)

국가민속문화재 제15호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이 돌장승들은 실상사를 지키는 상징적인 조각품으로, 원래는 이곳 냇가에 모두 네 개가 있었다. 절로 가는 도중 내를 건너기 전에 두 개의 장승이 서 있었는데, 그중 오른쪽 것이 1938년 홍수에 쓸려 내려가 현재는 세 개만 남았다. 장승들의 높이는 대략 2.5-2.9m, 너비 40-50cm가량이며,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커다란 귀를 갖는 등 비슷한 양식을 보인다. 장승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같은 시기인 조선 영조 1년(1725년)에 세운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곳 장승들은 모두 남자 형태이다. 귀신을 쫓는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남원 실상사 석장승(南原 實相寺 石長栍)

국가민속문화재 제15호

수량 : 3기

소재지: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33-1번지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을 한다. 실상사 입구에 있는 3기의 돌장승 역시 경계표시와 함께 경내의 부정을 금하는 뜻에서 세운 것으로 보인다. 만수천의 해탈교를 건너기 전 마을 쪽에 있는 돌장승이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이고, 해탈교를 건너자마자 길 좌우에 2기의 돌장승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오른쪽 논두렁 가에 있는 돌장승이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고, 왼쪽의 괴목 아래 서 있는 돌장승이 대장군(大將軍)이다. 3기의 장승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머리에 벙거지를 쓰고 있으며 크고 둥근 눈에 뭉툭한 주먹코이다. 윗 송곳니 두 개가 삐져나와 험상궂은 듯 하지만 입가의 미소가 순한 심성을 드러내고 있다. 길게 수염이 표시되고 몸체에는 좌우 각각 상원주장군, 대장군, 옹호금사축귀장군이라는 이름이 새겨있다. 다만 수염이 반대로 향하고 있어 상원주장군과 대장군은 대칭적인 한 쌍을 염두에 둔 조각인 듯싶다. 대장군의 기단석(基壇石)과 상원주장군의 뒷면에 있는 기록으로 보아 실상사 석장승들은 조선 영조 원년(1725)과 영조 7년(1731)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 문화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