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로 서서, 겨울나무/이재무

2020. 1. 2. 20:52시 모음/시

설악산에서

 

겨울나무로 서서
이 재 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들을 떨군다.
여름날 생의 자랑이었던
가지의 꽃들아 잎들아
잠시 안녕
더 크고 무성한 훗날의
축복을 위해
지금은 작별을 해야 할 때
살다보면 삶이란
값진 하나를 위해 열을 바쳐야 할 때가 온다.
분분한 낙엽,
철을 앞세워 오는 서리 앞에서
뼈 울고 살은 떨려 오지만
겨울을 겨울답게 껴안기 위해
잎들아, 사랑의 이름으로
지난 안일과 나태의 너를 떨군다.

 

설악산에서

 

겨울나무

이 재 무

 

이파리 무성할 때는

서로가 잘 뵈지 않더니

하늘조차 스스로 가려

발밑 어둡더니

 

서리 내려 잎 지고

바람 매 맞으며

숭숭 구멍 뚫린 한 세월

 

줄기와 가지로만 

견뎌보자니

보이는구나

 

저만큼 멀어진 친구

이만큼 가까워진 이웃

외로워서 더욱 단단한 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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