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으로 보고 우주적으로 생각하라

2018. 10. 30. 12:36천문, 천체/천문, 천체

소백산천문대 첨성관 밤하늘 풍경

 

우주적으로 보고 우주적으로 생각하라

인류 지적 활동의 위대한 소산인 모든 과학 분야에서 천문학이야말로 두말할 나없이 가장 숭고하며, 가장 흥미롭고, 또 가장 유용한 학문이다. 왜냐하면 천문학에서 비롯한 지식 체계가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지구에서 감춰져 있었던 미지 세계의 상당 부분을 발견하게 해 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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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이 전해 주는 아이디어에 의해서 우리 지적 능력의 지평 자체가 드넓게 열려졌을 뿐 아니라 천문학이 아니었더라면 숱한 편견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인류의 정신 세계가 우주 저 넓고 높은 세상으로 도약하게 됐다,                -제임스 퍼거슨, 1757

 

 우주의 시작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아주 오래전, 행성 지구에 가장 가까운 외부 은하가 무려 200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고 인식되기 훨씬 전, 별들이 어떻게 빛을 내고 진화하는지를 이해하게 되기 한참 전, 원자의 존재가 받아들여지기 한 세기 훨씬 전인 18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천문학자로 활동한 제임스 퍼거슨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학문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 글귀는 구구절절 우리에게 진실로 다가온다. 18세기식 문체의 화려함만 아니라면 퍼거슨이 기술한 내용만 놓고 봤을 때 이 글귀는 바로 엊그제 쓰인 것이라해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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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안목을 키우는 과정에서 우리도 모르게 지불하게 되는 비용이 적지 않다. 개기 일식이 오면 나는 수 천 킬로미터를 이동하여 빠르게 움직이는 달의 그림자를 추적한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시간이라야 겨우 몇 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몇 분 동안 나는 모든 세상사를 까맣게 잊은 채 달의 지구 주위 공전 운동, 그리고 거기에 더한 지구의 자전과 숨 가쁘게 경주한다. 나는 혼자 가만히 앉아서 우리의 팽창 우주를 곰곰이 생각할 때가 있다. 끊임없이 팽창하는 시공간 연속체에 박혀서 시공간의 팽창과 더불어 서로가 멀어지는 은하들을 머릿속에 그려 보다가 문득 지상의 현실로 돌아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에 흠칫 놀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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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들어 있는 별들의 개수가 지구 상 바닷가 모래밭의 모래알 수보다 많다. 지구가 탄생한 이래 여태껏 흐른 시간을 초 단위로 잰 값보다 별들의 개수가 더 많다. 지구에 태어나 살았던 인간이 내뱉은 모든 단어와 소리의 분절 수보다 별들의 수가 더 많다. 살다보면 우주적 전망에서 과거를 한번 휙 둘러보고 싶을 때가 있다. 우주적 시각에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빛이 저 깊은 우주 공간을 지나서 지구 상 천문대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관측에 드러난 천체의 모습과 현상은 해당 천체의 현재가 아니라 과거 어느 한때의 상황일 수밖에 없다.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일수록 시공간이 열리던 우주 초기, 즉 시간 자체가 열리던 그 태초의 상태를 우리에게 보여 줄 수 있다.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 우주의 진화상이 우리 눈앞에서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 육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나 알고 싶어하는 이러한 종류의 근원적 질문은 그 답을 우주적 관점 밖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의미가 해당 질문에 담겨 있는 것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각종 원소는, 질량이 큰 별 내부 용광로에서 버려진 다음 거대한 규모의 폭발을 통해 우주 공간으로 흩어진다. 이런 식으로 은하는 생명 현상의 필수 요소로 기능하는 각종 원소들로 풍요로워진다. 그 결과가 궁금하지 않은가. 우주에서 가장 활발한 반응을 보이는 원소 네 가지, 즉  수소, 산소, 탄소, 질소가 지구 생명을 구성하는 가장 흔한 원소들이다. 그중에서도 탄소가 모든 생화학적 반응의 기본 틀을 구축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냥 이 우주 안에서 사는 게 아니라, 우주가 우리 안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 얘가하고 나면, 우리가 행성 지구만의 소산물이란 생각은 수정될 수밖에 없다. 몇몇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이뤄진 연구원들의 결과를 종합하다 보면 우리가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를 묻게 된다. 거대한 소 행성이 행성 하나와 고속으로 충돌을 할 경우, 충돌에 따른 막대한 양의 운동 에너지가 행성의 표면 물질은 물론 그 구성 암석들을 마치 대포알이나 된 듯 우주 공간으로 튕겨 나가게 한다. 우주로 튕겨 나온 암석은 또 다른 행성의 표면에 내려앉는다. 그런데 의외로 내구력이 강한 지대한 미생물 종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온도와 압력의 엄청난 변화를 잘 견뎌 낼 뿐 아니라 우주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강력한 복사장에서도 거뜬히 살아남는 극한 생물이 있다. 지구상 도처에서 극한 생물이 발견된다. 생명이 서식하는 어떤 행성에 소행성이 충돌했을 경우, 거기서 튕겨져 나온 돌덩이의 표면 여기저기에 파여 있을 작은 구멍과 간극 들이 미시적 생물에게 아늑한 보호구로 기능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행성을 떠난 생명이 돌멩이에 실려서 외부 악조건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안전한 우주 여행에 오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할 사안이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태양계가 형성된 직후에 화성에 물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생명이 지구보다 화성에 먼저 출현했을지도 모른다. 최근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건대 화성에서 태동한 생명이 지구 생명의 씨앗을 제공했을 수 있다. 이런 주장을 범종설(凡種說)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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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를 거듭하면서 우주적 대발견이 이뤄질 때마다 인간의 과도한 자만심에 금이 가곤 했다. 한때 지구가 천문학적으로 유일한 존재일 것으로 믿어졌다. 당시의 천문학적 지식이 가르쳐 주는 바가 그랬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궤도 운동을 하는 여러 행성 중 하나일 뿐이었다. 억울했겠지만 우리는, 지구에 부여했던 특별한 지위를 태양에게 내줘야만 했다. 그런데 또 알고 봤더니 밤하늘에 반짝이는 숱한 별들 하나하나가 우리 태양과 비슷한 존재였다. 한동안 우리는 우리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밤하늘에 휘뿌옇게 보이는 작은 점들이 모조리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들이었던 것이다.  우주 야경에 점점이 수를 놓은 것들이 모두 은하라는 말이다. 인간의 과도한 자만심은 이 모든 발견이 가져다준 낭패감을 감내해야만 했다. 오늘날 우리가 속한 우주 단 하나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수 있겠다.

그런데 최근 우주론 분야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 다중 우주론이 또 한 번의 낭패감을 가져다줄 준비를 하고 있지 싶다. 새로운 발견이 이뤄질 때마다 인간 자만심에 심한 낭패감을 불러왔으며, 현대 우주론의 발달이 우리에게 유일무이의 지위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확인, 재확인시켜 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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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시각은 사물의 궁극적 근원을 건드리는 지식에서 성장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냥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지식이다. 제대로 된 우주적 시각을 견지하려면 인류가 그동안 쌓아올린 지식을 활용할 줄 아는 지혜와 통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지혜와 통찰을 통해서만 우주의 진정한 속성을 명료하게 볼 줄 알게 된다. 우주적 시각은 우선 과학의 최전선에 우리가 섰을 때 우리의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과학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모든이의 것이다. 우주적 시각은 언제나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우주적 시각은 영성적이다. 그래서 우리를 속죄의 의미에 천착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우주적 시각은 우리네 삶에서의 모든 대상을 그것이 크든 작든 동일한 사고의 잣대로 공평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한다. 우주적 시각은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해서 예외적 아이디어에서도 가치를 찾아내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아이디어를 무조건 받아들여 우리의 두뇌를 그들로 넘쳐나게 하지는 않는다. 누구의 주장이든 곱씹어 생각함으로써 그 진위부터 가늠케 유도하기 때문이다.

 

우주적 시각은 우리의 눈을 활짝 열게 해서 인류의 시선을 우주의 삼라만상으로 돌리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 삼라만상이 생명을 양육하도록 설계된 생명의 요람이라고 믿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우주적 시각은 우리에게 우주는 냉정하고, 외롭고, 위험천만의 터전임을 인지하게 한다. 그리하여 인류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서로에게 갖는 의미를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

 

우주적 시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고 일깨워 준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소중한 티끌임에 틀림이 없다. 지구가 인류의 유일한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우주적 시각은 행성, 위성, 별, 성운 등이 갖고 있는 원초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 동시에 저 모든 아름다움에게 제 나름의 틀을 갖추게 하는 물리 법칙의 위력을 높이 받들어 기리게 한다.

 

우주적 시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 다가 아니라고 일깨워 준다. 먹을 것, 피난처, 그리고 짝짓기의 대상을 찾아 헤매는 원초적 욕구와 노력 등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 우주에 존재하며 그것의 깊은 의미를 찾게 한다. 우주적 시각은 공기가 없는 지구 근접 우주 공간에서 국가를 상징한 깃발이 펄럭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깃발의 휘날림과 우주 탐사가 서로 별개임을 깨닫게 한다.

 

우주적 시각은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서로 진한 피붙이의 관계에 있음을 일깨워 준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주에서 발견될 미지의 생명들도 화학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와 동질성을 갖은 하나의 피붙이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결국 인류의 뿌리가 우주에 까지 닿아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날마다는 무리일지 몰라도 적어도 일주일 한 번씩만이라도, 진면목을 아직 드러내지 않은 우주적 진실들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쩌면 대단히 지혜로운 사상가가 우리 앞에 나타나거나, 대단히 독창적인 실험 프로젝트가 설계, 추진된다거나, 혁신적 우주 탐사미션이 수행된다든가 해서 우주의 심원한 내면적 실체가 밝혀질 날이 올지 모른다. 이렇게 알려질 우주의 근원적 진실이 어느 날 갑자기지구 생명의 본질에 일대 변혁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  닐 디그레스 타이슨 NEIL DEGRASSE TYSON의 '날마다 천체물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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