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원효의 숨결을 찾아 원효봉에 오르다

2015. 9. 5. 07:33나를 찾아 걷는 길/서울의 진산(鎭山) 삼각산(三角山)

 서울의 진산(鎭山) 삼각산(三角山)

 (2) 원효의 숨결을 찾아 원효봉에 오르다

       ( 2015. 9.  ) 

   

보리사에서 바라보이는 원효봉

 

서울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왼쪽길로 들어서서 계곡 길 들머리에서 바라보니, 둥그스름한 원효봉과 그 뒤로 살짝 고개를 내민 백운봉, 그리고 만경대와  뿔 같은 노적봉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북한산성교육정보센터 앞  깊은 계곡 암벽 사이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에 떠밀려 사라진 수구문(水口門)이 있었던 곳이다.

왼쪽 암벽 위로 수구문에서 이어지는 산성이 올려다 보인다. 

이 산성은 서암문, 원효봉, 북문을 거쳐 영취봉, 백운봉, 백운봉 암문, 만경봉, 용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으로 이어진다.

정교하게 돌을 짜맞춘 예스러운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산성은 대서문과 의상능선 따라 가사당 암문, 부왕동 암문,

청수동 암문, 대남문으로 이어진다.

 

  

둥그스럼한 원효봉과 그 뒤로 살짝 고개를 내민 백운봉, 그리고 만경대와 깎아놓은 뿔과 같은 노적봉이 우뚝 서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북한산성교육정보센타

 

 

  

옛 수구문이 있었던 계곡   - 원효봉이 바라보이고  왼쪽 암벽 위로 옛 수구문에서 이어지는 산성이 올려다 보인다.

 

  

  

정교하게 돌을  짜 맞춘 예스러운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산성

 

 

유적발굴 및

숙종 37년 (1711) 북한산성을 축조할 때에 승려들을 총 관리하는 팔도도총섭이었던 성능(聖能)이 지은 북한지(北漢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서암사는 수구문내에 있는데, 133칸이며 승(僧) 광헌(廣軒)이 창건하였다. 처음에는 민지사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민문인(閔文仁)의 유지(遺址)가 그 옆에 있기 때문이다. 그 후에 공의 휘를 피해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었다.

월곡 오원이 시를 지었다.

어스름녁에 나그네가 산사에 이르니

저녁 풍경소리 아직껏 요란하도다

맑은 시냇가 바위 위에 앉아 있노라니

푸르른 산봉우리에 달님이 뒤따라 떠오르네

그윽한 바위산은 머얼리 뿌옇게 이어지고

깨끗한 정경은 나무 그림자들을 성기게 흩뿌리는구나

바람에 흔들리는 샘물소리 점점 더 거세어지고

무수한 산골짜기들엔 차가운 바람소리 울려 퍼지니

말술을 들이켜도 취하지 아니하고

마음과 뼛속까지 맑아지기만 하네  "

 

산성수비를 담당했던 호국 승영 사찰이었던 서암사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대량의 토사에 매몰되었다.

 

  

복원사업이 진행 중인 서암사지 뜰안으로 원효봉이 내려앉는다

 

  

산성계곡에서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원효봉  - 사자바위, 치마바위 등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집채 같은 바위와 깎아 놓은 듯한 암반 위로 맑은 물이 흐른다.

푸른 하늘과  나무 잎사귀가 물에 어린다.

계곡의 물소리, 풀벌레 소리가 마음을 맑게 한다.

계곡에 놓인 철계단 길을 걷고 있노라면 설악산 구곡담 계곡의 한 자락을 걷고 있는 듯하다.

 

한줄기 작은 냇물이 백운봉으로부터 흘러나와

만리 밖 푸른 바다와 잇닿아 흐른다

졸졸 흐르는 냇물이 바위 밑에 있다 말하지 마오

머지않아 이 냇물이 용궁에 이른다오

 -  고려 현종

 

 

깎아 놓은 듯한 암반 위로 맑은 물이 흐른다.

 

   

 

  

칠 류 암(七遊巖) 암각문  - 일곱 선비가 와서 놀았다는 흔적을 남기고 있다

 

 

 

계곡에 놓인 철계단 길을 걷고 있노라면  설악산 구곡담 계곡의 한 자락을 걷고 있는 듯하다.

 

  

황매가 바람에 흔들리는 덕암사 가는 길

멀리 둔덕길을 타박타박 걷는 비구니 스님 두 분이 보인다.

 

절 입구에는 배가 불룩한 포대화상이 벌서고 있는 듯 무엇인가를 떠받치고 서 있다.

'은전(銀錢)을 떠받치고 있다'라고 대답해 주는 비구니 스님의 얼굴이 맑고 환하게 빛난다.

 

원효봉 서쪽 아래에 위치한 덕암사는,

1966년 '거북이 바위굴'이라 불리는 오래된 석굴을 보수해 대웅전으로 삼아 창건했다.

그 당시 석굴 안에는 석불 3구가 모셔져 있었던 사실로 미루어 덕암사 중건 이전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효대사가 이 석굴에서 좌선하며 삼국통일을 기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황매가 바람에 흔들리는 덕암사 가는 길

 

 

 

둔덕길을 걸어가고 있는 두 스님

 

 

  

 

 

은전(銀錢)을 떠 받치고 있는 포대화상

 

    

  

거북암 석굴이  대웅전이다.  그  뒤편으로  산신각이 보인다

 

  

 

덕암사 목조보살좌상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6호    관세음보살좌상과 대세지보살좌상- 목조불에 금칠을 하여 금동불로 보인다 원래 아미타삼존불로 제작되어 강원도 철원 심원사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본존불은 서울 환희사에, 협시보살은 이곳 덕암사에 각각 이전 봉안되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바라보이는 의상봉

 

   

  

시멘트로 만든 미륵불 입상

 

    

  

덕암사 범종

 

산신각 가는 언덕 위에 어수리꽃이 환하게 피어 있다.

산신각 옆에도 거북바위가 있다.

산신각에서 내려다보면 대웅전 석굴 바위가 거북이처럼 보인다.

미륵불너머 겹겹의 산릉선이 아득히 펼쳐진다.

 

 

산신각 가는 귀퉁이에    어수리꽃이 환하게 피어 있다

 

 

  

산신각 옆에도 거북암이 있다

 

 

 

산신각에서 바라보이는 대웅전 석굴  거북바위

 

 

 

멧돼지  형상의 바위와 요사채

 

 

덕암사를 지나 원효봉 산기슭을 돌아 나가니 서암문이다

1711년 (숙종 37)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暗門) 중 하나이다.

성벽을 따라 원효봉으로 향한다.

성랑터도 보이고 허물어지고 남아 있는 여장도 군데군데 보인다.

 

 

 

 

 

 

 

서암문(西暗門 )

 

   

 

고색이 풍기는 성벽

 

 

  

여장

 

  

 

성장지

 

 

 

여장이 허물어진 성벽

 

 

   

원효봉 사자바위 오르는 길목 바위 벼랑에 자리 잡고 있는 원효암.

길섶에 닭볏을 닮은 하늘색 달개비꽃 하나 피어 있다.

강아지풀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돌계단을 올라  느티나무를 지나 원효암으로 들어선다.

작은 화단에는 두메부추가 꽃줄기를 쭉 뻗어 올려 흰색 꽃을 둥그렇게 모아 피우고 있고,  옥잠화도 깔때기 모양의 순결한 순백의 꽃을 피우고 있다.

대웅전 안 오른쪽 벽에는 원효성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을 돌아 나가니 암벽 아래로 좁은 길이 이어진다.

바위벼랑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핀 하늘색 달개비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바위벼랑과 달개비꽃이 허공(虛空)에 아름답게 어우러지고 있다.

 

사대천왕이 호위하고 있는 암벽 아래의 불두상(佛頭像)을 지나니 울퉁불퉁한 바윗길 위로 산신각이 보인다.

벼랑에 세워진 산신각 자리가 원효성사가 좌선(坐禪) 수행(修行)하였던 곳이다. 

 

문을 여니 바위에 산신도가 그려져 있다. 

노송 아래로 붉은 옷을 입은 여 산신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그 옆에는 대나무 숲과 산신을 호위하는  포효하는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산신각 앞에 서면 나무가 시야를 가리지만 산신각 아래의 길로 바위 벼랑으로 나아가면 시야가 트인다.

의상봉과  의상능선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오고,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시야는 아득하기만 하다. 

해동 사문 원효 술(海東 沙門 元曉 述)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

 

"푸른 산 험한 바위는 지혜로운 이 갈 곳이요, 푸른 소나무 깊은 골은 수행자가 있을 곳이다.
배고프면 나무열매를 씹어 주린 창자 위로하고, 목마르면 흐르는 물 마셔 그 갈증을 풀어라.

메아리 울리는 바위굴로 염불당을 삼고, 슬피슬피 우는 기러기로 마음의 벗을 삼으라."

 

하였으니,

원효의 수행처를 보면 늘 높은 산 험한 바위봉이고, 푸른 소나무 심산유곡이다.

 

북한산성 축성 후 원효암을 중건한 성능(聖能)이 원효가 머물던 원효대를 찾아 시를 지어 이대를 영탄하였다.

 

구슬같이 아리따운 수림은 빽빽이 우거지고

유리처럼 맑은 세계는 속세와 격절되었네

높고 험한 설색(雪色)의 산봉우리는 천 겹을 이루고

뇌성벽력 같이 힘차게 소리치며 흐르는 물은 만 구비를 감돌아 흐른다

고요한 사색에 잠긴 고승의 모습은 수척하고 적막하기만 한데

나는 것을 배우는 어린 학들은 무심코 오락가락 하누나

속세와 초연히 떨어진 이곳에 진객이 찾아와

어스름 황혼 녘에 원효대에 오르노라

 

 

달개비꽃

 

  

  

강아지풀

 

     

 

 

 

 

원효암

 

 

원효암은 신라의 고승 원효가 정좌 수도하기 위해 세운 암자이다. 조선 숙종 39년(1713) 북한산성 축성 후 산성의 수비를 위해 팔군도총섭 성능에 의해 12간 규모의 암자를 중창 보수하였다. 한국전쟁 중 부분 소실된 것을 1955년 복원된 관음기도 도량이다. 경내에는 대웅전, 산신각, 요사채,  암벽 아래 약수가 있다.

  

화단에 피어 있는 두메부추 꽃

 

   

  

깔때기 모양의 옥잠화

 

   

  

대웅전

 

   

  

원효성사 진영    - "海東初祖元曉大和尙 "이라는 화제(畵題)가  쓰여 있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유독 원효에게만 성사(聖師)라는 호칭을 붙였다.

 

 

  

바위 벼랑에 세워진 원효암

 

  

 

 

암벽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달개비꽃

 

  

  

 

 

원효성사가 지팡이로 뚫었다는  바위에서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사천왕 이 지키고 있는    암벽 아래의  불 두상(佛頭像 )

 

   

  

원효성사가 정좌수행(正坐修行 ) 하였던 자리에  산신각을 세웠다

 

   

 

바위 바위에 그려진 산신도

 

   

원효암에서부터 사자바위(전위봉)까지는 가파른 길이다.

군데군데 벼랑 끝에 바위 전망대가 있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뒤틀린 소나무가 고고해 보인다.

 

 

원효암 입구의 성벽

 

 

 

 

 

 

쇠줄 잡고 사자바위에 오르니 칼등 같은 바위 정상이 아찔하다.

둥그스름한 원효봉너머 삼각산의 영봉인 백운봉(白雲峰) 위로 흰 구름이 마구 피어오른다.

아!  장엄한 모습이다.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백운대의 모습은 어떠한고?

하늘 높이 치솟아 북두칠성을 뚫었네

당당히솟아올라 오악과 어깨를 견주니

천지 음양의 두 세계를 지니고 있네

울창하고 무성한 그늘이 백운대와 조화를 이루어

물안개에 가린 채 혼돈하고 혼몽한 모습만 어렴풋하네

시로써 이 장관을 묘사할 길 없으니

적선(이태백)의 시재가 아쉽기만 하여라

                        - 정두경

 

 

숨은 벽능선과 상장능선너머 멀리 도봉산 주능선(主稜線)과 오봉(五峰)이 바라보인다.

오른편으론 의상봉능선이 꿰뚫어 보이고 다시 오른편으로  아득히 개성이 바라보인다.

오른편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면 노고산 한북정맥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사자바위 옆으 로 보이는  의상능선

 

 

 

사자바위 오르는 바윗길

 

  

 

사자바위(전위봉)

 

  

  

삼각산의 영봉인  백운봉(白雲峰) 위로 흰 구름이 마구 피어오른다 (1)

 

 

  

삼각산의 영봉인 백운봉(白雲峰) 위로 흰 구름이 마구 피어오른다 (2)

 

  

 

  

삼각산의 영봉인  백운봉(白雲峰) 위로 흰 구름이 마구 피어오른다 (3)

 

  

 

오른쪽 백운봉ㅡ 멀리 오봉과 도봉산이 바라보인다.

 

  

숨은 벽능선 상장능선 너머로 오봉과 도봉산이 보인다.

 

  

 

파주 개성 방향

 

 

 

노고산 방향

 

 

 

노고산 방향

 

 

 

의상봉과 의상능선

 

  

  사자바위에서 내려서 봉우리를 다시 오르면 둥그스름한 암반이 원효봉 정상이다,

영취봉(염초봉) 백운봉 만경봉 노적봉 바위 봉우리가 눈앞을 우뚝 가로막는다.

성곽 너머로 멀리 오봉이 바라보인다.

 

원효봉 정상

 

  

 

원효봉  암봉 모습

 

                                                     

 

좌로부터 영취봉(염초봉) 백운봉 만경봉 노적봉

 

  

 

원효봉에서 바라 보이는 의상능선

 

 

오른쪽부터 백운봉 염초봉 그 뒤가 숨은 벽능선 그리고 상장능선너머    오봉과 도봉산이  바라보인다

 

 

아름답게 새로 축성된 성곽을 따라  원효봉과 영취봉 사이의 안부에 내려서니 북문(北門)이다.

홍예와 문루(門樓)가 설치되었었다는 북문에는 문루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초석만 남아 있는 허물어진 문루 자리로 푸른 하늘이 올려다 보인다.

  

 

새 로  축성된 성곽

 

  

 

북문(北門 )

 

  

 

북문(北門 )

 

  

상서로운 구름 속의 절 '상운사(祥雲寺)'

1711년 숙종 37년 북한산성을 축성 한 뒤에 산성수비를 맡을 승영(僧營) 사찰로 창건한 13개 사찰 중의 하나로 희수대사가 133칸 규모로 건립한

사찰이다.

 

절 마당으로 들어서니, 영취봉 백운봉 만경봉 노적봉 수려한 암봉이 눈 안에 오롯이 들어온다.

대웅전 옆에는 400년 수령의 향나무가 푸른 향을 뿜어내고, 석축 위로 고졸한 삼층석탑이 오뚝하게 서 있다.

대웅전 주련을 읽어본다.

 

佛身充滿於法界

普賢一切衆生前

隨緣赴減靡不周

而恒處此普提座

부처님은 온 세상에 가득해서

널리 모든 중생들 앞에 나타난다네

연 따라 두루 나아가 감응하지만

항상 깨달음의 자리를 떠난 적이 없구나

 

신라 북진 시 고승 원효대사가 절 뒤편의 바위에서 좌선 수행중 이 절을 창건했었다 전해진다.

절 뒤편에는 원효대사가 좌선하고 수행한 바위가  있다.

절 뒷편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니,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층층의 기이한 바위군이 보이고 그 뒤편 바위 상단에 선각된 마애불이 보인다.

'상운사마애불'이다.

  

상운사를 뒤로하고 내려서니 석장승에는 入此門內 莫存知解라 쓰여 있다

이 문을 들어서면 알음알이를 모두 내려놓아라 한다.

마음을 허공같이 비우라고...

상운동교(祥雲洞橋)를  건너 하산한다.

원효봉 아래의 깊은 암벽 계곡 속의 개연폭포를 바라본다.

깎아지른 암반 위로 가는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다.

  

夫諸佛諸佛 莊嚴寂滅宮 於多劫海 捨欲苦行   

衆生衆生 輪廻火宅門 於無量世 貪欲不捨   

수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 적멸궁을 장엄하신 것은 저 수없이 많은 겁의 바다에서
욕심을 버리고 고행을 하신 까닭이며
일체의 모든 중생들이 불타는 집 속을 윤회하는 것은 저 한량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탐욕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

....

 

 

대웅전 뒤로 영취봉 백운봉이 보인다.

 

 

대웅전

 

 

 

고려시대 석탑 부재 일부를 이용하여 1999년 쌓은 삼층석탑   - 뒤로 백운봉 만경봉 노적봉이 보인다

 

  

400년 수령의 향나무 ( 1)

 

 

 

400년 수령의 향나무

 

 

 

마애불 앞의 층층의 기이한 바위

 

  

  

상운사 마애불